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더없이 훌륭한 자연정원을 가지고 있는 셈. 집안에서는 사시사철 도랑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단다. 목이 마르면 마당을 가로질러 도랑물을 떠 마셔도 된다. ' 60년 동안 여서 살았어. 콩농사 지면 저 탈괵기에 털어 먹고, 곡식덜은 저 절구에 찌 먹고, 그래 사는기 만날 이래 사는 기야 영감한테 나가 살자니까 안 나간다 하잖니껴. 죽어도 여 앉아 죽겠다카며, 그래 자연 저래 고생을 는 기지 뭐. 원래 맨산이던 거 헐애가지고 흙으로 집을 진기, 그래두 여 물이 좋으니까 살지 그래그래 사는 기 참!' 황매화 할머니가 들려준 집안 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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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리의 초입은 '학바위'라는 커다란 바위절벽의 절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학바위를 지나 왼편으로 꺽어 들어가 만나는 곳이 바로 결둔, 현재 이곳에는 여섯 집이 살고 있는데, 마을에는 온통 대추나무가 빼곡이 들어서 있다.
이 대추나무들은 마치 마을의 집들을 지키는, 약간은 심심하고 무료해 보이는 근위병처럼 보인다. 결둔뿐만 아니라 승부리 일대는 어디를 가나 대추나무 토성이다. 대추는 이 마을의 가장 중요한 주산물이자 소득원인 셈이다. 하지만 올해는 대체로 작황이 시원찮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꽃 피는 시기에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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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는 영월댐 반대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는데, 고성터널 입구에는 “동강은 우리의 생명, 수몰되면 우리도 끝장이다.”라는 문구가, 창마을에는 “우리는 수자원공사가 우리를 내쫓는다면 공사와 함께 우리는 죽을 것이다.”라는 살벌한 문구마저 걸려 있었다. 인제의 내린천댐의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 및 여론에 밀려 최근 백지화 결정을 내렸지만, 영월댐은 내린천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론화되지 못한 점이 많은데다 장기간의 반대투쟁으로 주민들은 지쳐가고 있는 실정이다. 식수난을 해결하고자 자기 나라 ‘최후의 비경’을 수장시키려는 나라는 아마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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