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40대를 불혹이라고 한 것은 인생의 과정에서 자신의 학문이나 신념이 나름대로 확고해지고 다른 것에 미혹되어 흔들리지 않을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나와 너,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주자연을 포괄하여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다. 20대의 열혈 청춘이 자기를 시험하며 혼돈을 겪은 후, 서른 즈음의 형형색색이던 마음의 프리즘을 지나 마흔에 들어서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들이고 이제 자신을 온전하게 펼쳐가는 자기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흔은 마음공부를 통해 점층적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음을 추스르고 단단히 조여서, 미혹을 잠재울 수 있다면 마흔의 삶은 제2의 서막을 열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중에서
공부는 다름 아닌 바로 물욕을 다루기 위한 삶의 기술에서 출발한다.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맑고 깨끗하게 닦아 가지 못하고, 흐리고 더러운 곳으로 떨어지려는 경향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탁한 곳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다잡게 해주는 것이 바로 공부다. 다시 말하면 착한 본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맑게 지속해가려는 행위가 공부의 원인이며,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에서 탐구해보려는 마음공부다.
---「제1장_삶을 아름답게 하지 않는 공부는 헛공부다」중에서
공평한 마음, 선의 마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이때는 개인적 선의 실천을 넘어 타인과 더불어 하는 사회적 선의 실천으로 나아간다. 이는 곧 앞에서 본 대인의 경지와 통하는 것이다. 반면 선한 마음이 펼쳐지지 못하는 사회적 상황이라면, 개인의 선이라도 펼치겠다는 선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때 부귀와 빈천, 위세와 무력이 나의 선함을 꺾지 못할 정도로 마음공부에 몰두할 때 진정한 대장부가 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내줄 수 없는, 절대 내줘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마음의 바탕은 선이요, 일에서는 본분이다. 그리고 이는 마음공부를 통해 부동심에 이른 인간에게서 가능하다.
---「제2장_맹자, 마음을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중에서
마음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희고 검은 것이 바로 앞에 있다 하더라도, 눈으로 그것을 보지 못한다. 천둥소리나 북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하더라도, 귀로는 그것을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욕심에 가려지기도 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가려지기도 한다. 일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가려지기도 하고, 일을 끝낸다는 생각에 가려지기도 한다. 멀리 있다는 생각에 가려지기도 하고,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가려지기도 한다. 넓다는 생각에 가려지기도 하고, 얕다는 생각에 가려지기도 한다. 옛것을 생각하는 데 가려지기도 하고, 현재의 것을 생각하는 데 가려지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사물은 서로 가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마음공부를 통해 해결해야 할 근심걱정이다.
---「제3장_순자, 마음이 가려지면 근심 걱정이 생긴다」중에서
아무리 재주가 많은 사람도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가엾다. 재주가 부족하더라도 마음공부를 하며 정진하는 사람은 성현도 기쁘게 여긴다. 재주와 학문이 많더라도 마음공부를 하지 않으면 보물이 있는 곳에 가려고 하면서도 길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공부를 부지런히 해도 지혜가 없는 사람은 동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서쪽으로 향하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이 하는 일은 쌀로 밥을 짓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짓은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굶주린 허기를 달랠 줄은 알면서도 마음공부를 하여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은 모른다. 행동과 지혜를 갖추는 일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세상의 욕망과 시끄러움을 벗어버리고 맑고 깨끗한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데는 마음공부가 사다리가 된다.
---「제9장_불교,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