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양은 참된 승상이었다. 그는 백성을 어루만질 줄 알았고, 모범을 보일 줄도 알았다. 진실로 충성을 다한 자는 비록 원수라도 상을 주었고, 법을 어긴 자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벌을 주었다.(...) 마침내 백성들 모두 법을 두려워하고도 지켰으니, 형법이 엄정하여도 원망하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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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이 중용한 사람들은 모두 덕과 재능을 겸비했는데, 이것은 그의 품격과 관계가 깊다. 제갈공명은 덕이 많고 재주도 뛰어난 큰 현인이었다. 그가 아직 벼슬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머무를 때, 그는 이미 천하가 삼분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융중에서 유비를 만났을 때 정확한 전략을 이야기 했다. 그는 북쪽으로 중원을 차지하고,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죽을 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가 이렇게 숭고한 품격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병으로 위급했을 때, 후주 유선에게 올리는 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저희 집에는 뽕나무 800주와 밭 50경(頃)이 있어 저희 식구가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제가 밖에 나가 있을 때는 필요한 것을 관에서 모두 제공해 주었으므로, 특별히 생계를 돌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죽게 된 지금, 안으로 다른 재산이 없게 하고 밖으로 남은 재산이 없게 한 것은, 폐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갈공명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확인해 보니, 그가 말한 대로였다.
제갈공명이 몸소 청렴한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의 신하들도 대부분 청렴하게 지냈다. 비위도 성격이 검소해 집에 재산을 쌓아 놓지 않았고, 아들들은 거친 삼베옷을 입고 간소한 식사를 했으며, 집에서 나가고 들어올 때 마차를 이용하지 않아 일반인들과 같았다고 한다.강유도 집이 매우 형편없었고 재산도 없었으며, 첩도 없었고 잔치 같은 것은 아예 벌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 p.89~90
유현덕이 강에 몸을 던지려고 한 것과 조조가 민심을 사려고 한 것은 모두 위선이었다. 그런데 조조의 위선은 백성들이 알아챘지만 유비의 위선은 백성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똑같은 위선이었지만 유현덕은 조조보다 한 수 위였다.
--- p.142, ---p1.-5.
수많은 삼국시대 인재들 때문에, 다른 시대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눈에 뛰지 않아 조물주가 삼국을 편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서진의 문학가 좌사는 그의 시 영사에서 '어느 곳엔들 뛰어난 인재가 없으리요? 다만 초야에 흘려 두고 찾지 않을 뿐.' 이라고 지적했다. 즉 어느 시대나 인재가 없었던 게 아니라, 인재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인재를 발굴하지 못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인재가 발굴되지 못했던 이유는 인연이 닿지 않았거나 군주가 인재를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
천하를 바로잡으려면 인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군주들은 대부분 예를 갖추어 아랫사람을 대했으며 온갖 방법으로 인재를 모았다. 이러한 시기가 바로 인재들을 수확하는 계절이었고, 능려 있는 인물이 자신을 드러내기 좋은 기회였다.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