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의 콰 마을에는 한 그루의 야자수가 있었는데, 그 과일을 먹으면 석녀라도 임신한다고 믿었다. 유럽에서는 '오월제 나무(May-tree)' 또는 '오월제 기둥(May-pole)' 이라고 부르는 나무가 여자와 가축에 대해 이와 동일한 효험을 베풀어준다고 여겼다. 예컨대 독일의 어떤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5월 1일에 소나 말의 다산을 위해 마구간 입구에다 '오월제 나무'나 '오월제 관목(May-bushes)'을 하나씩 세운다. 그러면 암소들이 많은 젖을 생산할 거라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인도 5월 1일에 초록색 가지를 집에 걸어놓으면 그해 여름에 많은 젖이 생산될 거라고 믿는다."
--- 제9장 나무숭배 중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에 종종 묵은 오월제 나무를 불사르는 풍습이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라하 지방에서는 젊은이들이 오월제에 나무를 꺾어 방 안에 걸린 성화(聖畵) 뒤에 놓아두었다가 다음해 오월제 때 난롯불에 태운다. 뷔르템베르크에서는 수난주일(Palm Sunday)에 각자의 집에 세워진 나무를 한 해 동안 그냥 놓아두었다가 불태운다."
--- 제10장 근대 유럽과 나무숭배 중에서
"흔히 근친상간의 죄는 기근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풍요다산의 여신에게 그 속죄를 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풍요다산의 여신은 먼저 그녀 스스로가 풍요다산적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디아나에게는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 세르비우스의 견해를 믿어도 좋다면, 디아나의 배우자는 네미 숲의 왕으로 표상되고 구현되는 비르비우스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의 결합은 대지와 동물과 인간의 다산성을 촉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매년 반복적으로 디아나와 비르비우스의 인형 또는 그들로 분장한 신랑신부를 연출하여 둘의 신성한 결혼을 축복했다. 그럼으로써 풍요다산의 목적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 제12장 신성한 결혼 중에서
"그런 쇠퇴의 징후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왕의 부인들을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정력의 감소 현상이었다. 보통 왕에게는 수많은 부인들이 있었고, 파쇼다(Fashoda)의 하렘에는 그녀들을 위한 처소들이 수없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어쨌든 저 불길한 성적 쇠퇴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왕의 부인들이 그 사실을 장로들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장로들은 보통 그 운명을 왕에게 알리기 위해, 무더운 오후에 낮잠을 자고 있는 그의 얼굴 위에다 흰 천을 덮어주고는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이렇게 왕의 죽음이 선고되면 바로 형 집행이 이어졌다. 이를 위해 특별히 세운 오두막에 왕을 모시고 들어가면, 거기서 왕은 묘령의 한 처녀 무릎을 베고 눕는다. 그런 다음 오두막 문이 굳게 닫히고 왕과 처녀는 완전히 밀폐된 오두막 안에 죽을 때까지 유폐된다. 물론 이들에게는 일체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제공되지 않으며 불도 때주지 않는다. 이리하여 둘은 굶주림과 추위와 호흡 곤란으로 죽어간다. 이 오래된 관습은 지금으로부터 약 다섯 세대 전에 폐지되었다. 이유는 이런 식으로 죽어간 왕의 고통이 너무도 극심했기 때문이란다. 그 후에도 장로들은 왕에게 죽음의 운명을 고했으나 왕의 살해 방식은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 왕은 그를 위해 특별히 지어진 오두막 안에서 교살당하게 된 것이다."
--- 제24장 노쇠한 왕의 살해 중에서
"사실 종교의 발전에 음악이 끼친 영향은 많은 공감을 자아낼 만한 연구 주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음악은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사람을 감동시키는 예술로서, 종교적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표현하는 데에 크게 공헌해왔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음악이란 것이 종교적 신앙에 대해 그저 단순한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상당히 심도 깊은 신앙적 변화를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음악가들은 종교의 형성에 있어 예언자 겸 사상가로서의 역할을 담지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는 독자적인 종교음악을 가지게 되었으며, 각 종교 간 신조의 차이가 그런 종교음악의 악보 속에 표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키벨레의 거칠고 소란스런 음악과 가톨릭 교회의 장중한 의례음악 사이에는 심벌즈나 탬버린의 때려부수는 듯한 소음과 팔레스트리나(Palestrin)라든가 헨델(Hendel)의 장엄한 선율 사이를 구분 짓는 거리만큼이나 먼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서로 다른 음악 안에는 서로 다른 정신 혹은 영혼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엿볼 수 있듯이 프레이저는 실제로 대단한 음악애호가였다고 한다."
--- 제31장 키프로스의 아도니스 중에서
"떡갈나무의 생명이 겨우살이에 있다는 관념은, 겨울이 되어 떡갈나무 잎들이 다 떨어졌는데도 겨우살이만은 여전히 그 나무 위에서 푸르고 무성하게 나 있는 데에 생겨난 것이리라. 이런 관념은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위치, 즉 그것이 지면이 아니라 나뭇가지나 줄기에서 자란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미개인들은 자기들처럼 떡갈나무의 정령도 그 생명을 어딘가 안전한 장소에 의탁하고자 했으며, 그런 장소를 찾다가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장소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로 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앞장에서 미개인들이 그들의 인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아두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는 그 장소야말로 지상에 사는 인간의 생명을 둘러싼 일체의 위험들이 가장 적은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제68장 황금가지 중에서
네미의 사제왕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신화 속의 인물 오레스테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미케네(또는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아가멤논과 그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호메로스에 의하면, 아가멤논이 트로이 원정에서 돌아와 아내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자, 오레스테스는 성인이 된 후 아이기스토스와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삼부작 비극인 〈오레스테이아Oresteia〉에서는 오레스테스가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어머니를 죽인 후 복수의 여신들로부터 피신하기 위해 델포이로 간다. 다시금 아폴론에게서 힘을 얻은 그는 아테네로 돌아가 아레오파고스 법정에 서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배심원들의 판결이 팽팽히 맞서자 아테나 여신이 결정권을 갖게 되어 그를 무죄로 석방했고, 대신 복수의 여신들에게는 에우메니데스('자비의 여신'이라는 뜻)라는 칭호를 주어 그들의 불만을 해소시켜 주었다. 한편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카의 이피게네이아Iphigeneia in Tauris〉에서는 복수의 여신들이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고, 오레스테스는 타우리카로 가서 아르테미스(디아나) 여신상을 아테네로 되찾아오라는 아폴론의 명령을 받는다. 친구 필라데스와 동행한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으나, 모든 이방인들을 신의 제물로 바치게 규정되어 있는 지방 관습에 따라 그들은 체포되었다. 그러나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집행하는 여제사장은 오레스테스의 누이 이피게네이아였고,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 후 그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갖고 함께 도망간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죽은 아버지 아가멤논의 왕국을 계승했으며,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을 합병하기도 했다. 그는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와 결혼했으나 뱀에 물려죽었다. 이런 오레스테스 이야기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 등 고전 문예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으며, 훗날 볼테르의 『오레스트Oreste』,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Iphigenie auf Tauris』, 유진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 장 폴 사르트르의 『파리떼Les Mouches』 같은 문예 및 크리스토프 글루크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Iphig?nie en Tauride〉라든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엘렉트라Elektra〉 같은 오페라에도 등장하는 등 서구인들의 상상력에 풍부한 자극을 주었다."
--- 본문 역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