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그를 좋아했던 것은 실력 있는 교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안경을 벗어 들고 현재의 렌즈를 문지르는 동안 과거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내면서 잊을 수 없는 여담들을 들려주는 교사였기 때문이다. 엉터리 영어로 향수와 함께 떠나는 여행들. 개인사의 토막 정보들. 프닌이 어떻게 Soedinyonnie Shtati(미국)에 오게 되었느냐 하면. “상륙 직전 선상 시험. 걱정할 것 없다! ‘신고할 것 없나?’ ‘없다.’ 걱정할 것 없다! 다음은 정치 문제. 그의 질문은 ‘당신은 아나키스트인가?’ 나의 대답은.” (화자가 편안히 소리 없이 웃는 동안 이야기가 중단된다.) “‘첫째. 우리는 아나키즘 아래의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용적, 형이상학적, 이론적, 신비주의적, 추상적[abstractical], 개인주의적,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그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 이것들은 모두 나에게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토론을 가졌고, 그것의 결과로 나는 엘리스섬에서 2주를 보냈습니다.” (들썩이기 시작하는 복부, 크게 들썩이는 복부, 부들부들 떠는 화자.)
--- pp.12~13
“터진 탁구공. 러시아인.”
“프닌 교수, 맙소사!” 로런스가 소리쳤다. “‘소인이 그자를 잘 아옵니다. 그 나라의 귀금속입지요─’ 이봐, 나는 그 괴짜를 내 집에 들이는 데 절대 반대야.”
--- pp.42~43
티모페이 프닌은 거실에 자리를 잡았고, 두 다리를 po amerikanski(미국식으로) 교차했고, 이런저런 불필요한 디테일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두껍게 요약된 이력서였다. 18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1917년 양친이 티푸스로 사망. 1918년 키예프로 탈출. 5개월간 ‘백군白軍’으로 복무. 처음에는 ‘통신병’이었고, 나중에는 ‘군 정보사’에. 1919년 적화된 크림반도를 탈출해 콘스탄티노플로 감…… “그럼, 긴 이야기를 아주 짧게 줄이자면, 1925년부터 파리 주거, 히틀러 전쟁의 시작기에 프랑스 포기, 지금 여기 있음. 미국 시민임. 반달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기타 과목들을 가르침.
--- pp.44~45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개성이라는 게 있는데.” 마거릿 세이어가 말했다. “그걸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거 같은데.”
“그런데 무시를 하잖아!” 하겐이 외쳤다. “그게 비극이라는 거야! 예를 들어, 저 사람”─환한 표정의 프닌을 가리키며─“누가 저 사람의 개성을 원할까? 아무도 원하지 않아! 세상은 티모페이의 원더풀한 개성 따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내팽개치겠지. 세상이 원하는 건 기계야, 티모페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 p.242
잭 코커럴의 프닌 흉내 연기가 완벽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최소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그 공연에서 나에게 모든 레퍼토리─프닌의 수업, 프닌의 식사, 프닌이 여학생에게 추파를 던지다, 프닌이 선풍기의 영웅 서사시를 쓰다……─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프닌이 자기가 ‘총살당했다’고 말하는 장면까지 갔다. 흉내 연기자에 따르면, 그 불쌍한 녀석에게 그 말은 ‘해고당했다’는 뜻이었다(나는 내 친구가 그런 실수를 할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중에는 그 상황 전체가 얼마나 지겨워졌는지, 이 프닌 사업이 사업자 코커럴의 치명적 강박이 되게 하는 모종의 시적 복수─조롱의 대상을 그가 조롱하는 대상에서 그 대상을 조롱하는 자기 자신으로 대체하는─가 작동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 pp.282~283,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