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있노라면 우리는 훨씬 이전부터 이미 하느님과 만나 왔음을 깨닫는다. 예수님은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요한 14,9)라고 물으셨다. 우리도 필립보 사도와 마찬가지다.
---「머리말」중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초대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찾으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찾는다. 하느님이 우리를 갈망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갈망한다. 또한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에게 기도한다. 기도의 진정한 의미와 어려움은 거기에 있다. 기도는 인간의 생각이나 야망, 망상, 자기 암시 같은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이 생겨도 마음을 다해 충실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준비하는 것이다.
---「머리말」중에서
성당에 나가는 것이 하느님을 배려하고 하느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살면서 너무나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하느님까지 당신을 괴롭히는 폭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하느님은 당신을 걱정하신다. 하느님은 반가이 맞이해 주시고 위로하며 길러 주시고, 심지어 당신의 발을 씻겨 주신다.
하느님에게 봉사하기 위해 성당에 나가서 활동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오만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하느님이 당신에게 봉사하고 계신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봉사받기를 원하시지 않고, 인간에게 봉사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이 당신에게 베풀어 주신 봉사를 하느님에게 되돌려 드려서는 안 된다. 당신의 형제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중에서
당신이 하느님에게 받은 선물을 알기만 한다면 기도가 감사의 행위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결코 부富를 가르치거나,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측량하는 일이 아니다. 기도는 모두가 감사이며,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을 기쁨에 넘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중에서
하느님에게 용서를 청할 때 당신은 알고 있는가? 하느님이 당신을 용서하고자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에 마침내 당신에게 용서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처럼 하느님은 당신을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하느님에게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그분에게는 더 중요하다.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중에서
하느님에게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가? 말을 걸어 보고 싶고, 따르고 싶고, 그분 안에 들어가 살고 싶은 그런 하느님을 아는가? 이러한 일들을 기쁨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곧 당신이 기도해야 하는 하느님은 이런 하느님임을 의미한다.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중에서
하느님은 당신이 넘치도록 베풀어 주신 사랑과 봉사를 인간들이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이웃에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어버이가 되고, 사랑이 되며, 하느님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이 점차로 퍼져 나가, 이 세상의 땅 끝까지 이르기를 바라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우리 마음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중에서
기도는 하느님이 당신을 ‘말씀’에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으로 조각하는 수단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도는 하느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을 걸어 주시는 하느님」중에서
복음서에는 출현에 관한 규칙이 있다. 누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즉시 그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도 역시 알아보지 못한 채 항상 그리스도와 만나고 있으므로, 그 규칙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자신의 삶을 복음에 비추어 본다는 것」중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신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또 그분 자신이 우리를 완전히 점유하셨음을 아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생활은 기도와 같아지고, 하느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어느 신부가 말한 바와 같이 “믿는다는 것은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도하고 활동하는 그리스도인」중에서
누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고 말해도,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 주는 것이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의 일을 아무것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오직 하느님의 손에 맡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하느님이 갖고 계시는 유일한 손은 바로 우리의 손일 뿐이다.
---「기도하고 활동하는 그리스도인」중에서
기도란 틀에 박힌 문구의 암송이 아니라 영감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기도는 외우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 기도의 본질을 망각하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에 담긴 의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