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의 입에 붙어 다니는, 죄송하다는 의미의 ‘스미마센(すみません)’이라는 인사말도 재미나다. 길을 가다 살짝 스쳐도 ‘스미마센’, 가게에 들어가서 ‘나 좀 보세요’ 하고 말을 걸 때도 “스미마센”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죄송하다기보다는 실례한다는 의미일까. 지하철에서 발이 밟히면 ‘스미마센’이라고 하고 밟은 사람도 ‘스미마센’이라고 한다. ‘밟혀서 죄송합니다’, ‘밟아서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저기요, 발 좀 치워주세요’라는 말이고, ‘아이구, 죄송합니다’라는 말이다. --- p.28
섬나라 일본에는 물이 넘쳐날 것만 같은데, 지독하게 재사용을 하고 아낀다. 우리는 물건을 헤프게 쓰거나 돈을 흥청망청 낭비할 때 ‘물 쓰듯 한다’는 말을 한다. 일본도 같은 뜻의 말로 ‘더운물 쓰듯 한다(湯水のように使う)’가 있다. 여기저기에서 펑펑 쏟아지는 온천이 많은 나라인지라 물이 아니라 더운물이라고 한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물 쓰듯’ 물을 쓰지는 않는다. --- p.44
정초 일본 사람들의 첫 쇼핑은 후쿠부쿠로로 시작된다. 백화점만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가게에도 후쿠부쿠로라고 적은 쇼핑백이 가게 앞을 장식한다. 장난감 가게의 후쿠부쿠로에는 장난감이, 빵집의 후쿠부쿠로에는 빵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백화점처럼 다양한 물건을 파는 곳의 쇼핑백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지불한 돈보다 훨씬 비싼 물건들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복불복이다. 여기에 본인이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가 관건이다. 어쨌든 공개되지 않은 물건에 대한 기대, 더 나아가 행복과 행운을 얻으려는 마음이 이것을 구매하게 한다. 후쿠부쿠로에는 ‘복’이 함께 한다는 막연한 생각도 한몫한다.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빼빼로데이니 하면서 초콜릿과 사탕을 파는 상술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후쿠부쿠로에는 이런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정초 이른 아침 도쿄의 백화점 앞에는 후쿠부쿠로를 사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 p.98
마지막 성화 봉송자도 특별했다. 19살의 청년 사카이 요시노리(坂井義則)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와세다대학 육상부 소속으로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선발되지 못했다. 좌절에 빠진 그를 마지막 성화 봉송자로 지목한 것은, 그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날이 바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세계 언론은 그를 ‘원자 보이’라고 불렀다.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한 시간 반 뒤에 태어난 그는 사실상 피폭자는 아니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원폭 투하지인 히로시마시에서 직선거리 약 60km 떨어진 히로시마현 미요시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피폭자였다. 여하튼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푸른 하늘 아래 성화대 계단을 향해 뛰어 올라가는 모습은 바로 일본의 부흥과 평화를 상징했다. --- p.193
일본에서 ‘목욕’은 단순히 몸을 씻는다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아버지가 퇴근하면 “다녀오셨습니까”라는 인사말 다음 “식사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목욕을 하실래요”라는 대화가 이어진다. 습하고 끈적끈적한 날씨, 달리 몸을 녹일 곳이 없는 일본에서 목욕은 먹을거리만큼이나 절실한 것이다. 그러니 ‘헤이세이 시욕’은 그 어떤 ‘베풂’보다도 큰 의미가 있다. --- p.222
중국의 황제는 하늘을 대신해서 세상을 통치하는데, 황제가 덕을 잃으면 천명에 따라 왕조의 성이 바뀐다. 바로 역성혁명이다. 새 왕조가 탄생하고 새로운 최고 권력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일본 천황의 자리는 힘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손강림 신화에서 비롯된 천황가는 혈연으로만 계승이 가능하다. 고로 일본 역사에서 천황의 존재가 뒷방으로 물러난 적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천황가는 없어지지 않았다. 설사 시대의 권력자가 천황가를 없앤다고 해도, 그 스스로 천황을 자처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일본 천황가는 동일 왕조가 개창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다. --- p.231
2014년 9월 27일 온타케산(御嶽山) 화산 폭발이 있었다. 사고 발생 사흘째 되는 날, 유가족은 “오늘 수색은 유독가스 때문에 오후 1시경 끝났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산 정상에 분명히 생존자가 있을 것이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이게 무슨 말인가. 내 새끼가 저기에 있다면 나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제발 찾아달라. 끝내지 말아라”라고 울며 매달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구조대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유독가스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런 반응은 어제오늘 만들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자연재해를 겪어온 기나긴 역사는 일본인에게 ‘나로 인하여 ‘화(和)’가 깨져서는 안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는 구조대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저변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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