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책을 쓰면서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각각의 성경이 쓰여 진 시대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성경을 겹쳐서 읽을 때 예언(약속)과 예언이 성취되어 나타난 역사적 사실이 너무도 정확히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저는 전율했습니다.
--- p. 15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제가 또 하나 크게 놀란 것은 “요한이 상징과 비유를 사용했으나 요한 스스로 상징에 대해 명확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징에 대해 설명한 것을 다양한 표현(패러프라이징)을 사용하여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함으로써 그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아채지 못하게 한 요한의 탁월한 문학적 능력입니다. 필자 역시 시를 쓰는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수많은 수상자 가운데 과연 어느 누가 하나의 존재를 하나의 상징을 사용해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해냈던가요? 그 때문에 저는 이 책에서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주로 사용한 패러프라이징(paraphrasing: 바꾸어 말하기) 기법을 서로 의미가 같다는 의미에서
‘=(이퀄)’이라는 등호를 사용하여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을 사용하면 요한이 상징하고자 했던 의미가 쉽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음녀(계17장)’에 대한 상징을 예로 들면, 음녀는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계17:1)=열 뿔과 짐승에 의해 망하고 불로 완전히 살라진 음녀(계17:16)=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 금 잔을 가진 여자(계17:4)=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17:5)=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계18:1)=큰 성 바벨론(계16:19)=견고한 성 바벨론(계18:10)=만국의 성이 있는 큰 성 바벨론(계16:19,계18:3)=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계17:18)=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여자(계17:6)=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발견된 성(계18:24)=큰 맷돌 같이 바다에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않을 큰 성 바벨론(계18:21)=붉은 빛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을 탄 여자(계17:3)”입니다. 표현은 다르나 모두 같은 존재입니다.
--- pp. 16~17
진리의 성령님이 가르쳐주셔서 깨달은 사실도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하나님이 첫 언약을 폐하시고 다시 약속하신 하나님의 새 언약’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독하고 새벽기도를 하는 동안 저는 하나님이 왜 옛 언약을 폐하시고 다시 새 언약을 하시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새 언약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하나님이 어떻게 새 언약을 성취해 나가셨는지 즉, 어떻게 새 언약을 지키셨는지, 그리고 새 언약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 신 · 구약성경의 말씀들과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은 평신도가 목사님의 설교 내용과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 하나님 말씀에 대적하는 자, 선악과를 먹은 자로 여길까봐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인해 평소 제가 궁금했던 내용들에 관한 성경말씀들을 스스로 찾아서 모으다 보니,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는 분량의 말씀들로 모아져 체계적 분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 p. 22
예수님(하나님의 본체)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흠 없는 짐승의 피’를 대신 할 것은 오직 흠 없는 하나님 자신의 피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옛 언약의 예언대로 오셔서 새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 p. 31
요한계시록에서 영화처럼 보여주는 믿는 자들의 여정을 살펴보면, 인침 받은 자가(계7장) 죽으면→성산인 시온산에서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써진 채로 새 노래를 배우고(계14:1)→하늘로 올라가 유리 바다 가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계15장)→그 후 부활하여 재림 예수님을 만나(순교자는 계20:4 첫째 부활, 비순교자는 계20:11~15 둘째 부활)서 심판을 받고→새 예루살렘 성의 성전에서 제사장 신분으로 왕 노릇 하며 영생하게 됩니다(계22:1~5). 요약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 언약을 믿는 종교는 유대교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새 언약을 믿는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 pp. 34~35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예수님에 대해 ‘계시(드러냄)’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종(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계시 즉,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들(속히 일어날 일들)을 하시는지를 알려주려고 쓴 성경입니다. 요한이 (진리의) 성령에 감동되면서부터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성령님이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친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 p. 39
“새 언약”이란 단어가 있다면, 이미 전에 “언약”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새 언약”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옛 언약 곧 첫 언약”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옛 언약 곧 구 언약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옛 언약”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은 어떠한 일들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이미 언약(첫 언약)”을 하셨는데 왜 “다시 언약(새 언약)”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새 언약”을 하셨다면, “옛 언약”은 어떻게 될까요? 새로 약속을 하면 기존의 약속은 폐기되듯이, 하나님의 옛 언약은 무효 즉 없어져버린 것이 되어버렸을까요? 폐기가 되었다면 옛 언약은 성경에서 지워버려도 될까요? 하나님이 옛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모세에게 준 하나님의 법 곧 모세의 돌판 율법 십계명 등은 어떻게 될까요? 유효할까요? 아니면 효력을 상실했을까요?
모세의 돌판 율법이 하나님의 새 언약에도 그대로 적용이 될까요? 하나님이 새 언약에서 “모세의 돌판 율법을 지켜라, 그리하면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 pp. 106~107
요한은 로마군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옛 언약의 예언서의 상징과 비유 그리고 형식을 차용하여 유대에서 벌어졌던 “로마제국의 식민통치와 로마와 유대와의 전쟁”을 목격한 과거의 사건을 미래의 사건 즉 예언으로 둔갑(?)시켜 기록했는데, 그 내용이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상징과 비유”를 “1세기에 유대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과 연관 지어 해석할 수 있는 문학적 능력이 요구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어 가시면 요한의 시점에서 기록된 장차 일어날 일들(현재의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일부는 과거이고 일부는 미래인 사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상징과 비유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 p. 359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크게 여섯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 전 징조에 대한 예언(마24:1~29, 눅21:5~26)은 로마제국 티투스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A.D. 70년 8월) 이전에 성취(계6장 일부, 계8~9장, 계11장, 계13~15장, 계16장 일부)되었습니다.
둘째, 이기는 자는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상(큰 여신 아데미 등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계2:14, 20 외)”, “짐승과 그의 우상(의 신상)”에게 경배(계14:11 외) 즉 ‘로마 황제의 신상을 숭배’하는 것, ‘큰 여신 아데미 등의 우상”을 숭배하는 것, 그리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계19:20)의 미혹을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함으로써(계20:4)” 이겨라, 이기는 자에게 나라와 제사장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부활 영생하는 복을 주겠다(계1~3장)”고 권면하고 있으며, 영생의 복 받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 자신이 “주와 하나님(Lord and God)”이라고 숭배를 강요당하던 시대상황에서 간접적인 표현 즉 상징과 비유로써 예수님이야말로 “주 하나님”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pp. 373~374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증언했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간접증언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새 언약을 어떻게 성취해나가시는지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자신을 ‘주’라고 하며 신격화하고 하나님 곧 예수님을 ‘주’라고 믿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살해하던 시대상황과 밧모 섬에 유배당한 자신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직접 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에 대한 표현을 달리함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며, 심판자임을 명확히 드러냈습니다.
--- p. 385
예수님이 재림의 때를 말씀하셨을 때의 시간 개념은 ‘인간의 시간’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의 예언도 ‘하나님의 시간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3:8)”는 사실 때문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3:9).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2017년 현재는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이틀(2000년=2일)’도 채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재림 날과 시간은 하나님만 아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직 하나님만 아시고 재림의 날은 도둑같이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회개하여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해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 pp. 602~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