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는 눈앞이 피리링 돌았다. 이 아찔함의 일부는 갈비뼈 부근의 통증에서 유발되었을도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그야말로 영국 귀족다운 정 떨어지는 말투와 가로등 하나를 무색하게 할 만큼 환한 얼굴을 연결시키느라 머리를 핑핑 돌린 탓이었다. 그가 현기증에 시달리는 동안 엠마는 나름대로 상대의 점수를 매겼다. 현재 세인트 게르투루드 여학교의 책임자인데다, 그 전에는 동교의 교사로 재직했고, 또 그전에는 여섯 살 때부터 동교의 학생으로 재학했던 경험상, 엠마는 사람보는 눈이 빨랐다. 척 보기만 해도 미국 카우보이의 표상과도 같은 이 남자는 필요해 마지않던 그 남자였다. 성격보다 외모가 더 괜찮은 그런 남자.
노릇노릇한 비스킷 색조의 스테이슨 모자가 마치 몸의 일부이고, 그의 머리에서 둥지를 튼 것처럼 편안하게 얹혀진, 밑으로 윤기 흐르는 까만 머리칼이 굽실거렸다. 캐딜락 상표가 찍힌 남색 티셔츠는 잘 발달된 것 이상인 가슴을 보여주었으며, 빛 바랜 청바지는 꽉 조여든 엉덩이와 실팍한 다리에 착 달라붙은 터였다. 카우보이 부츠는 수제화였다. 여간 낡은 게 아니었지만 말거름의 반경내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듯했다. 이목구비로는 쭉 곧은 콧날과 강인한 인상의 광대뼈, 모양 좋은 입술에 하얀 이가 가지런했다. 그리고 저 눈! 히야신스와 제비꽃을 합해놓은 보라빛이었다. 남자가 저런 눈을 하고 있다는건 범죄다.
엠마는 짧지만 예리한 훑어보기를 통해 용모뿐 아니라 성격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는 전부를 파악했다. 구부정한 자세에선 게으름을, 고개의 각도에선 오만함을, 눈꺼풀을 반쯤 내리뜬 진보라색 눈에선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색기(色氣)를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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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저택과 연결된 문으로 어슬렁어슬렁 향했다. 엠마는 뒤에서 그를 불러 세웠다.
'트래블러씨?'
그가 돌아섰다.
'내 가방은요?'
그는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내리쉬고 또 어슬렁거리며 되돌아와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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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장은 쿵쾅거리며 한꺼번에 피를 혈관으로 내보냈다. 귀에서 윙윙거리는 이명이 울리고, 시야가 흐릿해졌으며, 뼈마디가 떨려왔다. 그녀는 조리대 모서리를 힘껏 움켜잡았다. 모든 자기보호 본능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안 돼! 제발! 이것만은 안 돼. 이 남자만은 안 돼. 제발 하느님...사랑만은 안 돼요.
난 이이를 사랑하는 거야. 열중한 것도 심취한 것도 아니라, 사랑. 사랑에 빠졌다는 각성은 그녀가 언제나 꿈꿔왔던 대로 부드럽게 찾아오는 대신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운명적인 사건처럼, 삶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충격처럼 그녀를 내리꽂았다. 이건 극도로 부조리한 각성이었다.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너무 끔찍하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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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혼했어도 그냥 케니 트레블러라면 당신 호칭은? 음, 좋다, 이 문제에 대해선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지. 처녀 때 성을 지키던가 내 성을 따라. 하지만 '레이디 엠마 웰즈-핀치 트레블러'는 안 돼. 그런 엉터리 짬뽕 같은 이름의 여자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우리 텍사스에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 텍사스는 의외로 보수적인 구석이 많거든. 자, 내 말의 핵심을 유리알처럼 명쾌하게 알아들었어?'
'완벽하게요.'
엠마는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 반지를 빙빙 돌리며 내일쯤 손가락이 퍼렇게 물들지 않을까 궁리했다. 그녀는 케니의 손을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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