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가 써 내려가는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라는 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인생과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예수님의 비전과 목표, 그리고 삶의 가치와 방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에 관한 정보와 사실만을 제공해 주고 알려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 자신처럼 듣는 사람도 감동하고 공감하여 예수님과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 루카는 “예수님은 오늘 나에게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을 복음서에 썼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지금의 나를, 오늘의 우리를 바라보고 그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다시 살아갈 희망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 입문」중에서
루카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목적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오늘이라는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오늘 삶의 자리에서 마주한 선택의 순간에 예수님이 하셨던 선택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 이야기 속 여러 가지 사건, 가난, 헌신, 봉헌, 고통, 질병, 두려움, 십자가, 죽음 등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생각, 새로운 선택, 새로운 결정으로 새로운 행동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라고 초대합니다.
---「루카 복음서 둘러보기」중에서
역사 이야기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현재 시점에서 새롭게 다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관점을 ‘역사관’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사건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건이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떤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되는지, 그래서 그 사건의 의미를 통해 오늘의 교훈을 찾는 것입니다.
---「제1과 루카의 이야기」중에서
루카는 요한의 탄생 이야기에서 구약의 성조들을 통해 하느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의미를 포함시키면서 새 시대의 시작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요한의 탄생 비화?話는 이스라엘 구원 역사의 연결점이 아브라함부터 요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불임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메시아의 모델과도 같은 ‘다윗 임금’을 선별한 “사무엘 예언자”의 탄생도 상기시킵니다(1사무 1장 참조: 엘카나와 한나). 판관 시대에서 새로운 왕정 시대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인물인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다윗 왕정을 준비한 예언자입니다. 루카는 그런 사무엘 예언자와 요한을 비교합니다. 요한 또한 예언자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제2과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세례자 요한」중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서 앞으로 다가올 예수님의 삶에 대한 ‘복선’을 제시합니다. 율법에 따라 예수님의 부모는 아이를 성전에 봉헌(루카 2,22-39 참조)합니다. 시메온과 마리아의 대화는 루카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미리 볼 수 있도록 이끕니다. 시메온은 예수님을 팔에 안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라는 말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시메온이 보았던 구원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루카 2,32)인 것입니다.
---「제3과 새 시대의 시작, 약속의 실현」중에서
루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루카는 ‘전사’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성령께서 활동’하신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성령의 활동은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의 총애’, ‘주님의 손길’, ‘주님의 영광’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4과 하느님의 영이 충만한 메시아, 예수님」중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삶으로 실현됨을 의도적으로 언급합니다. ‘나자렛 회당에서의 예수님의 설교’(루카 4,18-19)는 또다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의 대화’(루카 7,18-23)에서 반복됩니다. ‘오실 분’, 곧 구약 시대에 예언되었던 인물, 하느님께 선택되고 하느님의 영을 충만히 받은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냐고 묻는 요한의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이제까지 행했던 자신의 삶을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즉 루카는 “눈먼 이들이 보고(루카 7,21 참조)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루카 5,17-26(중풍 병자의 치유) 참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루카 5,12-16 참조)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루카 7,11-17 참조)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라는 루카 복음서 7장 22절의 표현을 통해 나자렛 설교 이후부터 시작된 예수님 이야기를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첫 설교 내용이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실현됩니다.
---「제5과 은총의 말씀 선포자, 예수님」중에서
루카의 해답은 ‘자캐오 이야기’(루카 19,1-10)에서 더욱 잘 드러납니다. 자캐오는 호기심으로 인해 예수님께 이끌렸는데, 예수님께서 먼저 자캐오를 부르십니다. 그러고 나서 함께 식사를 나눕니다. 이에 자캐오는 기뻐하며 일어나 ‘나눔과 사랑 실천’(루카 19,8 참조)을 약속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9-10)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자캐오는 변화되는 기쁨을 맞이합니다. 세관장으로서 이방인과도 접촉하며 그들을 위해 일하는 등 동족에게서 손가락질을 받고 무시당하면서도 오직 재산 축적에만 열을 올렸던 그가 이제 그 재산을 나누어 줍니다. 이제 나눔과 사랑 실천이 그의 기쁨이 됩니다.
---「제6과 기뻐하는 삶, 복음의 삶」중에서
루카는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도 예수님의 시선으로 다시 볼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힘과 특권을 나누어 주시기는 하지만 완전한 권한과 힘은 아닙니다. 루카는 교회의 시대가 오기까지는 예수님께 집중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성령 활동의 전성기는 바로 ‘교회의 시대, 사도들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깊은 신뢰를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루카 11,13 참조)을 하십니다.
---「제7과 세상의 구원」중에서
루카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세상을 떠나서 하늘로 돌아가시기 위한 여정’으로 표현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 순례 여정의 목적이며 이 유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탈출과 구원의 여정’임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루카는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 태어나는 ‘광야의 여정’과 같다고 여정의 시작부터 이야 기합니다. 그리하여 독자에게 예수님을 따라 그 길을 나서라고 강조합니다.
---「제8과 길 위의 순례자, 예수님」중에서
그렇게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십니다.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는 제자들’도 그렇게 함께 일어나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향하는 투쟁의 길에서 끊임없이 기도하십니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십자가 위에서의 기도(루카 23,34)와 죽기 전 하셨던 기도(루카 23,46)는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의탁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과 고통, 아픔과 슬픔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매번 다시 일어나 십자가의 길을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제10과 십자가의 여정, 투쟁의 길」중에서
사랑했던 제자들도, 죽음으로 내몰았던 누군가도 예수님의 수난 여정을 함께 걸으며 변화합니다. 예수님의 시선과 용서, 그분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과 나약함을 깨닫고 뉘우치며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로 맺어진 새로운 계약은 이제 새로운 탈출과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게 합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회개의 여정을 따르게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 길에서 함께 자신을 희생하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제11과 십자가의 여정, 탈출과 구원의 길」중에서
여인들은 막혀 있던 무덤의 돌이 이미 치워져 있는 ‘열림’(루카 24,2 참조)을 체험합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눈이 열림”(루카 24,31 참조)을, 제자 공동체는 ‘마음과 이해가 열림’, 곧 깨달음의 기쁨(루카 24,45 참조)을 체험합니다. 부활이란 가로막고 있던 돌이 치워지는 것을 의미하며, 보지 못했고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정신을 열어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일(루카 24,45 참조)들을 새롭게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열림’은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활한 예수님께서 찾아오시어 몸과 눈과 마음과 삶을 열어 주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제12과 아직 끝나지 않는 이야기, 부활」중에서
예수님의 떠남으로 인해, 이후로는 ‘사도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증인들’이 다시 예수님 이야기를 전하면서, 계속되는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하게 됩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루카 24,52-53 참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을 기뻐하며 찬미했던 하늘 군대의 노래는, 이제 땅의 사도들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바뀝니다. 그 찬미의 노래는 예수님의 증인인 사도들을 통해 세상 끝까지 울려 펴져 나갈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아멘.
---「제13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마침, 승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