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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엮은 방패
중고도서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 창비 | 2021년 02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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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246g | 126*200*20mm
ISBN13 9788936424541
ISBN10 8936424548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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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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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웃고 있군요
샌들을 벗어 드릴 테니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세요
---「채송화」중에서

하얀 민들레 곁에 냉이꽃
냉이꽃 곁에 제비꽃
제비꽃 곁에 산새콩
산새콩 곁에 꽃다지
꽃다지 곁에 바람꽃

소년 하나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네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해라
걷다가 시 쓰고
걷다가 밤이 오고
밤은 무지개를 보지 못해
아침과 비를 보내는 것인데

무지개 뜬 초원의 간이역
이슬밭에 엎드려 한 노인이 시를 쓰네
---「세월」중에서

너무 오래
너무 길게
미워하며 살아 미안해요
쓸모라곤 하나도 없었네요

(…)

너무 오래
너무 길게

외면하며 살았지요
반쪽의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관심 없었지요
엎어지고 깨지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얘기 들으며
나는 나고 너는 너다
그냥 고개 끄덕이며 지냈지요

녹슨 철조망 환하게 웃는 당신
당신에게 보랏빛 햇살의 향기를 드려요
우리 이제 제발 기억하고 살아요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우리 이제 서로 버리지 말아요
---「칡꽃」중에서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쓰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중에서

우리고물상 지나
용당식물원 지나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
어린 태양의 축제 같아라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길가에서 시 쓰는데 경찰이 달려오네
주정차 금지 구역 열심히 설명하는 젊은 경찰에게
면허증을 건네니
뭐 하셨소? 묻네
호박꽃이 좋아 시를 쓰는 중이었소, 하니
호박꽃이 좋으오? 또 묻네
아니오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오
그가 천천히 면허증을 건네주며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하네
---「자두꽃 핀 시골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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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으며 역(驛) 하나 떠올렸습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떠나고 머무를 곳 없는 이들만 돌아오는. 혜산선을 가쁘게 지나온 마름이든 삼랑진역에서 시작된 젖음이든 불평 없이 모여드는. 시인은 기차역을 홀로 지키며 배웅하고 마중하는 역장 같습니다. 물론 이런 일보다는 역 근처 천변 꽃밭에 나앉아 누가 벗어두고 간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바람 그네”(「따뜻한 감나무」)를 타거나 시로 “봉숭아 물”(「세상의 모든 시」)을 들이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겠지만요. 시인은 우리 곁에 이 시집을 놓아두고 지금 역사로 향하고 있습니다. 흐트러짐 없이. “종이 가방”(「늙은 시인은 새 시집 읽는 게 두렵지 않다」) 하나 들고.
-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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