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통 앞에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 존재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다. 인간이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우리의 믿음을 다시 생각하고, 우리의 의심에 대처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지 토론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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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몇몇 신학자만큼 하나님의 평판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분명히 바람, 비, 땅의 재앙을 하나님이 일으키셨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이 세세하게 관여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든, 사나운 바람이 불든, 폭풍우가 몰아치든, 그 사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오고 갔다. 둘째, 이것들은 대부분 심판이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불복종에 대한 그분의 증오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구약성경 시대에, 이러한 심판은 일반적으로 의인과 악인을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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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연을 사용하여 우리를 축복하시고, 도전하시며 우리를 먹이시고 가르치신다. 그분은 우리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악마에 맞서 싸우는 것처럼 자연에 맞서 싸우게 하신다. 자연은 하나님의 감독하에 있지만 우리는 질병과 재앙과 싸우도록 초대받았다.
--- p.80~81
재난은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극은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것,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분리한다.
--- p.95
나는 자연 재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땅의 어떤 보물도 그리스도를 아는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준다고 말한 존 파이퍼(John Piper)의 말에 동의한다. 이것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결코 고통과 죽음이 빼앗을 수 없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
--- p.97
자연재해는 아직 다가올 시대의 경고다. 분명히, 뉘우치지 않은 사람도 반드시 비슷한 재난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심판, 경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심판으로 끌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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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시 세계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자연 재해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서재에 『다시 온 최후의 날』(The Last Days Are Here Again)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많은 사람이 그 멸망을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행성에서 생명의 중단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의 격변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의 일부가 될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미래의 ‘자연재해’를 생각해 보라.
--- p.121
자연 재해는 인류를 죽은 사람과 산 사람으로 나눈다. 죽은 사람은 회개할 기회도 없고, 생명과 구속에 대한 두 번째 기회도 없다. 산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아직 가까이 있다.
--- p.128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으로 돌아간다. 만약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또한 그분은 선한 분이신가? 그분은 우리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으신가? 우리가 “예”라고 대답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경우, 우리는 자연이나 인간에 의해 야기된 재난을 하나님이 허용(또는 지시)하실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