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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댄싱 / 아프노에 / 슈피나롱가 / 허밍 / 뮌헨의 가로등 / 위드 유 / 집시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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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한국인의 1인칭 디아스포라
2010년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더티댄싱」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변소영의 첫 소설집 『뮌헨의 가로등』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변소영은 대학 3학년 때 독일 유학을 떠나 독일 국적의 한국 입양아와 결혼, 30년이 넘는 시간을 독일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한국의 현재적 언어로 독일 교민들과 재외동포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이는 한국 문학에서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유럽으로의 문화적 지평 확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소설가 이순원은 변소영의 소설을 두고 “현재 독일과 유럽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교민과 재외동포들의 삶의 근원을 탐구하고, 그것을 그들만의 별개성을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안의 이야기임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한국 문학사에서 나타난 독일의 이미지는 전혜린의 낭만적 노스탤지어, 독재체제 하의 동백림 사건, 산업화 시기의 광부와 간호사 파견,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사회주의의 몰락 등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통일 이후의 독일 이야기, 특히 재독 한국인의 삶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는 채워야 할 공백으로 남아 있다. 변소영의 소설집 『뮌헨의 가로등』은 이 빈 자리를 파고드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구분될 수 있는 이 소설집이 특별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주민 1세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타향살이의 서러움이나 고향을 향한 그리움, 혹은 성공신화 콤플렉스를 찾기 힘들다. 전후 한국경제 성장의 초석을 놓기 위해 외화벌이 첨병으로 파송된 광부와 간호사의 한 깊은 독일 아리랑이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둘째, 포스트 이주 1세대의 일상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독 광부의 딸과 한국 유학생과의 사랑(「더티댄싱」), 한국 유학생과 독일인의 동거(「아프노에」), 독일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인의 성장통(「슈피나롱가」), 신자유주의 시대 취업이민의 애환(「집시 재즈」) 등이 독일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요컨대 이 소설집은 한국의 산업화가 강압적으로 내몬 집단적 이산 이후 전개되는, 역사에서 일상으로 편입된 1인칭 디아스포라의 내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민자는 싫든 좋든 낯선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과중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의 차가운 장벽 앞에 내던져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민자도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으로 잠시 설렐 수는 있겠으나 그 기대의 이면에 떠난 곳에 대한 환멸과 회피의 심리가 있음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낯선 이국에서의 전망부재의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이민자는 타국의 일상을 관광하는 여행자가 아니라 타국의 일상 속으로 강제 편입되어야 하는 이방인일 뿐이다. 이민자는 실향의 비애, 생존을 위한 고투, 그리고 타문화와의 갈등이 야기하는 존재론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변소영은 이산의 고통 앞에 주눅 들어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지도 않고, 이주의 망망대해 어딘가에 떠 있을지 모르는 유토피아의 섬을 학수고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이민자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고통의 근원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관찰하며 그 상처 극복의 징후를 조심스럽게 예시한다. 요컨대 변소영은 고통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 고통을 정면 돌파하는 고해의 항진을 택한다. 이민자의 삶과 연동된 고통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과 상처의 치유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식에 따라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을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더티댄싱」, 「아프노에」, 「슈피나롱가」는 깊은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이민자가 타인의 상처를 위로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는 구원의 여정을 보여준다. 「허밍」은 상처 입은 두 존재의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 말하자면 상처와 상처의 시너지효과에 대한 것이고, 「뮌헨의 가로등」과 「위드 유」는 이민생활의 고통이 예기치 않은 현자와의 조우와 그의 멘토링을 통해 극복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현실적으로 묘사된 이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갈등, 「뮌헨의 가로등」 “나는 나야. 가끔 조여줘야 하는 기계 부속품이 아냐. 내가 눈 화장 좀 하면 어때? 파티에 가서 맥주 좀 마시면 어떠냐고?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해.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날 좀 자유롭게 두면 안 돼? 믿어주면 안 되냐고? 내 주위에 피임약 안 먹는 애는 나뿐이야. 내가 호기심을 못 이겨 사고 치면 어쩌려고 그래? 사고라는 게 엄마의 기준으로는 섹스지만 우리의 기준으로는 임신이야. 아직 미성년인 내가 피임약을 탈 수 있게끔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날 산부인과에 데리고 가야 할 거 아냐? 대체 무슨 배짱인 거야? 생김새만 한국인이지 나,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받은 독일 애야. 왜 엄마가 한국에서 교육받은 기준으로 날 판단하고 간섭해? 지겨워. 더는 못 참겠어.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뮌헨의 가로등」中 표제작 「뮌헨의 가로등」에서는 두 명의 화자가 교차 반복되면서 서사가 전개된다. 첫 번째 화자 ‘나’는 독일 뮌헨공대로 유학 왔다가 같은 학교 한국인 공대생(광부 아버지를 따라 열두 살 때 독일로 온 이주 1.5세대)과 결혼한 여인이다. 그러나 남편이 간경화로 죽은 뒤 11년 동안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공무원(뮌헨 시청 관할 거리의 조명 부서)으로 아등바등 일하며 홀로 외동딸을 양육한다. 이주자이자 싱글맘이라는 이중고는 그녀의 평탄치 않은 삶을 웅변하기에 충분하다. 두 번째 화자 ‘나’는 그녀의 딸 지나이다. 지나는 이주자 2세대가 학교생활과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겪는 전형적인 문제들(외모 콤플렉스, 정체성문제, 사회문화적 차이가 빚는 갈등, 애정결핍 등)에 노출된 사춘기 소녀이다. 지나는 엄마의 독단과 강요를 견딜 수 없어 시작된 말다툼 끝에 가출하여 거리를 방황하게 되는데, 이때 만난 구원의 멘토가 바로 노숙자 막스이다. 막스의 생계수단은 도심의 쓰레기통을 뒤져 채집한 맥주병과 깡통과 페트병이다. 그는 사업에 실패해 빚을 진 채 거리로 내몰린 파산자이다. 즉 신자유주의 시대의 낙오자이자 무한경쟁에서 도태된 루저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막스가 자상한 친아버지처럼 지나를 돕는다. 생리대를 사다주고 유료화장실 사용료를 지불해주기도 하며 수프와 빵을 먹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그는 노숙자생활을 통해 거리에서 체득한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지나에게 전파하기도 한다. 지나는 막스와의 이틀간의 동행을 통해 어머니와의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에 올라타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가로등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꿋꿋하게 서서 전망이 부재한 낯선 타국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주자들의 생채기 난 내면의 자아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