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잔잔하고 훈훈한 가족 이야기를 보고 누군가는 너무 흔해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반대로 이런 가족이 어디 있냐고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가족이라는 개념의 특이한 점인 것 같다. 나의 당연함이 남의 당연함이 아닌 관계.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다 있는 관계. 끊어질 상황에도 잘 끊어지지 않는 관계.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보이는 관계.
사람은 자기의 필터로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겪고도 누군가는 눈물을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웃음을 기억할 것이다. 야마모토 사호 작가는 후자, 그러니까 웃음을 잘 기억하는 사람 같다. 그런 사람이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는 작가의 그림체처럼 둥글고 고소하다. 마치 김 맛 센베이처럼. 익숙한 듯 자꾸 손이 가는 맛. 엄마 요시에가 그런 옛날 과자를 파는 집 딸이었던 건... 관계없겠지만!
- 오지은 (음악가, 작가)
야마모토 사호의 만화에는 낭창한 걸음걸이로 건네는 또랑또랑한 힘이 있다. 말랑한데 어째 단단하고, 녹록해서 더 힘이 센. 그런 기운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데쓰오와 요시에』를 읽고 이해했다. 긴 시간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보란 듯이 자라난 야마모토 사호만의 태평함. 그의 태생적 나태함은 데쓰오와 요시에의 지붕 아래에서 알찬 태평함으로 자라나지 않았을까. 어떤 하루에도 ‘아이쿵 이런’ 하며 다음 페이지로 넘길 줄 아는 데쓰오와, 뒤끝 없는 잔소리를 강타하는 요시에. 그리고 그 둘을 나의 데쓰오와 나의 요시에라는 캐릭터로 볼 줄 아는 자신까지. 마음껏 태평할 수 있던 나를 기억하기에 그 힘으로 자신만의 길에서 기꺼이 치열할 수 있다고 그는 작품으로 보여준다.
야마모토 사호는 꼭 집에 데리고 가서는 난데없이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반 친구 같다. 우리가 이렇게 친했던가? 싶다가 어느새 둘도 없는 사이가 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여지없이 내가 보인다. 그의 만화는 독자 자신의 삶을 멀리까지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웃다 울다가 책을 덮으면 가족의 이름이 새삼스레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의 한 시절에는 우리만의 리듬이 있었다는 발견도. 『데쓰오와 요시에』는 데쓰오와 요시에라는 어른 앞에서 만큼은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의 성장 일지이자, 데쓰오와 요시에에게 뒤늦게 보내는 수다스러운 딸로서의 말풍선이다. 그 안에는 여전히 자라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임진아 (삽화가, 에세이스트)
방학 숙제로 ‘아빠 관찰 일기’를 써서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은 초등학교 시절의 그 여름처럼, 사호는 인생이라는 길고 긴 방학 동안, 태어나보니 이미 자신의 아빠와 엄마였던 데쓰오와 요시에를 마음 가까이, 그러나 한 발 떨어진 채로 차곡차곡 그려낸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그들의 기분을 대변하거나, 잘 안다는 핑계로 보지 못한 부분까지 멋대로 꾸며내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소외되는 일 없이, 안심하고 그들을 지켜보며 온전한 자신만의 감상을 품는다. 그러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무심코 얼굴도 모르는 한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게 되는 것이다.
- 황국영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