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나온 소녀에게 오토마츠는 품 속에서 데운 캔커피를 건네주었다. '너, 참 귀엽구나. 어머니가 상당한 미인이시겠어. 근데, 뉘 집 앨꼬?' '자, 반씩 나눠 먹어여.' '아저씨는 일없다. 내 걱정 말고 너나 마셔라.' 마을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오토마츠는 줄곧 지켜보왔다. 하나둘 도회지로 떠나버렸지만, 어떤 얼굴도 잊을 수 없었다. 남의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귀엽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기 피를 나눈 제 아이라면 어떠랴. 오토마츠는 생각하곤 했다.
--- pp. 28-29
할아버지는 버선발이 늘 깨끗했다. 목욕탕에서는 남들이 꺼려하는 문신은 볼 테면 보란 듯이 서슴없이 내놓으면서, 전쟁터에서 얻은 왼쪽 어깨의 흉터에는 반드시 수건을 걸쳐 두었다. 그리고타일 바닥 우에 널찍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치에코의 발가락사이며 귀 뒤를 아플 정도로 뽀득뽀득 씻어 주었다.
--- p.242pp.16-21
'이젠 됐어요, 고로 씨. 고마워요, 셰셰.'
발 밑에 홍자색 가지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니. 이러면 이제 함께 못 살잖니? 밥도 못 먹고 술도 못 마시고 안아주지도 못하잖니?'
꽃은 속삭이듯이 흔들렸다.
'고마워요, 고로 씨, 저 이제 괜찮아요. 손님들 다 친절했지만 고로씨가 제일 친절해요. 나하고 결혼해주었으니까요.'
고로는 꽃잎 위에 후두둑 눈물을 떨구었다.
--- p.57
'유키코....어제 저녁부터 차례차례 자라가는 모습을 이 아버지에게 보여준 게로구나. 저녁 참에는 책가방을 메고 아비 눈앞에서 차렷 해 보였지. 그리고 한밤중에는 좀더 자란 모습을, 그리고 이번에는 비요로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십칠 년간 성큼성큼 자라는 모습을 아비에게 보여준 게로구나......'
--- p.44
'오토마츠, 잘 봐두시게. 나랑 자네랑, 이 고철하고 함께 가세.'
'진짜 눈물나게 하실 참이에요, 아저씨?'
기관사는 조수석에 선 채 콧물을 훌쩍였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철도원이다. 칙칙폭폭 푸우, 미련한 쇳소리를 내지르며 강철 팔뚝을 흔들며 꿋꿋이 달리는 철도원이다. 인간처럼 눈물따위는 흘릴수 없지, 암. 센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 p.48
십칠 년 전 눈 내리던 날 아침. 아내의 팔에 안긴 유키코를 저 홈에서 보냈다. 평소 하던 그대로 수신호를 하여 기차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기차로 유키코는 싸여 갔던 모초에 말려 차디찬 몸이 되어 돌아왔다.
'당신, 죽은 아이까지 깃발 흔들며 맞이해야 되겠어요?'
아내는 눈 쌓인 홈에 쪼그리고 앉아 죽은 유키코를 꼭 끌어안고 그렇게 말했다. 그때 뭐라고 대답했던가.
'그래도 내 일이 철도원인데 어쩌겠어. 재가 홈에서 깃발을 흔들지 않으면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누가 기하를 유도하겠어? 전철기도 돌려야 하고. 학교가 파한 아이들도 다들 돌아올텐데.'
--- p.27
손님들 모두 친절하지만, 일하면서 고로 씨 잊지 않습니다. 진짜입니다. 손님을 고로 씨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되어서 손님이 기뻐합니다. 고로 씨 태어난 곳, 바다 바로 옆이지요. 여기에 왔을 때 근처인가 하고 지도에서 찾았습니다. 너무나 멀어서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나와 똑같아요. 먼 곳에서 일하러 와 있는 고로 씨, 나와 똑같아요. 내가 죽으면 고로 씨 만나러 와줍니까.
만약 만나면 부탁 한 가지만. 나를 고로 씨 묘에 넣어주겠습니까. 고로 씨의 아내인 채로 죽어도 좋습니까. 무리하게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고로 씨 덕분에 일 많이 했습니다. 고향 집에 돈 많이 부쳤습니다. 죽는 것 무섭지만 아프지만 괴롭지만 참습니다. 부탁 들어주세요.
--- pp. 84-85
기관사는 조수석에 선 채 콧물을 훌쩍였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철도원이다. 칙칙폭폭 뿌우, 미련한 쇳소리를 내지르며 강철 팔뚝을 흔들며 꿋꿋이 달리는 철도원이다. 인간처럼 눈물 따위는 흘릴 수 없지, 암. 센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