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로 ‘신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와, 동사로 ‘어떻게 신학할 것인가?’라고 물을 때, 그 접근 방향은 분명히 다르다. 신학이 무엇인지 명사적으로 물으면, 신학의 의미는 하나로 고정되기 쉽다. 고정된 의미는 경직되고 퇴색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무엇이 신학이고, 무엇이 신학이 아닌지에만 천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신학할 것인지’ 동사적으로 묻는다면, 우리의 ‘신학하기’는 한층 열린 지평에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신학하기는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신앙적 성찰을 통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를 묻는 일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동사로 질문하면, 구체적 실천을 고민할 수 있다.
--- p.24-25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In Vetere Novum lateat et in Novo Vetus pateat”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잘 설명한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구세사적 사건들의 예표가 되는 많은 사건과 증언을 담은 보고寶庫인 동시에, 신약성경의 결정적인 계시 진리의 조명 안에서 온전한 의미를 드러낸다. 그리고 신약성경 또한 창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이어오는 구약성경의 구세사와 구원 경륜 안에서, 즉 ‘약속과 성취’의 흐름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되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 p.87-88
신약성경의 모든 주제는 예수에게 맞추어져 있다. 특히, 예수의 강생·공생활·죽음·부활·승천·성령강림 등 다양한 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제는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는 대속의 죽음으로 하느님은 당신 아들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세상 모든 이의 죄를 없애셨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 내용이다. 그래서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도 바오로 역시 복음을 이야기할 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 p.161
성경의 표현과 상징들은 하나의 역사와 공간에 고정되고 화석화된 의미만을 품고 있지 않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인간이 된 하느님’, 예수를 향해 있다고 신앙인들은 믿고 읽고 실천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뻗어 나간 모든 분야가 성경의 말처럼 하느님이 직접 일하시고 가르치신 자리다. 그렇게 일하시는 하느님을 성경 이야기들이 전해주고, 그 이야기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성경 읽기와 앞으로의 그 전망은 ‘인간학적’ 차원을 고민하고 배려해야 한다.
--- p.184
“항상 개혁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라는 표어가 있다. 이것은 교회가 살아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말한다. 사실 “현존하는 교회는 악마의 나라와 하느님의 나라를 포함한다”라는 원칙과 “교회에는 한 번도 정의와 불의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라는 두 개의 원칙이 늘 교회 안에 현존하기 때문에, 교회가 새로운 활력을 되찾아야 할 필요성은 계속 대두되었다. 즉, 교회는 죄인으로서 현실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거룩한 존재로서 살아가기를 결코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06
하느님은 신앙인의 삶에서 체험되는 분이며 신앙인의 언어로 고백되는 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신론이 하느님에 대해 말할 때에는 언제나 신앙인의 체험과 말하기가 반영되어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앙의 맥락에서 하느님은 신비 그 자체이므로, 인간의 이성으로 완벽하게 포착할 수도 없고 어떤 개념에도 완전히 담아낼 수 없는 분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250
영성신학이 하느님과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윤리신학은 세상에서 ‘되어야 할 사람’과 ‘행해야 할 행동’에 좀 더 초점을 맞추지만,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 체험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안내해준다는 점에서 두 분야는 한 목표를 지향한다.
--- p.395
사목신학은 역사적 변화로부터 ‘지금, 여기’에 있는 교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성령께서 계속 이끄시는 바를 탐구하는 신학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동기에서 출발하여, 사목신학은 좁은 틀에 갇히지 않고 무엇이 새 술인지를 올바로 찾고, 그에 합당한 새 부대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며, 교회의 현재 모습과 함께 시대적 상황에 부합한 교회의 미래를 향한 변화와 성장에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 p.499
생태신학은 오늘날 생태 위기에 응답하는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성찰이지만, 단순히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시도하는 신학은 아니다. 또한 심각한 환경 문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신학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생태신학의 목적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넘어 하느님과 창조 세계와 인간의 상호 관계와 의미를 탐구하고, 생태 위기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훼손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데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그동안 소홀하게 다루어진 자연이라는 영역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신학이 본래의 연구 대상을 되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
--- p.583-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