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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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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84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3231
ISBN10 89843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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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남쪽에서는 간첩 잡는 기구를 확 늘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간첩 잡는 기구가 어디어디 있습니까? 우선 국정원이 있죠. 모르긴 몰라도 국정원에만 수천 명은 될 겁니다. 옛날에는 더 많았겠죠. 그리고 경찰서에 가면 보안경찰이라고 있어요. 지금 줄었는데도 2,000명 이상 될 겁니다. 그러니 1980년대에는 3,000여 명 이상 되었을 거예요. 또 뭐가 있어요? 보안사(기무사) 있죠. 이 세 군데만 합쳐도 얼마입니까? 거기다 검찰에 가면 공안부 있죠. 군에는 보안사 말고 정보사가 또 있으니 다 합치면 무지무지 많은 거죠.
그런데 간첩이 안 내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간첩 잡는 기구는 늘려놨는데 간첩이 안 내려오니 황당하죠. 도둑놈이 있어야 포졸이 먹고살 거 아닙니까. 간첩이 오지 않으니 어떻게 됩니까? 간첩이 만들어지는 거죠. 우리는 ‘간첩’ 하면 무엇을 생각합니까? 메이드 인 노스코리아(Made in North Korea). 북한에서 만들어서 보내는 오리지널 원단 간첩이죠. 문제는 짝퉁 간첩이 생기는 거예요. 메이드 인 사우스코리아(Made in South Korea). 함량 미달 또는 함량 미달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조작된, 완전한 짝퉁 간첩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 pp.82~85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부동산과 강남투기’에 대해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담당 PD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난 소감을 이렇게 밝혔어요.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불법으로 사람 잡아다가 고문하고 때리고 한 거 용서할 수 없는 짓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를 만들고 보니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투기를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도덕이나 근면 따위는 웃기는 자장으로 만들어버리고 불로소득,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또 그 사람들이 더 높은 아파트를 쌓고, 타워팰리스를 쌓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호위호식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버린 것이 오히려 박정희, 전두환에게서 더 준엄하게 따져 물어야 할 죄악이 아닐까요?”
그들이 공포의 정치는 놓아버렸지만 욕망의 정치는 더욱 강화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욕망을 향해 뛰고 있어요. 공포의 국가에서는 무서워서 뛰었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정치 속에서는 거기에 세뇌되어 우리 스스로 쫓아가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렵고 힘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pp.164~165

인터넷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아니 인터넷 때문에 괴담은 더욱더 유통될 것입니다. 권력이 부패했을 때, 그리고 그 부패에 대한 저항이 있을 때 괴담은 반드시 돌게 되죠. 대중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유통시킬 겁니다. 선망이 있고, 욕망이 있는 곳에 괴담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민중이 권력의 부패를 질타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괴담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지배층도 괴담을 만들어내지만 우리가 보통 괴담이라고 하는 것은 압도적으로 대중이 생산하고, 유통시키고, 소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중은 괴담의 대상이 아니라 괴담의 소비 주체이고 생산자입니다. 특히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생산과 유통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죠. 대중은 그런 개입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저는 괴담을 없애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괴담을 없애려고 무리를 하면 오히려 더 큰 괴담을 만들어내겠죠.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고 정치, 경제의 투명성과 더불어 정보의 편중성 및 접근성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괴담은 언제든지 유통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자들도 괴담에 대해 무조건 발끈할 것이 아니라 괴담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죠. --- p.243

우리나라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막강한 경찰이 있다 보니까 문제를 일으킨 놈이 경찰한테 다 떠맡기죠. 경찰청장을 지낸 분이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경찰은 종합하수처리장이다.” 사회 갈등의 하수처리장이라는 겁니다.
자, 촛불시위가 경찰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경찰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비정규직 문제가 경찰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새만금 문제가 경찰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대추리 문제가 경찰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모든 사회문제들이 경찰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그러나 모든 사회문제의 처리에 누가 나섭니까? 경찰이 동원되죠. 전경이 5만여 명이나 있으니까 일을 잘못 저지르고 시위대가 몇백 명 모여 데모하면 전경들을 동원해 “밟아버려!”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대통령이면 전투경찰을 안 쓰고 싶으시겠어요? --- pp.289~290

서민들 중에 과외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과외 안 시키면 뭐가 파산할까요? 부모의 마음이 파산하죠. ‘부모 잘못 만나서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해주고……’ 이런 식이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계속 명문대에 갈 수 있는 방향으로 꾸준히 ‘개선’되죠. 특목고 만들고, 국제중 만들고, 그리고 고교 등급제도 등장하잖아요. 요번에 고려대가 그것 때문에 파문이 일어났죠? 사실상 알게 모르게 다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평준화 정책이 거의 무력화되었습니다. 왜 무력화되었어요? 입시는 없앨 수 있어도, 학교는 명목상 평준화할 수 있어도, 부모의 경제력을 평준화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들의 욕망을 실현할 돈을 평준화하지는 못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교육 시장이 팽창할 수밖에 없는 거죠. --- pp.327~328

요즘 애들은 어때요? 촛불을 처음 든 10대들.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개념이 없을 수도 있어요.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어요. 공부해본 적도 없어요. 고민도 별로 안 해요. 이 친구들에게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어요? 몸에 있더라고요. 몸에. 민주주의가 몸에 있습니다. 바로 온몸이 민주주의의 성감대였던 거예요. 우리는 머릿속에만 그 지식이 꽉 차 있었는데. 10대들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리보다 훨씬 빨리 느낀 겁니다. 마치 탄광에서 카나리아가 광부들보다 먼저 산소 부족을 감지하듯이, 10대는 우리보다 민주주의를 느끼는 감수성이 월등했다고 생각합니다. 10대의 그런 감수성은 어릴 때부터 편안하게 민주주의를 경험한 데서 나옵니다. --- p.365

우리 세대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아마 ‘독수리 5형제’ 세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독수리 5형제의 사명은 뭡니까? 지구를 지키는 거죠. 이것도 아마 386세대 정도나 겪어야 했던 황당한 코미디일 텐데 “네 삶의 목표가 뭐냐?”고 선배가 물었을 때 “우리 사회의 민주화요”라고 대답했다가는 “너 왜 그렇게 시야가 좁아?” 야단을 맞아야 했던 것이 우리 세대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 세대는 거대담론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고, 그 거대담론 앞에 어떻게 자기 자신을 내세우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사실은 인간 본성에 어긋나죠. 술 마셔도 안 돼, 연애를 해도 안 돼. 오로지 운동만을 위해 살 것을 요구받은 불행한 세대였죠.
그때 자기 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욕망을 콱 죽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다가 그 조절장치에 이상이 온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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