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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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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

: 98편의 짧은 소설 같은 이향아 에세이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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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10g | 130*205*30mm
ISBN13 9791157956777
ISBN10 115795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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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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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닷새째인데 날마다 잎이 새로 솟는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아이 낳고 몸조리도 못 하는 산모를 보는 기분이다. 그를 어떻게 해서라도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나는 겨우 볕 좋은 베란다에 내놓을 뿐이다. 금년에는 수선화 꽃피는 건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살아 있는 푸른 잎만 보여주는 것도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꽃까지 보여주다니 생명이란 얼마나 위대하고 엄숙한 것인지, 그리고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것인지. 아, 꽃을 피워낸 수선화 마른 뿌리. 날마다 아침에 눈을 떴다 하면 수선화 안부부터 묻는다.
---「꽃피는 것 기특해라」중에서

“저는 이 카페의 주방장이고 주인이고 심부름꾼입니다.”
테너인 남자 주인이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을 그. 그는 우리가 청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노래를 몇 곡 불렀고 부부가 이중창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소리 높여서 앵콜을 외쳤고 그들은 기쁜 듯이 받았다. 퇴락한 고택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자꾸 쓸쓸하였다. 가슴 한복판 골을 타고 이상한 슬픔이 흘러내렸다. 마무리하는 시간 몇 사람이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슬픔 때문인지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저도 한 곡 부르겠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섰다. 모두 깜짝 놀라면서 환호하였다. 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신의 덕입니다, 고맙습니다」중에서

숲을 거닐 때면 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조차 너무 커서 조심스럽다. 만일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생각이 깊고 지혜로우며 인자한 사람일 것이다. 봄내 여름내 태양을 사모하다가 가을이면 다소곳이 발아래 잎을 떨어뜨리고 묵상하는 나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거기를 비옥하게 하는 숲. 숲은 홀로 솟으려 하지 않고, 함께 일어서서 어우러진다. 숲의 시선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숲이라고 말할 때 ‘꽃’이라고 말할 때처럼 가슴이 충만하게 차오른다. ‘숲’이라고 말할 때가 ‘꽃’이라고 말할 때보다 훨씬 편안하다. 꽃은 사랑받는 일에 익숙하지만, 숲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나누려는 마음과 바치려는 마음으로 다른 생명을 감싼다.
---「숲이라고 말할 때면」중에서

모두 웃을 때 웃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도 웃지 않을 때 혼자 히죽거리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혹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빤히 알아도 입을 다물고 되어가는 꼴이나 보자고 그러는 사람도 있다. 이런 태도는 얼마나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태도인가. 그것이 지나치면 사뭇 잔인해질 것이다. 더러는 보신책으로 은신하여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누가 마이크를 넘겨주면서 “한 말씀 하시지요” 할 때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거절하는 것은 숫기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겸손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보란 듯이 내놓을 만한 자기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부디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어야 할 만한 처지를 만나지 않기 바란다.
---「침묵은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다」중에서

끝나버린 연애는 아름답다. 놓쳐버린 열차는 아름답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랑의 상처는 다시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면서 서둘러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나는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 아픔을 오래 간직하기로 하였다. 그보다 더 예쁜 양산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내 마음에 그보다 더 좋은 양산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하였다.
“그런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없어요.”
---「끝난 연애는 아름답다」중에서

엊그제 오랜만에 먼 길을 떠나면서 아파트 정원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살구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내가 그동안 무심하게 건성으로 지나치곤 했을까? 꽃이 활짝 피도록 몰랐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데, 그걸 오늘 처음 보다니 염치가 없다. 꽃은 언제 이렇게 소리 없이 피었을까, 꽃이 피는 것도 모르고 나는 왜 땅만 보고 걸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곁을 지났을까, 무슨 시간에 정신없이 대어가느라 몰랐을까.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꽃이 피는 걸 몰랐다니 말이 되는가, 나는 꽃이 피도록 무심했던 내 잘못을 변명하느라 말을 찾는다. 아니야, 꽃은 피려고 마음먹으면 금방 피어, 오래 머금고 있던 웃음처럼 햇살에 견디지 못해서 오늘 아침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을 거야.
---「과분한 봄」중에서

“스물한 살에 포기는 없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겠노라는 표어를 가슴에 붙이고 뛰었다. 스스로 의지를 시험해 보자고 국토를 종단하고 있을까? ‘스물한 살에 포기는 없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당연하여 말할 필요도 없다. 스물한 살에 왜, 무엇 때문에 포기하겠는가? 미쳤다고 포기를 하겠는가? 혹시 그대들이 지금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들의 말에 트집을 걸었다. 나는 그 말은 반드시 고쳐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물한 살, 내게 두려움이 있으랴’라고, 절망도 없고 불가능도 나를 비켜간다고, 산도 바다도 나를 막지 못한다고.
---「그 나이에 포기는 없다」중에서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나오면서 그가 왜 위대한가를 생각해보았다. 소설이건 영화건 제목은 편의상 지을 수도 있는데, 왜냐고 캐묻다니. 개츠비가 위대하여서 〈위대한 개츠비〉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영화는 전에도 한 번 보았는데 오늘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깡그리 잊어버렸는데도 여운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연 배우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달라서 사뭇 낯설었다. 전에는 개츠비의 캐락터가 갱이나 마피아단의 두목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이 어둡고 무거워 영화관을 나오면서 개츠비에게 위압감 같은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압감과 전혀 다른 연민이다. 개츠비의 역할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이다.
---「그는 왜 위대한가」중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커피라기보다 커피가 있는 풍경, 커피가 있는 분위기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있고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고 우정이 흐르는 공간, 거기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리는, 쓸데없는 이야기도 격조를 갖추게 되는 곳, 서로 눈빛을 마주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공간. 나는 그것들을 좋아할 뿐, 잔에 채워진 검은 커피는 그냥 건성으로 옆에 두고 있는 것인가? 커피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게 커피란 맛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주는 정신적인 여유, 그것이 상징하는 시간과 자유다.
---「커피가 있는 분위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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