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올라와 내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꼭 닫았다.
“휴우, 들킬 뻔했네!”
곧바로 로봇 제조 작업에 들어갔다. 컵 뚜껑을 뜯어 ‘로봇 제조액’이라고 적혀 있는 액체가 든 봉지를 꺼냈다.
그 밑에 연분홍색 탁구공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이것이 로봇이 되는 모양이다.
로봇 제조액의 ‘뜯는 곳’이라고 적힌 부분을 손으로 뜯고 나서 우동 국물 색을 띤 액체를 컵에 부었다.
금속을 태울 때 나는 듯한 싸한 냄새가 났다.
“아 참! 물을 까먹었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주방으로 가서 컵에 수돗물을 담는데, 잠귀 밝은 엄마가 깬 모양이다.
“에이타, 무슨 일이야? 자는 거 아니었어?”
--- pp.20-21
“내일, 수학 시험이 있어. 아아, 학교 가기 싫다.”
“그럼 내가 대신 갈까?”
에이트가 깜짝 놀랄 말을 했다.
“네가 시험 못 봐서 내가 대신 혼나느니, 처음부터 내가 시험 잘 보는 게 훨씬 낫지 않아? 그게 너도 편할걸?”
“근데 안 들킬까? 네가 학교에서 어쩌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불안하고.”
“괜찮아. 따로따로 있을 때 일은, 컵 속에 있던 이어폰을 한 쪽씩 끼고 자면 다 알 수 있어.”
“우와, 진짜?”
--- p.36
나는 에이트 때문에 손해만 본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스위치는 끄지 않았지만 이젠 참을 수가 없다.
일요일까지 가만히 눕혀 둘까.
방으로 돌아오니 에이트가 쓸쓸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타. 나, 너한테 도움이 안 돼?”
안 속거든. 뺏으려는 주제에.
“에이트, 뒤로 돌아.”
나는 에이트 귀 뒤의 스위치를 껐다.
“어, 왜…….”
에이트는 푹 쓰러지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에이트 녀석은 아무 쓸모도 없다.
축 늘어진 에이트를 옷장 속에 집어넣었다. 마음이 따끔따끔 아팠다.
그래서 에이트를 보지 않으려고 문을 닫았다.
--- p.58
“나에게 진짜 마음은 없어. 하지만 감정 시스템이 들어 있어. 우리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게 목적이야, 인간처럼 말하자면 그게 ‘기쁜’ 거지.”
“나는 에이트를 멋대로 사용했어. 힘든 일만 강요했고. 이번엔 내가 에이트에게 뭔가 해 주고 싶어.”
“이상한 말 하지 마. 넌 내게 인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줬잖아.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도 나누고, 다 처음 해 본 일이었어. 그래서 데이터도 많이 모았지. 덕분에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에이타, 정말 고마워. 나를 만들어 준 것도 너잖아.”
--- p.67
“에이트, 미래과학연구소로 돌아가지 말고, 쭉 여기에 있어 줘.”
“그건 어려워.”
“너랑 쭉 함께 있어 싶어. 에이트, 넌 어때?”
“그야, 나도…….”
“나랑 교대로 생활하자. 네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도울게. 우리, 꽤 멋진 콤비라고 생각하지 않아?”
에이트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라고 하는데?”
에이트가 씩 웃었다.
“친구, 아냐?”
맞다. 우리는 친구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솔직하게 기분을 이야기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래도 서로를 소중히 여겼다.
--- pp.70-71
“헤어져야 한다니, 정말 싫어.”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얼마나 에이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에이트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가지 마, 에이트! 친구라고 말했잖아.”
에이트를 흘겨보았다. 그런데도 에이트는 내게 웃어 보인다.
“에이타, 오늘까지 고마웠어.”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에이트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막엔 컵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지니까, 너에겐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에이트의 기분이 아프게 와 닿았다.
--- p.82
에이트를 반납하고 나서 3일 뒤였다. 시라미네 소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희한한 이야긴데, 네 분신 로봇 칩을 회수한 후에 다른 로봇에게 넣으려고 데이터를 다 지웠는데 말이야. 절대 지워지지 않는 게 하나 있었어.”
“그게 뭔데요?”
“에이트라는 말.”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수화기를 든 채, 말문이 막혔다.
“네가 지어준 이름이지? 정말 소중한 기억이었나 봐. 자기만의 것이 딱 하나, 그것뿐이었으니까.”
---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