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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택배로 왔다
중고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정호승 | 창비 | 2022년 09월 2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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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18g | 125*200*20mm
ISBN13 9788936424824
ISBN10 8936424823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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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삶 위에 선 당신에게 청하는 악수] 등단 50년, 시인 정호승이 전하는 사랑과 죽음, 삶의 이야기. 그의 시 속에서 지는 것은 아름답고 슬픔은 반짝인다. 매일의 일몰이 오늘의 눈물이 그렇듯이, 사는 일이 늘 그렇듯이. 그러니까 이것은 따뜻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청하는 악수, 한 권의 책으로 빚은 생일 것이다. -시 P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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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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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햇빛에 대하여
바람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내가 지상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견딜 수 없었던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낙과(落果)」중에서

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
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

벚꽃을 보라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
봄의 슬픔마저 찬란하지 않으냐

(…)

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
가장 아름답다
---「꽃을 따르라」중에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마지막 한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
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
---「택배」중에서

강가의 모닥불 위에 함박눈이 내린다
하늘의 함박눈이 모닥불 위에 내린다

모닥불은 함박눈을 태우지 않고 스스로 꺼진다
함박눈은 모닥불에 녹지 않고 스스로 녹는다

나는 떠날 시간이 되어 스스로 떠난다
시간도 인간의 모든 시간을 스스로 멈춘다

이제 오는 자는 오는 곳이 없고
가는 자는 가는 곳이 없다

인생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
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
---「모닥불」중에서

천사도 인간을 증오할 때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고 끊임없이
서로 죽이는 것을 보면
우크라이나 어린이들까지 무참히 죽이는 것을 보면
천사도 인간을 닮아
증오심이 가득한 천사의 마음을 지닐 때가 있다
인간을 위한 천사이기를 포기하고
인간을 위해 결코 울지 않을 때가 있다
---「천사의 메모」중에서

해는 지고 노을 속으로 새 한마리 날아간다
나는 사라질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몰의 순간에 굳이 일출의 순간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없으면
일출의 아름다움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생에 단 한번 일몰의 아름다움을 위해 두 팔을 벌린다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는 일몰의 순간은 찬란하다
결국 모든 인간이 아름다운 까닭은
일몰의 순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일몰」중에서

파르르 분노에 떨며 주먹이 칼이 되던
모든 순간은 꽃이 되기를
절망의 벽을 내리치며
벽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려
잠 못 이루던 순간은 모두 바람이 되기를
시궁창 바닥 같은 내 혀끝에 고여 있던
모든 증오와 보복의 말들은 함박눈이 되기를
(…)
다시 봄이 오지 않아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용서에도
붉은 진달래가 피어나기를
---「마지막 기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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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언젠가 시인은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에 대해 저에게 일러준 적이 있습니다. 외로움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 소외로 생기는 것이고 고독은 내가 나를 스스로 소외시킬 때 생기는 것이라고. 외로움에 관해 말할 때 그는 다정했고 고독을 말할 때 그는 단호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시인의 시는 늘 다정과 단호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인은 어느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고 끝없이 이 사이를 오가는 것이고요. 이런 시인의 시간을 기다림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더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온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든, 시가 아니든.
-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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