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대학교 3학년인 나는(유리) 레이스 달린 팬티는 입지 않는다. 푹푹 삶아 물 빠진 누런 팬티를 입는다. 팬티를 사수하는 것은 세상을 사수하는 것이다. 주위에 접근해오는 남자들 중 가장 확실하게 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남자에게만 허락될 것이다. 서울 강남 반포동에 사는 나의 집은 소위 잘 나가는 강남 문화권에 겨우 편입했으며, 나의 엄마는 문화센터 다니는 것을 생활의 여유라고 자부하는 평범한 아줌마다. 나는 엄마 같은 인생을 살 수는 없다. 강해져야 한다. 미국 로스쿨에 다니는 부잣집 막내아들을 사귀게 되었다. 나는 청순함을 컨셉으로 그와 만나고 있고, 결혼을 염두에 두고 성패를 겨루기 위해 잠자리 십계명을 실천하기로 한다. 내가 꿈꾸었던 유리의 성,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그와 잠자리를 갖고 나는 십계명 대로 실천한다. 그러나 호텔을 나오며 손도 잡아주지 않는 그. 아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다.
트렁크
그녀는 외국인 화장품 회사의 중견 간부이다. 눈 오는 어느 날 우연히 차 트렁크를 열어보았더니 한 소녀가 웅크리고 있다. (과거로 시간 이동) 그녀는 한 달 전 진주색 소나타를 새로 구입했다. 규칙적인 아침 운동과 이른 출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우먼이다. 그녀는 회사의 젊은 CEO 브랜든의 신임을 받고 있고, 내연의 관계였던 권은 멀리 하고 있다. 퇴근길에 사무실 여직원을 자신의 차에 태워준 그녀는 다음날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그 여직원을 발견한다. 이 당혹스런 일로 권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권은 그녀가 여직원을 죽였다고 몰아붙이고 그녀는 권을 살해한다. 다음날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브랜든과 아침인사를 주고받는다.
소녀 시대
열여섯의 나는 나에게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는 부모들을 관찰하며, 나의 미래를 꿈꾸는 소녀다. 아빠 김용진씨는 국립대학 교수이고, 원조교제를 한다. 엄마 정은숙씨는 대구 양반 가문의 딸로 갖가지 취미생활을 전전하며 딸에겐 관심 없는 주부다. 나는 단짝 친구 민지와 수다 떨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부모의 잦은 싸움으로 집에 분란이 끊이지 않자,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빠의 원조교제 상대를 만나 담판 짓는다. 그러나 그녀가 임신을 했다고 한다. 나는 소개팅으로 만난 용이오빠와 짜고 가짜 납치극을 벌여 집에서 돈을 뜯어내, 용이오빠와 나누고 아빠의 원조교제 상대에게 준다. 부모님의 분란은 좀 잦아들고 나는 짱 멋진 소녀시대를 만끽하고 있다.
순수
주인공의 진술서 형식. 세번째 남편이 식물인간이 된 상황에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며 진술한다. 토목기사 자격증을 가진 첫번째 남편은 교통사고로 죽으며 두둑한 보험금을 남겼다. 두번째 남편은 잘생긴 중국계 미국인이고 부유하다. 그는 잠자리에서 더러운 행위를 일삼는 다혈질이고, 나는 그의 운전사 양과 관계한다. 양은 나를 사랑한다며 남편을 살해하고, 나는 부유한 미망인이 된다. 세번째 남편은 대학에서 사회철학을 강의하며, 전처의 딸이 있다. 나는 그 딸과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고 그 아이를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나에게 딸이 몹시 혼날 날 쇼핑을 끝내고 돌아와보니, 딸의 방에서 남편이 가슴에서 피를 쏟고 누워 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무궁화
너는 여성동성애자 사이트 정기 모임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주부다. 그녀가 시간 나는 틈틈이 너는 그녀와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 너는 그녀와의 너무 부족한 짧은 만남에 지쳐 헤어지자고도 해본다. 그녀는 불쑥 찾아와 여행을 가자고 한다. 그녀와의 짧은 여행 후 그녀는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홈드라마
드라마 대본 형식으로 진행. 남자주인공 김재호와 여자주인공 박수진은 결혼을 결심했다. 남자는 입사 2년차의 대기업 평사원이다. 서로 학력이나 가정환경 등이 비슷비슷하고 연애한 지 5년이나 되었으니 결혼은 당연한 수순이다. 양가 부모의 상견례가 있고, 서로 기싸움을 하며 간신히 마친다. 결혼 날짜, 장소, 피로연, 예단 등으로 서로 설전이 오가기도 하며 가까스로 합의를 본다. 신혼집 장만이 문제의 절정으로 신랑측에선 시댁에 들어와 살라하고, 신부측에서 펄펄 뛰며, 급기야 극한 상황까지 치닫는다. 결국 양가에서 각출하여 신혼집을 장만하기로 합의하고, 눈부신 결혼식을 치른다.
신식 키친
거식증에 관한 이야기로, ‘신식 키친’은 음식이 조리되는 현대적 공간으로서, 육체의 이미지를 둘러싼 현대의 정신적 질환과 관련되는 장소이다. 이 공간에서 ‘폭식’과 ‘거식’이라는 사적인 사건이 발생하며, 그런 맥락에서 키친은 그녀가 먹은 것들을 모두 게워내는 ‘화장실’의 공간과 짝을 이룬다. 이 작품은 파편화된 구성으로 여성 주인공의 행위와 의식을 묘사하며, 중간중간에 다이어트의 방법과 관련된 정보가 병치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이것은 그녀의 의식을 지배하는 정보들과 이미지들을 나열함으로써, 그 사회적 연관을 독자들이 추론하도록 만드는 소설적 장치이다.
이십세기 모단 걸-신 김연실전
김동인의 소설 「김연실전」의 패러디이다. 연실의 어미 박씨는 평양의 기생조합 출신이다. 수줍은 기생 박씨를 신흥 부자의 아들 김영찰이 눈독을 들인다. 김영찰은 전처와 사별하여 본처 자리가 공석인지라, 박씨는 본처가 될 것을 약조 받고 김영찰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실이 된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순간, 연실이 태어난다. 박씨는 어린 연실을 김영찰의 집에 맞겨둔 채 사라진다. 연실은 측실의 자식으로 자라나 총명하여 신식 여학교에 다니게 된다. 우등상을 받으며 졸업한 연실은 일본에 유학을 떠나,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조선 유학생 사회에서 남학생들의 희롱을 받으나 당당하게 버텨낸다. 유학생 맹호덕이 연실에게 연정을 품고 접근하고, 그녀를 겁탈하려고 하나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유학생 잡지에서 연실을 방탕한 여학생으로 모함한 글을 읽게 된다. 선구적 모단걸 김연실은 머리를 자른 후 당당히 유학생 잡지에 글을 남기고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