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얻은 결론은 그의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세간에서 뭐라고 하든 탁월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능력이 너무 탁월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면 할수록 그의 탁월성이 어디에서 왔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는 이 책이 추구하는 주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읽은 것들이 사람의 삶과 능력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가 하는 것 말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혼자 됨과 외로움,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이처럼 길게 늘어놓았던 이유를 이미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다. 이건희는 철저히 혼자 됨을 즐기는 사람이다. 신경영 선언을 하며 경영의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그는 ‘은둔의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후에도 회사에 출근하는 날은 거의 없이 재택근무를 하며 혼자 시간 보내기를 즐겼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본관 28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도 잘 나오지 않고 주로 한남동의 승지원에서 업무를 본다. 야행성 체질이어서 낮보다는 주로 밤에 일한다. 아니, 일한다기보다는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생각에 잠긴다. 종종 초밥 서너 개만으로 하루를 버티며, 생각에 빠지면 48시간 동안 잠을 안 자기도 한다. 어딘가 어눌해 보이고, 말도 걸음걸이도 느리다. 표정에도 변화가 없다. 게다가 사람 이름을 못 외는 데는 천재적이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과묵하며 사색을 즐긴다.”
이런 그의 행동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혼자 됨이 그의 중요한 일과이며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성격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 『혼자라는 즐거움』 ‘혼자 됨이 몰입을 만났을 때’중에서
1994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의 운동장에 2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불량 제품 화형식에 참석한 삼성전자의 직원들이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는 휴대폰, 무선전화기, TV, 팩시밀리 등 15만 대에 달하는 삼성의 제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진행자가 신호를 보내자 해머로 제품들을 때려 부수고는 불을 붙였다. 모두 5백억 원어치에 달하는 제품들이었지만 이날 모두 잿더미가 되어 시꺼먼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말로 설득하고 위협을 해도 안 먹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혁신에 대해서는 말로 해서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말하는 사람 입만 아프다. 이때 변화하지 않으려는 사람, 위기감이 부족한 사람들을 자극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현 상황이 어떤지, 미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눈으로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날의 불량 제품 화형식은 삼성의 현 상황이 불길 속에 타고 있는 제품과 같은 것임을 느끼게 하려는 극약 처방이었다. ---『위기감을 높여라』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강력하다’중에서
이건희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며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거나 책을 탐독하고, 새로운 기계들을 조립하고 분석하거나 미래를 구상하며 생각에 잠긴다. 이런 활동들은 일상의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하고 나면 쉬고 다시 일하는 산업사회의 반복되는 노동이 아니라 일하며 학습하고 학습하며 일하는 지식사회의 성장 프로세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혼자 있는 시간에 미래를 위한 사업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위기의식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위기의식이 없는 사람은 혼자 있어도 빈둥거린다. 반면 위기의식이 강한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그것에 푹 젖어들고 심지어 자신의 삶을 혼자 있는 시간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위기의식으로 경영하라’중에서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외친다. 창의적 인재를 뽑고,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하고, 반복되는 회의를 하는 이유가 모두 혁신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이 진정한 혁신과 관련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교육을 위한 교육, 회의를 위한 회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혁신이란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고객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환상적인 경험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고객들이 ‘와우’라고 외칠 수 있는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기업이 가진 모든 문제들은 저절로 풀릴 것이다. 기업이 한계에 갇혀 사는 것은 혁신을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늘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삶에도 혁신은 늘 함께해야 한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노력은 삶의 방향을 설정해주고 의지와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생활에 주도성을 가져다준다. 자기 삶에 주도성을 가지게 되면 삶이 질서 정연해지고 단순해진다. 갈등은 사라지고 지향과 의미가 찾아온다. 그러려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경험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불편함과 불쾌함을 제공하는 사람인가, 편안함과 유쾌함을 제공하는 사람인가? ---『리츠칼튼, 꿈의 서비스』 ‘고객이 기업을 리드한다’ 중에서
공부하고 행동하며 언제나 미래를 준비하는 이건희의 태도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장 일할 데도 없는데 기술은 배워서 뭐 하나 하는 생각으로 시간만 죽치고 있다가는 일할 데가 생겨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게 된다.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을 것 같아도 묵묵히 공부하고 훈련하다 보면 그 사용처가 생기는 법이다.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포기하면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준비하기 시작하면 이미 때는 늦다. 준비란 기회가 오기 전에 미리 끝내두어야만 한다.
관우는 누추한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 노릇을 하면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제갈량은 일찍 양친을 여의고도 혼자 농사를 지으며 부지런히 공부했으며 지식인들과 사귀고 정보 얻기와 인맥 넓히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과연 쓰임이 있을 것임을 알고 준비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두운 시절을 견디며 묵묵히 준비하지 못했다면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 골방에 틀어박혀 같은 비디오를 수십 번씩 보고 온갖 전자 제품을 분해하여 조립하고 밤새워 책을 읽던 외롭고 알찬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건희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쓰임이 없을 때 재주를 준비하라. 그것이 삼국지의 영웅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삼국지』 ‘쓰임이 없을 때 재주를 준비하라’중에서
세상에는 일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일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경제적 관점이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은 일이란 불편하고 귀찮은 것이기에 돈이 많으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일보다는 신나게 놀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훨씬 즐겁다고 말한다. 또 다른 관점은 일이 인생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실현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은 해야 하고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 자체를 좋아하며 일을 통해서 인생을 느낀다. 때문에 그들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 건 죽으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두 가지 입장 중 뭐가 옳다는 것은 없다. 사람은 다양하고 다양하기에 일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물질 중심의 시대에 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인생의 한쪽 측면만을 보며 살아가는 편중된 시각을 가질 수 있기에 위험하다. 평생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시대에 일이 싫다면 인생은 뻔하기 때문이다.
--- 『왜 일하는가』 ‘자신만의 일의 해법을 찾아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