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설계에 관한 모든 설명의 밑바탕에는 ‘모순의 원칙’이 놓여 있다. 책에서는 대립하는 두 개의 항을 배치시킬 것이다. 캐릭터 vs 인간, 조직 vs 개인, 특성 vs 진실성, 외적 삶 vs 내적 삶 등등. 물론 스펙트럼의 양극단 사이에 여러 색조들이 모호하게 중첩되고 뒤섞여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복잡성을 선명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대조와 역설에 대한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 모순을 보는 눈이 있어야 다양한 창조적 가능성을 발굴해 낼 수 있다.”
--- p.11
“캐릭터는 현실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을 형성한다. 교육도 우리의 내면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스토리를 접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캐릭터들이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안내자 겸 모델의 역할을 한다.?부모와 사회가 인정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설 만큼. 허구의 존재들은 우리를 깨우치고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인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도움을 준다.”
--- p.15
“아이디어에도 수명이 있다. 그런데 대개 수명이 짧기에 스토리는 녹이 슬기 쉽다. 시대에 갇혀 있는 의미를 담을수록 스토리의 생존 기간도 짧아진다. 아무리 위대한 스토리라도 살아남으려면 그 스토리의 주제가 끊임없이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마지막까지 남는 건 캐릭터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 제임스 조이스의 레오폴드 블룸, 아서 밀러의 윌리 로먼, 마리오 푸조의 마이클 코를레오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오브프레드, 찰스 형제의 프레이저 크레인과 나일스 크레인, 이들은 그들이 담긴 스토리가 기억에서 흐릿해진 뒤로도 오래오래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 p.21~22
“숙명과 자유의지는 스토리 창작과 아주 흥미롭게 뒤얽힌다. 스토리가 시작될 때 독자/관객의 눈에 비친 미래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고, 운명을 찾아가는 서사의 자유로운 여정에 수백 갈래 길이 무작위로 열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스토리의 절정에서 시작점을 되돌아볼 때는 서사가 불가피한 경로로 흘러갈 운명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두 가지 관점은 플롯 위주 스토리와 캐릭터 위주 스토리에서 각각 다르게 펼쳐진다.”
--- p.48
“이런 특성들을 하나의 배역 안에 돌돌 말아넣으면 안티 히어로가 만들어질 때가 많다.?불행에 단련됐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는 취약한 외톨이, 자기에게 닥친 역경에 당혹해하는 금욕적인 인간, 사람들 앞에서는 재치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자조적인 인간, 사회 규범에 대해선 냉소적이지만 자기만의 규율에는 충실한 인간, 로맨스를 경계하는 로맨틱한 인간.”
--- p.246
“그다음은 이렇게 물을 차례다. 과연 어떤 사건이 그를 사고의 최대까지, 존재의 심층부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어떤 압력, 갈등, 선택, 행동, 반응들이 그의 인간성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 안에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캐릭터의 인간성은 상처를 입으며 실현된다. 그렇기에 완성에 도달한 캐릭터들의 말에는 이 아이러니에 대한 반추가 담겨 있을 때가 많다.”
--- p.278
“캐릭터의 행동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이전의 선택을 재고해야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장면에서 행동에 대한 새로운 착상을 얻어 캐릭터의 인물 묘사를 수정하고 싶어질 수도 있고, 새로운 전환점에 맞는 새로운 전술을 찾다가 인물의 진정한 성격을 다시 구상할 수도 있다. 무조건 환영할 일이다.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어지는 행동과 반응의 상호작용은 작가가 애초에 가졌던 영감을 발전시킨다. 복잡한 캐릭터와 탁월한 이야기가 잘 융화된 결과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 p.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