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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삼킨 짐승 2
eBook

불을 삼킨 짐승 2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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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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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4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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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4.7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0.4만자, 약 3.4만 단어, A4 약 66쪽?
ISBN13 979115682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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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청청
오싹물, 미스터리물, 귀신물을 좋아하는 시대물 마니아입니다.
블로그 하고 있으니 놀러 오셔도 좋습니다. :)
http://blog.naver.com/cheong_yo

▣ 출간작

불을 삼킨 짐승(전3권/완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쏴아아.
간질간질한 소리에 소이가 장지문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란 황금빛 태양을 머금었던 창호지문이 벽색을 안았다.
“비님이 오시는구나.”
소이가 조그마하게 입속말을 하고는 살며시 웃었다. 아무도 모를 비밀. 그 감추어진 마음을 혼자 들여다볼 때의 두근거림이란, 설렘이란.
“다원(茶園)에 들러보아야겠지.”
그와 비가 오는 날에 만나자고, 그리 장난스런 약속을 하고 헤어졌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 뒤에, 소이의 귀에 대고 그가 제멋대로 해버린 약속. 자꾸 떠오르는 기억에 소이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는 콩콩 뛰는 맥박을 가라앉혀본다.
‘말도 안 돼. 언제부터 그를 기다린 거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 연모를 시작한 여인의 눈빛이라. 소이의 눈꼬리가 절로 부드럽게 휘어진다.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소이.」
서툴고 불안했던 첫 입맞춤. 치우는 양손으로 부드럽게 소이의 볼을 감싸고, 짧지 않은 시간 그녀를 느끼고 또 느꼈었다. 말캉말캉하고 따뜻한 입술. 그녀의 체취를 묻힌 채 치우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소이.」
「저하……. 저……는…… 하…….」
소이는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저의 조언을 무시하지 않은 사내가 고맙고 기꺼웠다.
희망. 이 사람과 생을 함께할 수도 있겠다, 그런 조그맣지만 강한 바람. 여인의 몸은 마음이 열려야만 동하는 것이라더니. 소이는 그 와중에 여관들이 지나가며 흘렸던 말을 기억해내었다. 그를 지아비로 맞아들일 수 있겠다 여긴 순간, 다가오는 그를 밀칠 수 없었다.
「언제쯤 내 비(妃)가 되어줄 것이냐.」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치우는 소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그답게 가만가만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소이의 검고 긴 머리를 훑어내자 길고 가녀린 목선이 드러났다.
「어여쁘다.」
그녀가 대단한 것이라도 주었다는 듯, 그는 감격에 차 그렇게 말했었다. 아찔하지만 싫지 않은 뜨거움. 낯선 감각에 정신 못 차리던 소이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해서 겨우 ‘어디가…….’ 하고 혼잣말 같은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여기일까.」
쪽, 치우가 그녀의 동그란 콧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까꿍, 그녀의 코를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 화악, 귀까지 뜨거워지는 부끄러움. 수컷의 기묘한 구애다. 그만하세요, 하고 소이가 말하기 무섭게 치우는 그녀의 가지런한 이마를 날름 핥았다. 바보로구나. 그런 말이 나를 더 들끓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여기도 아니고.」
소이의 보드라운 살을 입술로 어루만지며, 치우는 달콤한 헤맴을 만끽하였다. 이마에서 눈꺼풀, 다시 코, 입술, 그리고 아래, 좀 더 아래로…… 그의 연주에 따라 소이의 흔들리는 호흡이, 힘이 들어가는 살결이 만족스러웠다. 어느덧 그의 입술은 소이의 가녀린 쇄골에 닿았다. 여유롭던 그의 혀가 멈칫하더니, 흐음 하는 신음과 함께 그녀의 옷 속을 파고들었다.
「저하, 저하……. 그만하세요. 이제 그만…….」
기겁을 한 소이가 정신을 차리고 치우를 말렸다. 그리고 힘 풀린 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의 나른한 유혹을 참아낼 자신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혼례도 올리지 않은 채 그에게 안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언제 누가 올지 모르는 후원 근처에서는 더더욱. 허나 불붙은 장작은 쉬이 꺼지지 않는 법.
