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르 유전의 불길이 꺼지고 있다."가와르 유전은 사우디와 중동의 석유 헤게모니를 상징하는 세계 최대의 유전이다. 확인매장량만 700억 배럴에 달하며 일일 생산량이 5백만 배럴 이상인 슈퍼 자이언트 유전인 가와르 유전이 물과 가스를 주입하는 등 여러 가지 기술을 동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의 감소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의 석유와 가스에 우리의 에너지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가와르 유전이 마르고 있다는 사실은 중동이 더 이상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이며, 따라서 중동 지역 바깥에서 미래의 에너지원을 발굴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국가적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윤성학 박사는 미래의 에너지원으로서의 러시아, 특히 극동 러시아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부터 《러시아 에너지가 대한민국을 바꾼다》라는 자극적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에너지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첫째, 러시아 원유와 가스는 한국과 바로 인접한 동시베리아와 극동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상대적으로 값싼 에너지를 빠른 시간 내에 공급할 수 있는 양질의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은 지금까지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추가 비용을 중동 산유국에 지불해 왔는데, 러시아 원유를 구입할 경우 이러한 프리미엄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며 소비자 물가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둘째, 러시아 에너지는 단지 경제적 가치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 에너지는 대한민국에 에너지를 공급해줄 뿐 아니라 러시아, 북한,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한국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만들어 줄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럽의 통합은 신기능주의적으로 이루어졌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는 장 모네이다. 장 모네는, 유럽통합은 감정보다는 이익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분야가 에너지라는 탁월한 혜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장 모네의 주도 하에 유럽의 통합은 '유럽 철, 석탄 공동체'라는 에너지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에너지 공동체로부터 파생된 이익이 넘쳐 흐르면서 좀 더 높은 단계의 공동체인 유럽공동시장, 유럽공동체로 발전하고 마침내 초국가적인 국가연합으로서 단일화폐와 의회, 정부기구를 갖춘 유럽연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만약 감정에 근거해서 과거에 적대적이고 불화관계에 있었던 민족 간의 인위적 통합을 통해 유럽인, 유럽민족, 유럽합중국을 만들려고 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동북아도 마찬가지이다. 동북아의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북한 그리고 미국은 불화와 반목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렇게 적대관계에 있던 동북아 국가들이 동북아 공동체, 동북아 다자주의를 만들어 내려고 할 때, 동북아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감정'에 기초해서는 안될 것이며 '이익'에 기초한 지역통합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평화, 화해, 협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평화이익'은 어디에 있는가? 이차대전 후의 유럽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에너지 분야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그 에너지는 바로 러시아 극동지역에 있다.
러시아 에너지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자원이다. 중국은 이미 1993년에 석유 수입국으로 전환되어 현재 전 세계 석유를 빨아들이고 있는 블랙홀이다. 일본 역시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대체 에너지원으로서 러시아 에너지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 극동 지역은 석유뿐 아니라 천연가스의 세계적인 공급원이다. 따라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공급 파이프라인의 건설과 수송은 동북아 6개국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평화이익'이다. 미국의 석유 메이저도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이익을 갖고 있고,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공급자로서, 한국, 중국, 일본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요자, 소비자로서, 북한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파이프라인이 통과할 경우 사용료 수취자로서,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의 피공급자로서의 이익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익을 공유하는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었을 경우 동북아국가들이 모두 이 파이프라인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이해관계를 갖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이 지역에서 전쟁을 자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결국 평화의 파이프라인은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기초가 될 것이고, 파이프라인의 유지를 통해 이익이 확산되면 동북아 국가들은 더 높은 단계의 공동체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셋째, 러시아의 에너지는 한반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러시아의 에너지는 전술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국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를 이어줄 뿐 아니라, 핫산-나진-속초-포항-부산을 이음으로써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해 줄 것이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위해 TKR과 TSR의 연결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남북한 모두 6.15남북정상의 핵심과제로 철도연결을 선정하였다. 바로 이러한 철의 실크로드의 꿈을 실현시킬 촉매제로서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파이프라인과 철도는 남북러의 삼각경제협력을 가능케 하고, 남북경제공동체를 앞당길 것이며,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동해경제권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다.
분명 한국의 미래는 상당 부분 러시아 에너지에 달려 있다. 한국의 에너지 안보가 러시아 에너지 확보에 달려 있으며, 북한 문제도 러시아의 에너지를 북한에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을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러시아 에너지를 한국의 에너지 확보, 한반도 평화 구축, 동북아 공동체 형성을 위해 최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짜내는가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윤성학 박사는 러시아 에너지 산업의 정치경제학을 주제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필자는 당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윤성학 박사의 논문을 지도하였다. 윤성학 박사는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에 관해서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후 대우경제연구소에 근무하게 되었고 대우의 동구 진출과 때를 같이하여 러시아에 파견되어 현지에서 연구와 조사를 하였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뒤에도 계속 러시아에 남아 연구, 조사, 비즈니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러시아, 특히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에 관해 누구보다 더 살아있는 지식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러시아 에너지의 경제학, 러시아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정치학, 그리고 러시아 에너지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미칠 영향, 러시아 에너지와 동북아 평화와 경제 공동체 구축간의 관계에 관해 윤성학 박사가 발로 뛰어 얻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이론적 분석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러시아 에너지의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임혁백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