선禪수행이란 상相 있는 데서 상 없는 데로, 나아가 상이 있고 없음을 초월한 자리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 기점이 돈오頓悟인데, 간화선은 돈오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선지식이 학인에게 활구活句를 걸어주고 결국 의단疑團이 타파되도록 이끄는 시스템만 갖추고 있으면, 간화선은 종교를 넘어 현대적인 대중화가 가능하다. 먼저 짧은 기간의 간화선 집중수행을 통해 ‘선禪체험’을 맛보게 하고, 생활 속에서 습기習氣를 다스려가게 지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간화선 수행법이라고 할 것이다. --- p.20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인도와 중국을 거치면서 본래 성품을 깨닫는 방법 중에서 간화선만큼 발달된 수행법은 없다. 1,700년 전통의 한국불교가 ‘실전 간화선’으로 더 많은 세계인에게 불연佛緣을 맺어주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 p.21
수행자가 혼자서 화두를 들 때 활구活句 의심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답을 찾지 않고 ‘문제만을 외우고 있기 때문’이다. 화두를 되풀이해서 외우고 앉아 있으면 사구死句인 ‘송화두頌話頭’가 된다. --- p.17
간화선은 조사선祖師禪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두 수행법은 근본 원리가 동일하다. 즉 수행자는 의심疑心에 걸려야 하고, 그것이 감정화되어 점점 커져서 의정疑情이 되며, 마침내 안팎으로 온몸에 꽉 차는 의단疑團이 되면, 시절인연 따라 타파打破되면서 돈오를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선지식善知識이 공안을 통해 초심자에게 화두를 걸어주고, 결국 타성일편打成一片된 의단疑團이 타파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간화선 수행이 현실 속에서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 p.18
실제로 올바르게 시설된 간화장치 속에서 수행하여 그 결실을 맛본 간화선 실참자들은 선 체험 후에 신체?정서?인지?성격의 변화를 맛보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대인관계와 마음의 안정에 획기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간화선 수행 체험의 심리학적 분석: 안국선원 간화선의 사례를 중심으로」, 박성현·성승연 외 4인, 『종교연구』 제71집, 한국종교학회, 2013.). --- p.19
선불교는 일체의 언어 문자와 사량분별을 여의지만, 한편으로는 불경에 나타나는 화엄華嚴사상, 공空사상, 유식唯識사상, 법화法華사상 등을 골고루 활용한다. 선을 중심으로 교를 융섭하는 서산대사의 통불교적 종풍은 이후로 한국불교의 특징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 --- p.22
부처님은 대긍정을 하신 분이다. 선과 교는 함께 긍정되고 소통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골수인 ‘무위법無爲法’을 즉각 드러내는 선불교는 교학敎學으로도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궁극적인 뜻은 인류에게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하는 길’을 제시하신 데 있기 때문이다. 불법의 지혜는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하는 안목을 가리킨다. --- p.23
천상이 목표인 일반 종교와는 달리, 불교는 하늘이 궁극적인 이상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여도, 그곳에 영원히 머물 수 없고 또한 지은 복이 소진하면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윤회輪廻를 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생겨난 것은 반드시 멸하는 생멸법에서 천상락도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위법만이 육도로부터 벗어나 무애자재하게 되는 길이다. --- p.25
불교의 특징은 처음부터 무위법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육조 혜능六祖慧能(638~713)의 제자인 영가현각永嘉玄覺(665~713)은 『증도가證道歌』에서 ‘한 번 뛰어 바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일초직입여래지)]’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인천교적인 가치관 속에서는 복이 다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선업을 짓고 수행을 닦아가야 하므로, 이런 수행은 유위법에 속하는 것이다. 유위법으로는 육도윤회에서 해탈할 수가 없다. --- p.26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가르침은 반야부般若部에 속하는 『금강경金剛經』이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세수 60세가 넘어 원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스라바스티(사위성) 교외의 기원정사에서 설하신 것이다. 선과 교를 통섭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반야부 경전을 정한 이유는 바로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의 전환이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 p.28
진리 실상眞理 實相은 본래 모든 이의 눈앞에 이미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이 사실을 스스로 등지고 전도몽상顚倒夢想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선은 ‘무명 업식無明 業識’은 물론 ‘반야 지혜般若 智慧’조차 본래 없음을 당당히 밝힌다. --- p.39
참선參禪의 수행 원리는 명상 수행의 방법론과 차이가 있다. 보통 명상 수행은 상대적인 청정을 추구하지만, 참선은 우리의 본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전자는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하지만, 후자는 근본에 대한 의심疑心을 더 크게 하여 심화心火의 뿌리를 뽑는다. 즉 의심으로 분별망상의 뿌리를 뽑아내는 수행법이다. 옛 선지식들은 이것을 ‘독으로 독을 친다’ 혹은 ‘도적의 칼을 빼앗아 도적을 친다’고 하였다. 참선은 오직 당장에 자기의 ‘본래 마음[本心]’을 회복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우리의 본심에서 만법이 생멸하기 때문에, 이 마음자리[心地]를 ‘생사일대사의 본원本源’이라고 한다. 이것을 밝히는 것이 선禪이다. --- p.42
육조 선사의 공식적인 제1성聲인 ‘돈교법문’은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이 한마음[一心]임을 바로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외형적인 좌선이나 형식적인 선정禪定 수행을 고집하지 않고, 다만 각자가 지닌 성품을 요달了達하는 ‘견성見性’을 중시하여 활달한 가풍을 형성하였다.
본심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는 것이 스스로 불도를 성취하는 것이다.
不識本心 學法無益 識心見性 自成佛道
불식본심 학법무익 식심견성 자성불도
『육조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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