「싫어. 소이의 말은 믿을 게 못 되니까……. 늘 싫다고만 하지 않느냐.」
아까 흘린 신음이 그 증좌다. 아닌가? 치우는 말문이 막힌 그녀의 어깨를 힘주어 잡아 눌렀다. 아직은 안 되었다. 뽀얗고 탱탱한 그것을 입에 머금을 때까지는.
스스슥. 치우는 입으로 그녀의 옷고름을 풀었다. 길게 뺀 천 조각을 강하게 물어 당기자, 사라락 앞섶이 열리며 투명하리만치 흰 여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돌진하여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저하, 저하, 앗!」
다급하게 치우를 부르던 소이가 짧은 신음과 함께 허리를 튕겨내었다. 부끄러운 곳에서 강렬한 쾌감이 쏘아져 나오더니 발끝에서 머리까지 단번에 관통하였다. 소이는 치우의 목을 껴안은 채 눈을 꼭 감았다. 깨물고, 빨고, 언저리를 서성거리다 툭, 치며 간질간질.
「흡, 아…… 아…….」
「눈 떠, 소이.」
그의 혀가 붉은 팥알을 가지고 놀다 아쉽게 떨어져 나갔다. 소이는 저도 모르게 질끈 감은 눈을 떴다.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나던 즐거움은 곧 묵지근하게 배꼽에서 모였다가 사라졌다. 당황하여 팔에 힘을 풀자, 흐릿한 그녀와 달리 멀쩡한 그의 눈이 보인다.
「가, 가겠습니다.」
「뜻대로.」
치우는 순순히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주었다. 소이는 휙, 옆으로 몸을 틀어 그의 눈을 피했다.
「전하가 밉습니다.」
「이런. 왜 그런지 도오통 모르겠네, 모르겠어.」
치우가 ‘모르긴 뭘, 사실 다 알아.’ 하는 표정으로 코를 찡긋거렸다. 너는 부끄러움이 많고, 나는 너와 하고픈 것이 많고. 그러니 아는 척을 하며 사과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여기서 쉬어 가서야 쓰나.
「되었습니다. 모른다 하는 분을 잡고 드잡이 하고 싶진 않으니.」
혼자 말쑥한 그가 얄미웠다. 그녀의 흐트러진 옷매무새처럼, 그 열락의 시간 동안 흔들린 사람은 저 하나인 것 같아 부끄럽고 서럽다. 소이는 코끝이 알싸해짐을 무시하며 옷고름을 매려 애를 썼다. 허나 아직도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가만있어보아라.」
치우가 싱긋 웃으며 그녀의 옷고름을 대신 매주었다. 살짝살짝 스쳐가는 그의 손길이, 아직 떨고 있는 소이를 자극시켰다. 흘깃 그녀를 살피는 그가 얄밉다. 해서 소이는 이를 물고 숨을 참았다. 어쩐지 그럴수록 쿡쿡, 그가 더 웃는 것 같았지만.
치우는 일부러 더 천천히 소이의 고름을 매주었다. 미적거리며 시간을 끄는 사내의 마음을 알까. 중간에 멈추어 정인을 보내는 사내의 마음을 알 턱이 없지, 이 미련퉁이. 해서 일부러 손끝으로 긁어도 보고, 자극도 해보지만 붙잡기는커녕 오히려 밀어내는 눈치다.
「휴우. 안 되겠다. 소이야, 소이야.」
기다리면 끝이 안 날 것이다. 허니 어서 빨리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치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를 다시 품 안에 안아주었다.
「너의 청은 내 꼭 들어줄 것이다.」
「…….」
아직도 섭섭한 마음에 소이가 답을 않자, 치우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가 오거든, 그곳에서 기다리겠다. 너를, 너만을.」
말을 끝낸 치우는 그녀를 놓고는 휙, 다시 제비를 돌아 흑표범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유유히 멀어져갔다.

덜커덩!
