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선생님, 냉전이 무너지게 된 거랑 지금 말씀하시는 대중문화 의 시대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단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195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 세대와는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어. 부모 세대는 끔찍한 전쟁을 겪었고 가난에 시달렸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허다했어. 하지만 자식들은 뭐든지 풍족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영화나 음악 같은 문화생활도 훨씬 풍성하게 누렸지. 당연히 부모들과는 생각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어.”
“하긴 그렇네요. 그런데 서로 생각이 어떻게 달라요?”
“일단 부모 세대는 국가 사이의 전쟁과 대결에 익숙했어. 평화와 번영은 저절로 찾아온 게 아니라, 피땀을 흘려 얻어 낸 결과물이었지. 그러니까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국가를 위해 또다시 자신의 권리를 희생하거나, 전쟁터에 나가 싸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단다.”
“흠, 자식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는 건가요?”
“응. 자식 세대는 평화와 번영에 익숙했지. 그래서 평화와 번영은 세상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여겼어.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는 건 물론이고,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와 제도도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우아, 정말 생각하는 게 완전히 다르네요.”---PP.38~39
“이쯤 되자 케인스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어. 애초에 정부가 모든 경제 문제에 끼어들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였다는 거지. 정부의 개입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결국엔 정부가 일일이 국가 경제를 조정하는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경제 성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야.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등장한 게 바로 ‘신자유주의’란다.”
“신자유주의가 뭔데요?”
“케인스 등장 이전에는 정부가 경제에 손을 대지 않는 ‘자유방임주의’가 세계적인 대세였다고 했잖니? 신자유주의는 케인스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다시 자유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야. ‘새롭게 등장한 자유주의’란 뜻에서 신자유주의라고 하지.”
“그럼 기업이 망하고 실업자가 늘어나도 정부는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건가요?”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가 어설픈 대책을 쓰기보다는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과정을 심판처럼 지켜보면 된다고 생각했어. 누가 법을 어기는지 감시하고, 불필요하게 발목을 붙잡는 규제를 없애 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는 거야. 당장은 실업자가 늘어나서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성장하며 새롭게 노동자를 고용하면 경제는 자연스럽게 안정을 되찾는다는 거지. 노동자도 마찬가지야.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 테니, 그만큼 경제 성장에 보탬이 되겠지.”---PP. 93
“그러게 말이다. 아무튼 개혁 개방 이후 전 세계의 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지었어. 중국의 낮은 인건비를 활용해서 제품을 싸게 만들려고 한 거지. 그 결과 2000년대로 접어들면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제조업 국가로 우뚝 서게 된단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어지간한 물건은 거의 전부 중국에서 생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집에 가서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는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렴. 아마 적어도 집 안의 물건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만든 물건일걸?”
“헉, 정말 그 정도인가요?”
“그래. 그래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지. 그야말로 중국에서 전 세계의 모든 물건을 생산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의미야. 더구나 요즘 중국은 선진국이 만들어 내던 각종 첨단 제품에도 도전장을 던지고 있어. 그래서 중국산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원래 이런 제품은 우리나라나 미국, 일본이 꽉 잡고 있었는데, 중국의 기술이 몰라보게 발전한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해서 요즘에는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이 어려움을 겪고 있대.”
“그러다가 중국이 미국보다 더 부자 나라가 되는 거 아닌가요?”
깜짝 놀란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용선생은 씩 미소를 지었다.---PP. 166~167
“그래서 금융 회사도 똑같은 꼼수를 썼어. 은행에서 사 온 증권을 여럿 모아서 신용 등급이 높은 증권부터 낮은 증권까지 셋으로 구분한 다음, 이 증권을 담보 삼아서 또 다른 증권을 만들어 팔았지. 그러면 금융 회사도 마찬가지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어. 이때 가장 높은 신용 등급을 ‘프라임’, 가장 낮은 등급을 ‘서브 프라임’이라고 불렀단다.”
“신용 등급이 높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직장이 튼튼하고 수입도 확실해서 빌려 간 돈을 떼어먹지 않고 꾸준히 갚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야. 당연히 신용 등급이 높은 프라임 증권이 잘 팔리겠지? 그래서 금융 회사는 프라임 증권에는 이자를 낮게, 서브 프라임에는 높게 쳐줬단다.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많은 이익을 준 거지.”
“와, 복잡해. 돈 한 번 빌려주면서 다들 머리를 엄청나게 썼네요.”
“흐흐. 맞아. 집은 하나인데, 이 집을 기반으로 삼은 파생 상품이 엄청 많이 만들어진 거지.”
“그렇게 어려운 증권을 누가 사기나 하나요?”
“구조가 복잡한 것처럼 들리지? 하지만 원리는 단순해. 집 담보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꾸준히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한, 증권을 사 간 사람은 손해 보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집 담보 대출금을 꾸준히 갚지 않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어. 다른 돈은 몰라도, 이 돈을 안 갚았다가는 담보로 잡힌 집을 빼앗기고 노숙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PP. 22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