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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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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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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9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92g | 145*250*30mm
ISBN13 9791130609744
ISBN10 11306097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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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일과 밥에 붙들려 꽃 지는 줄도 모르는 나에게 다른 세계로 향하는 출구를 열어주었다. 시적 상상에 빠져 있는 동안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았다.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 있었고 막힌 것이 뚫리는 경험이 있었다. 차츰 이중생활에 익숙해져서 수시로 현실 공간에서 상상 공간으로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물론 내가 상상 공간에서 숨 좀 쉬었다고 삶의 조건이 조금이라도 바뀌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 나는 여전히 돈과 일과 힘 있는 손이 쥐고 흔드는 대로 휘둘렸으며, 순하게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어수룩하게 당했으며, 아무리 달려도 생활은 거기서 거기였으며, 꽤 달렸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힘 있는 손아귀에 뒷덜미가 잡혀 있었다.
하지만 시 쓰기를 통해 삶과 현실을 견디어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시는 내 안의 정체불명의 괴물을 달래주었으며, 쓸모없으면서도 막무가내로 절실하기만 한 욕망을 허구의 공간에서 충족시켜주었다. 시는 지겹고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일상이나 닳고 닳도록 보아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들을 두근거리며 이제 막 처음 보는 것 같은 신선한 ‘첫 경험’으로 하게 해주었다. 답답하고 좁은 시야와 숨구멍을 확장시켜주었다.--- p.10

하루 종일 말을 하고 나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내 말’이 하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판단하거나 오해하거나 득실을 계산하는 귀가 아니라 허공처럼 그냥 다 들어줄 수 있는 가상의 귀가 있어야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줄 흙구덩이와 바람과 숲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은 말이되 음성이 없고 혀가 없고 발음이 없다. 그 말은 말하는 자의 감정이나 정서는 많지만 말하려는 내용은 별로 없다. 그 말은 공기를 진동시켜 작동하지 않고 몸을 진동시켜 몸 안에서 작동한다. (중략)
시는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이다. 내 안에는 지치고 외롭고 괴로운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는 끊임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는 내가 내 안의 수많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 말은 말로 지친 말을 쉬게 하는 말하기이며, 말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말하기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 들끓는 말을 오랫동안 숙성시키면, 말의 독기와 냄새와 상처는 맛과 향기로 변하면서 남에게 위안을 주는 ‘참 좋은 말’이 될 것이다. --- p.60~61

나는 전원주택은커녕 한 평 시골 땅도 없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갖고 싶었던 은신처는 외부가 아닌 내 몸 안에다 마련해야 했다. 바로 시 쓰는 일.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 있어도 내 안의 수많은 ‘나’와 이야기하느라 별로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지루하고 심심한 경우가 많다. 여럿이 같이 있어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단어와 문장을 고를 때 오히려 외로워진다. 그러나 나와 대화할 때는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오래된 친한 친구와 같이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유롭다.
(중략)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다보면 다시 혼자 있는 공간이 그리워진다. 혼자 상상하는 일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바로 내 은신처로 가는 일이다. 바로 ‘지도에 없는 집’이다. 답답하다고 숨 막힌다고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나 훌쩍 떠날 수는 없다. 생각만 해도 숨이 크게 쉬어지는 곳, 심장이 두근거리고, 기운이 솟는 곳을 마음속에 마련해둔다면 어떨까? 투명인간이 되어 잠시 세상에서 잠적하고 싶을 때, 죽은 듯 이 세상에서 잠시 없어지고 싶을 때,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바로 떠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마음도 하나의 생태계이니 세상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순수한 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이 공간은 허구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곳이다. 시는 그런 곳에 집 짓는 일을 좋아한다
--- 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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