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 가면, 책임이 따르는 개인 및 사회적 결정의 밑바닥에 자리한 이러저러한 추론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이 그 자체로 혹은 그 안에 담긴 함의를 통해서 본격적인 도덕 이론을 산출하기에는 도덕적 논점들이 너무나도 복잡하다. 인간의 특징이나 인간의 행위에 대한 어떤 새롭고도 큼지막한 이론이 핵심적인 도덕적 원리들의 적용에 변화를 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지난 2천 년에 걸쳐서 인간이 발전시켜 온 윤리 체계의 기본 원칙들에 대한 불기파한 수정을 유발하리라고 보기 어렵다. 도덕적 사고의 복잡성을 모르는 사람만이 과학이 논쟁적인 사안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거나 진화 과학이 폭넓은 토대를 갖춘 윤리 체계를 “반박”할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 p.331~332
창조론자들이 자기들을 과학계의 일원으로 내세우길 좋아하기 때문에,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들과 내부 논쟁에 묶여 있는 듯이, 이들은 뛰어난 생물학자들이나 지질학자들이 자기들 관점을 내비치는 듯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어떠한 구절이든 마구 집어삼킨다. 그리고 이런 구절들을 맥락에서 잡아 떼낸다 ― 창조론자들이 맥락이 가지는 중요성을 단지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이들이 저자가 품은 의도를 기꺼이 왜곡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경우에서든, 오해하게 하는 인용은, 창조론자들 생활의 한 방식이 되었다.
--- p.299~300
과학 내부 논쟁이 곧잘 외부에는 그 분야를 지탱해 주는 바탕이 침식되는 것처럼 보이게끔 혼란을 일으킨다. “다윈 진화 이론이 도전 받고 있다”는 제목으로 실린 최근 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원숭이를 닮은 선조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마련해 준 진화 사다리를 도약하듯 quantum leaps 밟아 올랐다고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한 과학자(스티븐 스탠리)가 다윈 진화 이론에 대한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비판에서 말했다.”(<뉴헤이번 레지스터> 11월 12일자, 1981) 중요한 단어인 “점진적으로”를 스쳐 지나가고 “도약하듯”이란 모호한 표현을 이해하지 않은 채, 표제와 첫 줄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본래 제안을 잘못 받아들여 인간이 유인원 조상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을 부정한다고 추측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기사의 나머지 부분이 좀더 나아지긴 했지만,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진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화 양식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최근의 진화 이론 발달사에서 가장 높은 결실을 맺은 일부 논의를 이끌어 낸 진화의 속도와 양식에 관한 논쟁은, 창조론 운동을 과학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처럼 오해받기 쉽다.
--- p.250
지난 120년 간 생물학 역사를 돌아보면 다윈이 품은 사상에 담긴 생산성을 무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다윈주의 역사가 전제하는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개체군 유전학과 같은) 새로운 이론 분야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골칫거리라고 여겨졌던 현상들을 포괄할 정도로 다윈주의 문제풀이 전략이 확장되었다. 동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설명력의 진전은 최근에 거둔 승리였다. 애초에는 자기가 아닌 다른 구성원이 가진 좋은 점을 북돋우는 행동이 진화 이론에서는 문젯거리였다. 그런 행동이 나타나게 된 과정을 말해 주는 다윈주의적인 역사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총체적 적합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W. D 해밀턴과 게임 이론에 담긴 사상을 활용한 R. L. 트리버스와 존 메이너드 스미스가 전통적인 다윈주의적 개념을 영리하게 확장하여 어떻게 이 어려운 물음을 해소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 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