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나는 70여 년 살아온 내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내 인생 가운데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운명처럼 주어진 부분이 있다. 가령 부모님이 원치 않았건만 내가 태어나게 된 것을 나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나는 낯선 독일에 와서 간호사로 일했고, 신학을 공부했고, 독일로 이주해서 살아가다가 죽음을 앞둔 이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단체를 만들었다. 또한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지금은 나를 사랑해주는 한 여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
나는 내게 주어진 운명이 무엇이고, 내가 결정해온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도 있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데로 나를 이끌었다.
--- p.9~10
나는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의 미움을 받으며 자랐다.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영영 내 곁을 떠나셨을 때, 그래서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남게 되었을 때,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이 가득했던 그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 자신이 진정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기나긴 시간이 지나,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신이 내려준 위대한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잘났기에, 예쁘기에, 훌륭하기에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로 그러한 것이다.
--- p.10~11
돌이켜보면 분명 굴곡 있는 삶이다. 하지만 나는 난관이 있다고 해서 그 불행 가운데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에게는 분명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나는 그렇게 나 스스로를 존중하면서 꾸준히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 p.165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예우를 받으며 삶을 마감하고 싶을 것이다. 많은 이들과 협력하여 그런 장場을 만들고 싶은 것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나의 꿈이다. 어머니가 끓여준 것만 같은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고, 마음껏 옛날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고향 집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친구들의 보살핌을 받고 고향의 노래를 들으며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비록 고향에 돌아갈 순 없을지라도 편안히 눈감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삶의 끝자락이 그렇게 마감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p.204
지금까지 나는 48년간 독일에서 살아왔다. 스물두 살의 젊은 아가씨는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다. 그간 나는 독일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며 성장했다. 간호사로, 디아코니세로, 성서극 전문가이자 신학 석사로, 호스피스 팀장이자 슈퍼바이저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다. 줄곧 배움을 놓지 않았던 것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배움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안주하면서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고민하고 대화하고 공부하는 자세야말로 나 자신이 변화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