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몸이 아파서 열이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할 때면, 머리맡에 앉아 밤새 내 이마에 찬 물수건을 대 주시던 어머니는 아픈 내가 안쓰러웠는지,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는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들아, 네가 아픈 건 더 크기 위해서란다. 오늘 밤만 아프고 나면 너는 더 커져 있을 거야”라고……. 그로부터 벌써 20년여 년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다 자라지 못했나 봅니다. 이 나이에도 사는 게, 사랑하는 게 이토록 아픈 걸 보면 말입니다. 어머니 궁금합니다. 얼마나 더 아파야 하나요? --- p.29
더 이상 밤에 탄산음료와 과자 먹지 않는 것, 만화 가게에서 혼자 낄낄대며 시간 보내지 않는 것, 노는 게 좋아도 오직 일에만 매진하는 것, 어떤 일에도 계산적으로 나만 생각하는 것, 헛되이 사람 만나지 않는 것, 술자리에서 과음하여 허튼소리 안 하는 것, 마음에 없는 일이라도 이로우면 하는 것, 더 이상 사랑 따위는 없다고 믿고 사는 것, 친구들과 어울려 쓸데없는 농담 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모르는 척 지나치는 것...이런 것들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철듦’이라면 절대 철들지 말아야지. 이를 악물며 나의 철들지 않음으로 인해 살기 힘들어도 절대 철들지 말아야지. --- p.30
혼자라고 느낄 때 외롭지만,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 혼자라는 걸 더 절실히 깨닫게 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나쁘고, 더럽고, 치사하기까지 한 제 성격이 전 싫지 않습니다. 그 나쁘고, 더럽고, 치사한 성격이 이 험한 세상에서 이곳까지 저를 밀고 온 힘이니까요. 전 사랑합니다, 제 성격. 그 누가 뭐라 하든. --- p.43
정말, 진짜, 너무. 이런 단어들이 왜 생겨난 줄 아세요? 그건 단지 ‘사랑한다’는 말로는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정말, 진짜, 너무. --- p.48
나는 어쩌면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좋은 형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좋은 동생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그저 내 편이 필요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내게 다 등을 돌려도 끝끝내 내 편이고야 마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내게 돌을 던지면 같이 돌 맞아 줄 사람. 나는 친구, 동생, 형,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그저 단 하나, 내 편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 p.137
솜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옷을 벗는다. 먼저 윗옷을 가지런히 접어 개어 놓고, 바지를 벗어 가지런히 접어 개어 넣고, 속옷도 벗어 가지런히 접어 개어 놓고, 마지막으로 그리움을 가지런히 접어 내려놓는다. 하루쯤은 내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쉬어야지. 지치고 슬픈 내 영혼. --- p.178
쓰러져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는 내게 또 다른 내가 말한다. 그만, 그만, 그만! 이제 그만 애써도 괜찮아. 충분히 힘들었잖아. 다시 일어나 달리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잠시만 그대로 있어. 그만, 그만, 그만! 충분히 노력했어. 내가 옆에서 다 지켜봤잖아. 세상 사람들이 몰라준다 해도 내가 옆에서 지켜봤으니 그래도 괜찮아. 조금만 쉬렴. 쓰러져 있는 나도, 쓰러져 있는 나를 쳐다보는 나도 두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그만, 그만, 내가 다 알아.
---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