급작스럽게 문고리를 잡아채는 소리가 조용한 소이의 처소를 흔들었다. 비를 쫄딱 맞은 탓인지 성질이 난 어린 여관이 구시렁거리며 발을 굴렀다. 작은 체구지만 날렵하게 생긴 소녀였는데, 온 비를 혼자 다 맞은 듯 젖어 있었다.
“아기씨, 아기씨! 백궁(白宮)에서 혼례의 사자님들이 오셨다네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였다. 소이는 저가 하고 있던 생각에 뜨끔하여 ‘으응, 그러하니?’ 하고 미적지근하게 대답하였다. 여관은 엉망이 된 옷자락을 툭툭 털어내며 손발을 흔들었다. 그 와중에 소이의 이상스런 대답은 대수롭지 않게 묻혀버린다.
“흰 아기씨께서 정말 시집을 가긴 가시는가 봐요. 아니 그런데 갑자기 이리 비가 올 게 무어람? 아니 그렇사옵니까?”
치우의 말이 맞았다. 애랑과 하운이 그날, 단박에 사랑에 빠졌으니 마냥 철부지 같던 애랑이 글쎄 소이보다 먼저 신랑 간택을 마치고 시집을 간단다.
“그러하구나. 이제부터 애랑이 바빠지겠다.”
아랫것들은 감히 주인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 짐승 일족 중에서도 높은 신분의 몇몇만이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해서 여관들은 혼처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비(妃) 후보들을 모두 아기씨라 불렀다. 그리고 이제 혼처가 정해졌으니 애랑은 흰 아기씨, 자연스레 소이는 검은 아기씨가 되는 것이고.
“온갖 진귀한 패물들이 줄줄이 실려 오던 것을 이년이 똑똑히 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것 참 다행이구나. 흰 전하께 어여쁨을 받는 모양이다.”
여관이 이번에는 치맛자락을 훌훌 들어 올리더니 쭉쭉 힘차게 물을 짰다.
“아니 그런데 흰 아기씨께서 웬일로 아기씨께 아니 오실까요? 패물을 들고 신나게 달려오셨어야 그분다운데.”
아유, 웬 물을 이리 많이 먹었나? 질척질척 축 늘어져 무거운 치맛자락에 여관이 짜증을 부렸다.
“그야…….”
소이가 ‘미안하여서 그렇겠지, 말없이 먼저 반려를 택한 것이.’ 하고 대답하려다 말을 삼켰다. 저는 아무것도 서운치 않은데, 혹 이 말이 애랑의 귀에 들어가면 얼마나 속상해할까 싶어서. 부리는 자들을 의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디 내 입에서 떠난 말은 언젠가는 꼭 남의 귀에 들어간다 믿기에. 소이는 늘 말을 하기 전에 여러 번 생각하곤 하였다.
“정신이 없어서겠지. 흰 전하의 반려가 아니니? 보통 일이 아니지.”
“하기사, 짐을 지고 들어오는 짐승들의 끝이 안 보였답니다. 백궁의 장인들이 그리 솜씨가 뛰어나다기에, 구경하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요. 그러다 이놈의 비나 홀딱 맞고! 에잇, 참!”
애랑은 반려를 정한 그 다음 날, 소이의 처소로 달려와 한 바가지 눈물을 흘리고 갔었다. 네가 혹 하운 님을 택할까 두려워 말없이 먼저 간택을 하였노라고. 네가 미워해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너무나 미안하다며 그리 선 고운 얼굴로 사내처럼 꺽꺽 울어재꼈다.

「흑, 으끅! 소이, 치……우 님도 너와 잘 어울릴 거야. 흑, 나와 그이처럼.」
「그래. 지아비로 모시고 살 분이니, 좋게 생각하려 해. 걱정하지 마렴, 애랑.」
「괜찮은 것이지? 정말? 만약 네가 정 치우 님이 싫다면…….」
애랑이 눈물 젖은 얼굴로 소이의 손을 잡았다. 애랑이 방금 한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하운 님을 너무나 연모하지만, 만약 소이가 저로 인해 수백 년을 불행해하며 산다면…… 헌데 정말 소이가 이제라도 바꾸어달라 하면 어쩌지?
