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아포칼립스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가진 이중 감정을 다시금 깨닫는다. 갑자기 우리는 우주의 힘과 위대함을 즐겼던 고대의 어떤 이교도적 광휘와 함께 우주 속의 별 같았던 인간을 본다. 갑자기 우리는 요한의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그 고대 이교도 세계에 대한 향수를 다시 느끼고, 보잘것없는 삶에 소소하고 사적으로 얽혀 있는 것에서 벗어나 인간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기 이전의 아득히 먼 옛날의 세계로 되돌아가고픈 강렬한 동경을 느낀다. 우리는 이 빠듯하고 비좁은 자동반사적 ‘천지’에서 해방되어 ‘무지몽매한’ 이교도들의 위대하게 살아 숨 쉬는 우주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다! 우리와 이교도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우주와 관계 맺는 방식의 차이에 있을 듯싶다.
--- pp.51~52
그렇다면 한 번 더 아포칼립스를 보면서 수평적으로뿐 아니라 수직적으로 그 구조를 감지하려고 해보자. 이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이 책이 메시아적 신비인 동시에 시간을 통과해가며 잘렸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며, 심지어 한 세기의 작품도 아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확신한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분명 이교도 저작이었는데, 아마도 아르테미스, 키벨레, 심지어 오르페우스를 따르는 이교도 신비주의 중 하나로 들어가는 ‘비밀’ 입문 의식의 묘사였을 것이고, 그 저작은 필시 동지중해 쪽에서도 실제로 에페수스에 속해 있었다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 p.81
일곱 개의 등불이란 천공에서 지상과 인간을 통치하는 일곱 통치자인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개의 행성을 말한다. 날을 만들어내고 지상의 모든 생명을 빚어내는 위대한 태양, 조수를 조절하고 우리의 신체를 조절하고 숨은 채로 여자의 생리 주기와 남자의 성적 리듬을 조절하는 달, 그리고 다섯 개의 큰 행성이자 우리의 주중 요일이기도 한 화성, 금성, 토성, 목성, 수성은 그들이 전부터 언제나 그랬던 만큼 지금도 우리의 통치자이다.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태양이 있기에 살아간다는 것은 알고 있으되, 어떻게 다른 별들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만유인력으로 축소해버리는 것이다.
--- p.120
개인이 분리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가 자신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어 [집단의 일체화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그가, 신화적으로 말하자면, ‘생명의 나무’ 대신 ‘지식의 나무’의 과실을 먹음으로써 자신이 소격되고 분리되었음을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유일신의 관념이 발흥하여 인간과 우주 사이에 개입했다. 인간이 가졌던 가장 오래된 관념들은 순전히 종교적이었으며,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유일신이나 신들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신과 신들은 인간이 분리감과 고독감에 ‘빠졌을’ 때 들어온다.
--- pp.213~214
아포칼립스는 우리가 부자연스럽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부자연스럽게도 우리가 우주와, 세계와, 인류와, 민족과, 가족과 맺는 연관성에 저항하고 있다. 아포칼립스에서 이 모든 연관들은 절대적 혐오이며, 우리에게도 역시 절대적 혐오가 되었다. 우리는 연관성을 참을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의 병폐다. 우리는 그로부터 벗어나서 고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유로움이라고, 개인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