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윤리학이 인간의 자유에 기반한다면, 새로운 윤리학의 토대는 미래 세대에게도 삶의 정초가 되는 자연이다. 새로운 윤리학은 자연과 인간을 포괄하는, 즉 인간 대 인간에서부터 현세의 인간 대 미래의 인간, 인간 대 동식물 등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 관계망으로서 유기체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 p.39, 「김왕배, 「‘인간 너머’ 자연의 권리와 지구법학」」 중에서
인류세 개념은 인간 활동이 지구 표면을 바꾸는 결정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과학적 개념인 동시에, 인류세적 위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는 실천적 개념이기도 하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는 인간과 자연이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형성적인 과정에 놓여 있음에 주목하고, 이들의 관계성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물질적·사회적 관계 형성이 요구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 p.64-65, 「박태현, 「인류세에서 지구 공동체를 위한 지구법학」」 중에서
지구법학의 헌법 해석 방법론 논의는 헌법 텍스트 안에서 미시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이다. 논리적으로 전제되고 있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 탓에 드러나지 않은 헌법 규범을 드러냄으로써, 사법부가 지구법학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통로를 내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헌법 해석 논쟁에서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한다. 헌법 문언을 통해 헌법 제정자의 이해와 의도를 탐구하는 견해가 한편에 있다. 다른 한편에는 ‘살아 있는 헌법’의 기반 위에서 헌법이 변화하는 사회관계에 적응하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 p.120, 「오동석, 「지구법학 관점에서 한국 헌법의 해석론」」 중에서
지구법학의 실천적 요점은 그러한 자연물이 가지는 비-법적 권리를 한발 더 나아가 법규범에 의해 인정되는 법적 권리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는 도덕적 권리와 법적 권리 사이의 간격이 존재한다. 하나의 도덕적 권리는 어떤 근거에 의하여 실정법적으로 제도화된 권리로 승인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앞서 언급한 의사 이론과 이익 이론에 다시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연의 권리는 두 이론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권리 개념이 부딪치게 되는 권리 이론상의 난점이다.
--- p.161, 「정준영, 「지구법학과 사유재산권」」 중에서
바이오크라시는 인간 너머 자연에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양보, 그리고 더 많은 권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더 많은 자리를 마련한다. 비인간 자연은 단순히 수혜나 특혜, 돌봄의 대상이 아닌 체제 수행의 적극적인 능동적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이오크라시는 비인간 물질에 대한 신유물론적인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자연의 존재론적 횡단성과 수평성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생태민주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바이오크라시 역시 생태민주주의자들의 기획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대변하는 대리인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지만, 이를 넘어 비인간 자연에 아예 법인격을 부여하는 식으로 패러다임의 급진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지구법학이 있다.
--- p.243-244, 「김왕배, 「‘비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와 정치의 재구성」」 중에서
이 담론들은 우리 상상력의 지평을 넓힌다. 하지만 이 점진주의적 확장 이전에 아예 우주론과 지구론의 차원에서 인간의 위치를 재고한다면, 일부 권리의 확장이 아니라 더 대담하고 다른 차원의 생명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발상이 가능하다. 동물들의 권리를 더 확장하자는 이야기 이전에 “지구를 배제한 채 인간의 해방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담론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상상력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 p.273-274, 「안병진, 「민주주의의 실패를 넘어 바이오크라시로」」 중에서
앞선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외래종 문제에 대한 생명 안보의 정책적 작동이 특정 전문가들의 과학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과학 지식이 잘못된 근거와 판단 기준으로 구성될 수도 있으며, 외래종에 대한 과학 지식 생산 활동이 정치적, 사회적 담론 속에서 이해되는 방식과도 경합한다.이 사이에는 외래 생명의 도입과 확산 과정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이해의 방식이 존재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치생태학자들과, 생태적 기능 및 분화 그리고 토착종의 생태계 균형 유지를 강조하는 환경보전과학 사이에서 외래종을 둘러싼 서로 다른 존재론의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p.306-307, 「김준수, 「한국의 외래종 관리와 존재론적 질문들」」 중에서
동물과 인간 사이의 정의로운 관계에 대한 고민이 충실히 이행된다면 주관적인 법적 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물의 입장이 잘 반영된 객관적인 법규범이 인정될 여지는 있다. 이는 물건성 부정을 말하는 개정안을 통해서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동물 권리와 관련해서는 인간 유사적 속성이 언급되는 경향이 보이지만, 핵심은 동물이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가 아니라 한 동물과 한 인간의 권리관계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 p.392, 「최정호,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민법 개정 논의의 평가와 과제」」 중에서
인간 사회에서 자연의 권리를 인간 중심의 법체계에 수용하려면, 자연 자체와 다양한 형태의 비인간 생명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근본적으로 문화의 문제인데, 여기서 “법의 전환적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법이 자연 자체 또는 특정 자연물을 권리주체로 인정하고 선언한다는 것은, 이제 자연 또는 자연물을 단순한 자원이나 재산이 아닌 내재적 가치와 고유한 이익을 지닌 실체로 여기고 대우하겠다는 의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로써 자연 또는 자연물에 대한 우리의 개별적·집합적 인식이 달라질 수 있게 된다.
--- p.394-395, 「박태현,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법인격을 가질 수 없는가」」 중에서
우리는 기후위기를 대변하는 인류세 시대의 종말론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법학과 바이오크라시는 항간에 떠도는 인류세 시대의 파국 서사와 종말론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을 떨쳐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다만 요나스가 말한 대로 ‘공포의 발견술’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나 훗날 이 땅의 주인이 될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윤리를 갖출 것을 주문한다.
--- p.442, 「김왕배, 「과제와 전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