「어어엉……. 나도 모르겠어…… 흑흑.」
「바꾸어달라 하지 않을 터이니, 그만 울음을 그쳐라. 내 괜찮다 하지 않니. 응?」
소이는 오히려 그로부터 한참을, 애랑을 위로했다. 몇 번이고 뒤돌아서며 가는 애랑에게 차마 치우와 만났다, 그와 입맞춤을…… 나누었다고 고백하지 못하였기에 도리어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위로했던 것이다.

소이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입을 다물자, 여관은 제 세상을 만났다는 듯이 신나게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으휴, 우리 아기씨께서는 흑궁(黑宮)에서 더 대단히 차비를 하여 보내시겠지요? 안 그래도 늦게 시집을 가게 되시었는데, 대접이 차이가 난다면 그 얼마나…….”
중얼거리며 치마 끝을 쥐어짜던 여관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제 주인이 하는 짓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아침 댓바람부터 왜 옷은 홀딱 벗고 그러십니까?”
색색깔 비단옷을 입혀 드리고, 갖은 뒤꽂이로 머리를 단장하여 올려놓은 것이 한 시진 전이었다. 오늘 흰 아기씨의 패물이 들어온다는 것을 아는지라, 혹 검은 아기씨께서 기라도 죽을까 평소보다 신경을 써두었는데. 왜 시커멓고 볼품없는 옷으로 갈아입으시는 게야?
“음, 잠시만 나갔다 오려고 한다.”
“얼레? 머리는 왜 또……. 검은 아기씨!”
여관이 기가 막혀 큰 소리를 내었다. 이는 불경 중의 불경. 애랑만 하여도 즉각 목을 베어라, 하였을 결례였다. 허나 소이는 아랫것들도 친동기마냥 정답게 대해주었다. 그렇기에 여관들은 소이 앞에서만은 제 하고픈 말을 어느 정도는 하며 살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여관들이 소이를 업신여기거나 우습게보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예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 성품이며, 아름다운 자태하며, 아랫사람을 살피는 너그러운 성정까지. 치우가 날 때부터 다스리는 자였다 한다면, 그 반려인 소이 또한 그러하였다.
“아기씨, 홀로 어디를 간다 하셔요?”
어린 여관(女官)이 외출 채비를 하는 주인을 조심스레 불렀다. 안 하던 짓을 하시니 혹 무슨 일이 있으신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금세 시무룩해진 어린 여관을 보니 소이는 살포시 웃음이 나온다.
“괜찮다. 잠깐 이 앞 다원(茶園)에 다녀올 것이니.”
소이는 기어코 마지막 남은 뒤꽂이마저 빼어 들었다. 녹빛 비취로 테두리를 만들고, 은은하게 빛나는 자수정을 통째로 박아 넣은 귀한 것이었다.
‘하나쯤은 꾸미고 가야 할까.’
소이는 잠깐 손에 든 뒤꽂이를 들고 갈등했다.
은빛 꽂이는 소소동을 섬세하게 새겨 넣은 걸작이었다. 자세히 보면 인간의 마을, 그 뒤의 숲, 숲의 끝자락에 솟은 죽음의 성벽, 숲 안의 백궁과 흑궁, 말 못하는 하급 짐승들과 그들을 다스리는 짐승의 일족들, 그 바로 옆에 짐승을 섬기는 혼령들까지 귀신같이 박아놓은.
“아니, 아니다.”
혹 누가 그녀를 볼 수도 있었다. 홀로 가는 여인이 호사스럽게 치장해서야 세간의 눈만 더 탈 것이다. 혼인 전까지는 몸가짐을 조심히 하는 것이 좋았다. 인간들처럼 집 밖을 나서지 못하거나, 정절이니 뭐니 하는 굴레는 아니었지만.
