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위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양한 문제점으로 고민할 수 있다. 그 중에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이 가장 힘들지 않을까?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고 위하면서 말이다. 사랑하며 살아갈 때 가장 위대하다. 역으로 그만큼 힘든 일이란 생각도 든다.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책을 읽으며 위로와 치유를 처음 만난 것은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네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든 내 마음의 문은 너에게 활짝 열려 있다. 안으로 들어오라. 네가 나를 파괴하고 파멸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에게 어떠한 나쁜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나의 마음이여,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당신의 미친 마음과 싸우는 대신 그 마음을 평화롭게 대하라. 그 자비의 힘은 너무도 크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마음은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온순하게 그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당신은 부드럽게 그 마음을 토닥이며 말한다.
“그래 내 마음이여, 그래 내가 다 안다.”
?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글귀를 보았을 때 감동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찼다. 위로받고 있었다. 독서가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책 읽기에 빠지는 강렬한 힘은 이런 것이다. 지금은 글귀를 보아도 그때만큼 감동적이지 않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글귀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두통이 왔을 때 소화제보다 두통약이 효과를 보는 것과 같다. 마지막 문장 “그래 내 마음이여, 그래 내가 다 안다.” 그 짧은 글귀가 빙산처럼 꽁꽁 얼었던 마음을 눈 녹듯 녹여주었다.
본문 33p.
어느 날, 책을 만났다
어느 날이었다. 정말 어느 날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2011년 7월경이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다 우연히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어떤 경로로 책을 찾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 제목에 끌렸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억의 한계다. 아마 내 삶을 리드하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책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책을 만난 것이다.
책은 충격적이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말했지만 실감하지 못했다. 어딘가에 끌려가듯 책을 읽으며 책이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책을 보며 느낀 것은 ‘내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였다. 충격적이었다. 책을 읽어야 했다. 지금의 삶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독서의 열정으로 이어졌다.
책 읽는 시간은 신세계였다. 휴일이면 방안에 처박혀 종일 꼼짝 않고 책을 읽었다. 필사도 했다. 행복했다. 숨이 트이고 살 것 같았다. 그 당시 종일토록 부정적인 생각만 반복했다. 책을 만나면서 나는 변화를 꿈꿨다. 책 속 글귀는 천 년 묵은 산삼이었다. 그 산삼을 먹고 점점 정신건강을 회복해가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동안 읽었는데 삶의 의욕이 되살아났다. 신기했다. 본격적으로 꾸준히 책을 읽어보리라 생각했다. 책 읽기의 가능성을 예감했다. 2011. 8. 26. 39세 생일을 맞아 결심했다. 무조건 읽자. 무대뽀 정신으로 읽어보자. 한 달여간 책을 읽으며 느낀 행복은 책 읽기 도전의 충분한 준비운동이 되었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30대와 다른 40대를 맞이하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 변화가 오는지 인생이 바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책 읽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본문 36p.
내가 읽는 이유
우리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로 독서하고 공부하자. 조상을 위해, 부모를 위해, 후손을 위해 여기서 일하다가 같이 죽자. ?세종대왕
나는 왜 책을 읽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본다. 이러한 질문 앞에서 늘 떠오르는 한 가지 이미지가 있다. 책 읽기를 시작하기 전의 일이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였다. 삶의 고단함을 혼자서 어깨에 메고 있는 듯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랐다. 여전히 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리가 없어 멍한 눈을 하고 컴컴한 버스 창밖을 내다보았다. 삶의 의미도 희망도 없이 한숨만 흘러나왔다. 한참을 지나 간신히 지친 몸을 기댈 자리 하나가 생겼다. 나사 풀린 나무인형 피노키오처럼 풀썩 주저앉아 자리에 몸을 기댔다. 그때부터 또다시 시작된 잡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해결도 되지 않는 잡념들이 나를 괴롭혔다. 어제와 다른 고민거리도 아닌데 부정적인 생각을 되풀이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너무 싫었다. 하루 종일 생각해도 끝도 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 어제도 하고 한 달 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며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 아니던가.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속상하고 화가 났다. 열심히 산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삶,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 운명처럼 책을 만났고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 주었다. 내가 읽는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본문 130p.
번뜩임은 움직임에서 나온다
책을 읽다가 생각이 막히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이 멈추어 섰을 때 몸을 움직이면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일상생활을 하며 몸을 움직일 때 번득이는 생각을 만난다. 흐르는 물에 설거지할 때, 샤워할 때,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을 메모해두기 위해 메모지와 펜을 가까이 두면 흘러가는 생각을 붙들 수 있다. 생각을 글로 남겨 두면 나중에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 집안 곳곳에 메모지를 둔다. 주방, 욕실, 거실, 침실 등 움직이는 곳곳에 메모지를 둔다면 생각이 떠오를 때 바로 기록할 수 있다.
1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면 잠시 휴식하면서 몸을 이완시켜주자. 책 읽기도 공부법과 다르지 않다. 잠깐씩 쉬어야 한다. 눈을 돌려 움직이고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한다. 생각은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서 할 수 있지만, 몸을 움직이다 보면 생각도 함께 움직인다. 움직임은 몸과 마음의 근육을 만든다. 생각할수록 생각 근육이 생기고 몸을 움직일수록 몸의 근육이 생긴다. 우리는 멈춰 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추운 겨울 수도꼭지에 물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얼어서 수도가 막히고, 물이 웅덩이를 만나서 흐르지 못하면 썩는다. 생각도 흐르지 않으면 굳어진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은 살아 있음이다.
본문 153p.
전심을 다하는 독서
한 측면에서도 성실함을 지닐 수 있으니, 성실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교화된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실함이라야 교화시킬 수 있다. ?주희
독서를 시작하고 책 읽기에 정성을 다했다. 성현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차가웠던 마음은 봄빛에 눈 녹듯 녹아내리고 겸손도 알게 되었다. 양서는 마음을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독서를 시작하고 논어를 읽고 또 읽었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보고 또 보고 베끼고 또 베꼈다. 반복은 연구의 어머니라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 작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조용하게 논어를 필사했다. 그 느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삶이 힘들다고 느끼던 순간, 책은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해주었다.
양서를 만나다
말과 행동에 어긋남이 없는지 살폈다. 잘못하고 있으면 고쳐 나가려 노력했다. 책의 내용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지만, 삶을 반성하고 잘못된 생각을 알아가며 바꾸어 가기에 충분했다. 논어를 베껴 쓰기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아닌지 의심하거나 점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책을 보며 손으로 베껴 쓰기도 하고 블로그에 공유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 나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일상생활을 하면서 말과 행동을 하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책 읽기는 의식을 서서히 바꿔주었고 생각의 패턴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논어》, 《도덕경》, 《명심보감》, 《대학》, 《중용》, 《손자병법》을 틈틈이 읽었다. 볼수록 새롭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우려낸 곰국처럼 진한 울림을 주었고 볼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는 만큼만 생각하는 정도였지만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성인의 가르침에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양서는 나의 삶의 지침서가 되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