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관한 의학적 성취와 영원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알로이시우스 알츠하이머는 독일의 신경과학자이자 의사다. 그는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프란츠 니슬이 개발한 세포 염색 기법을 이용해 치매 여성인 아우구스테 데터의 뇌에서 비정상적 소견들을 밝혀냈다. 아우구스테 D.로 알려진 그녀는 1901년 입원해 5년 뒤 50대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알츠하이머의 보살핌을 받았다. 증상은 기억상실, 혼란, 지남력 저하, 섬망 등이었다. 사후 연구를 통해 알츠하이머가 밝혀낸 비정상적 소견들은 비슷한 연령의 건강한 뇌에 비해 치매 환자의 뇌에서 훨씬 흔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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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치매 증례는 원인을 단 한 가지 유전자 돌연변이로 추적해낼 수 없으며,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 돌연변이가 일으킨 효과는 놀랄 정도로 복잡하다. 성장과 영양과 생존, 단백질 형성과 운반과 노폐물 처리, 신경세포 시냅스의 기능과 화학적 신호의 전달 등 다양한 세포 안팎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과정을 조절하는 수많은 생화학적 경로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관련된 주요 분자들이 이런 경로 중 한두 가지와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지금쯤 우리는 좋은 치료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분자들은 모든 경로와 작용을 주고받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아직까지도’ 치매를 완치하지 못하는 이유다. 치매란 실로 어려운 문제다.
--- p.33~34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아밀로이드-베타 중에서도 더 작고 수용성인 저중합체가 가장 독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에 따르면 저중합체는 시냅스를 손상시켜 학습에 필요한 가소성을 저하시키고, 중요한 단백질들의 수치를 변화시키며, 심지어 공극을 만들어 세포막에 구멍을 뚫는 것 같다. 세포 안팎의 화학적 농도차를 유지하려면 명확한 경계를 이루는 세포막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므로, 이런 변화는 치명적이다.
--- p.68
치매의 과학은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와 동료들이 특정한 세포 염색기법을 이용해 치매 환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판이라는 특정 대상을 관찰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추론 과정은 단순하다. 건강한 뇌와 건강하지 않은 뇌 사이에 눈에 보이는 차이가 있으니, 그것이 질병의 원인과 관련이 있을 것 아닌가? 당연히 이런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판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아밀로이드 가설로 이어졌고, 다시 발병 과정을 밝히려는 학문적 시도(예컨대 동물에게 아밀로이드-베타를 주입한 후 그 결과를 관찰하는 등), 판을 감소시키려는 임상적 시도(치매를 완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속에서), 판을 더 잘 검출하려는 기술적 발전(PET 영상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비판자들은 이 추론 과정에 잠재적 허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 p.84
미세아교세포를 비롯한 식세포들은 평소에 비활성 상태로 조용히 지낸다. 하지만 일단 활성화되면 어떤 사이토카인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염증을 촉진하거나 감소시킨다. 건강한 뇌에서 미세아교세포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반응한다. 하지만 미세아교세포도 노화하며, 노화된 뇌에서는 너무 많은 일을 한 나머지 일종의 세포 번아웃 상태를 경험하는 것 같다. 보다 쉽게, 더 오랫동안 활성화되며, 항염증성 사이토카인보다 염증 유발 사이토카인을 방출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뇌의 면역 환경은 뇌를 손상시키는 사이토카인이 더 많아지고, 염증이 더 쉽게 일어나며, 미세아교세포가 시냅스와 뇌 세포를 먹어 치우기 쉬운 쪽으로 변해간다.
--- p.106~107
하지만 위험인자의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할 때는 확실성이라는 유혹보다 더 크고 미묘한 인지적 함정이 있다. 완벽함이라는 신화다. 대중매체 기사는 완벽한 생활습관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암시를 준다. 존재의 모든 측면을 적절히 조절한다면 평생 신체와 정신의 완벽한 건강을 누리고 살 것처럼 묘사한다. 이런 생각은 필연적으로 한 가지 결론을 이끌어낸다. 건강이 나빠진다면 그 개인의 책임이란 것이다. 의도적으로 죄를 지었든, 전문적 조언에 제대로 따르지 못했든, 건강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든, 건강을 잃었다면 그것은 모두 개인의 잘못 때문이다. 광고도 똑같은 개념을 전달한다. 더 쉽게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방법이 있다고 유혹할 뿐이다. 자기네 제품을 살 돈만 있다면 말이다.
--- p.119~120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고정되어 있다 해도, 그 유전자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지는 호르몬, 섭취하는 음식 속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 이웃 세포에서 보내오는 신호 등 세포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심지어 상황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우리 몸과 뇌가 영구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유전적’이라는 말은 ‘돌에 새겨 있다’는 뜻이 아니다.
--- p.123~124
치매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단순히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지 따지는 데서 점차 진행하는 증상들의 스펙트럼으로 보게 된 것이다. 예컨대 현행 DSM-5에서는 중증 치매 및 기억상실을 주요 ‘신경인지장애 (neurocognitive disorder, NCD)’로, 경도인지장애를 경도 NCD로 정의한다. 인지장애에도 뚜렷이 정의하기 어려운 회색지대들이 있으며, 따라서 초기 치매는 진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 데 따른 조치다. 사회인지손상(social cognitive deficit)의 역할을 강조하는 병명이기도 하다. 또한 일상생활을 크게 방해할 정도로 심한 기능저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p.164
고령자에게 약물을 처방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령자는 여러 가지 의학적 문제를 지닌 경우가 많으므로 새로운 약물을 투여하면 기존에 쓰고 있던 약물과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노화된 몸과 뇌가 젊은 사람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물론 시판되는 모든 약물은 자원자 대상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하지만, 특별히 노년층을 겨냥한 약이 아니라면 임상시험 자원자는 대부분 젊고 건강한 성인이다. 아직까지 노화가 다른 문제로 인해 처방된 약물에 대한 신체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약물을 사용하거나,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사용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 p.178~179
연구 측면에서 치매의 미래는 희망차다. 과학자들은 신경변성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등 주요 단백질을 검출하고, 더 세밀한 뇌 영상을 획득하고, 그 연결성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첨단 신경영상 기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데이터는 날로 풍부해져 보다 신뢰성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줄기세포 기술과 유전학의 발달로 개인 맞춤형 의료가 실현되리라는 희망이 대두되는 한편, 후성유전학, RNA, 번역 후 처리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전-환경 상호작용의 복잡성이 밝혀지고 있다. 면역과 인슐린, 미토콘드리아와 미세아교세포, 혈액-뇌 장벽 등에 대한 연구에서는 뇌뿐 아니라 신체 변화가 신경변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지고 있다. 치매의 과학은 놀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지만, 적어도 이제 우리는 그 복잡성을 확실히 인식한다.
--- p.19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