허나 인간이든 짐승이든 간에 다른 놈의 새끼를 밴 암컷을 귀히 여겨줄 수컷은 없는 법이다. 해서 일족들은 혼인 전에는 알아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적절히 조심하며 살았다. 그것은 인간들이 보면 놀랄 정도로 자유로운 생활이었다. 적당히, 수태하지 않을 정도만 조심히. 그 덕에 소이는 고귀한 신분임에도 홀로 1년이나 다원을 들락거릴 수 있었던 것이다.
“휴, 아니 되겠지.”
소이는 한숨을 쉬며 빛나는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허전해진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의지할 것이 없어진 머리칼들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촤르르.
윤기 나는 검은 머리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머리를 매만지고 돌아선 소이는 곱고 정갈하였다. 검은 무명옷 하나를 걸쳤을 뿐이지만 우아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너는 애랑에게 가서 전하여라. 급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나, 어둡기 전에 돌아와 혼인 준비를 도와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여관은 여전히 울 듯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었다. 저, 저 쇠고집. 잡는다 아니 가실 분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리 홀로 보내드릴 수도 없는 일이다.
“아기씨…… 금방 오시는 거지요? 분명 다원에만 가신다 하셨지요? 헌데 제가 따라가야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놀랐던지 둔갑이 살짝 풀어져 뿅, 쫑긋거리는 귀가 드러났다. 그 모습에 풉, 소이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있기가 어렵기는 한 일이었다. 도력이 약한 짐승일수록.
“후훗. 너, 귀가 나왔다.”
“예엣? 앗!”
여관이 더듬더듬 머리를 짚어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고는 급히 세모난 귀를 집어넣으려 애를 썼다. 이게 왜 버릇없이 기어 나오고 난리람. 시뻘개져서 씩씩대니 웬걸, 입가에는 수염까지 슬슬 돋아난다. 에구머니! 고운 여인의 얼굴에 수염이라니!
“내 금방 다녀올 것이야. 하여튼 그리 전하거라. 꼭 전해주어야 해!”
“앗, 아기씨! 아기씨! 아니 되어요!”
여관이 정신없는 틈을 타 소이가 급히 옆을 지나 문지방을 넘었다. 여관이 화들짝 놀라 따라나서려 하였으나, 제 몰골을 깨닫고 낑낑거리며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후, 하. 소이는 난생처음 달음박질이라는 것을 쳐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깔깔, 소이는 저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보기까지 한다.
“아니, 지금 내가 들은 소리가 우리 아기씨 목소리가 맞나? 저리 크게 웃으시다니!”
머리를 쥐어뜯던 여관의 입이 떡 벌어진다. 살짝 미소를 짓거나, 입을 가리며 활짝 웃는 것뿐이었던 아기씨께서!
‘이거 이거, 우리 아기씨 가슴에 혹시 봄바람이 분 것은 아닐까? 검은 전하는 어찌하고?’
“으아악, 안 돼! 안 돼애!”
퐁! 여관이 끝내 자제력을 잃고 소리치자 작은 꼬리까지 솟아나고야 만다.
컁컁컁! 작은 새끼 오소리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소이는 다원으로 향한다. 보슬보슬 옅게 내리는 비가 햇빛을 받아 옥빛으로 빛났다. 아, 순간 일곱 빛깔 채홍(彩虹)이 건너편 언덕에 길게 걸리었다. 우리 아기씨, 님 계신 곳으로 곱게 곱게 오셔요, 라고 말하듯.

“붉은 꽃을 가져라, 흰 눈을 가져라.”
소이의 도톰한 입술이 작게 속삭였다. 후원의 궁인들이 얼굴을 적셔주며 귀에 박히도록 읊었던 말이었다. 그리 말하면 곱고 부드러운 낯을 가지게 된다고, 그리 말했었다.
“벌써 봄이 갔구나.”
소이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다원으로 가는 후미진 길목. 맨 처음 길을 잃었던 후원의 끝자락. 정확히 말하면 후원 소유의 산길이었다. 인적이 드문 이 길에서 조금 더 걸어 나가면 다원으로 향하는 길목이 나왔다.
“여기쯤이었던가. 그가 나를 안고 서성이며 소이, 이름 붙였던 곳이.”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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