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방과 관련되었던 사람들이 죽어간 기사를 모아 둔 거야. 최초의 죽음은 1957년에 있었지. 내가 소유한 함부르크의 신문사에서 일을 하던 기자였어. 그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었고, 나는 얼마간의 정보를 주었어. 한데 그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걸 알고 있었어. 일주일 후 그는 베를린에서 버스에 치여 죽었어. 목격자들은 누군가 뒤에서 밀었다고 했지만 수사는 끝내 미궁에 빠지고 말았어. 두 번째 죽음은 그로부터 이년 후에 일어났어.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기자였어. 그는 산길에서 차에 치여 죽었지. 1960년에도 두 건의 죽음이 잇따랐어.
--- p.64
“나치는 보물을 광산에 숨기려고 했습니다. 하르츠 산맥이 주로 이용된 건 베를린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이고, 지하 저장고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광산이 많아서였죠. 전쟁이 끝난 후 수많은 문화유산이 하르츠 산맥 일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백만 권에 이르는 서적과 그림, 조각품이 이 일대에 숨겨져 있었어요.”
--- p.71
“‘사라진 골동품을 회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모두 아홉 명으로 이루어진 클럽인데 회원들의 신원은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있죠. 그들은 유럽 최고의 미술품 소장가들이고, 내로라하는 부자라는 것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미술품 전문가를 하수인으로 고용해 사라진 미술품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용한 하수인들은 막대한 보상금을 받기 때문에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 p.92
1945년 히틀러는 호박방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철수하라고 지시했죠. 하지만 쾨니히스베르크의 프러시아 대관구 지도관이었던 에리히 코흐는 괴링에게 충성한 사람이었어요. 문제는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죠. 요제프 로링과 코흐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코흐는 천연자원과 베를린에서 각 지방 대관구 지도관들에게 부과한 할당량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필요했어요. 로링은 가문 소유의 광산과 무기제조창을 운영하며 독일군에게 도움을 주었죠. 영악한 로링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소비에트 정보부 사람들과도 협력 관계를 유지했어요. 로링이 전후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그토록 쉽게 번창할 수 있었던 건 소비에트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오.”
--- p.136
“예술에 대한 평가는 훨씬 더 유동적이야. 예술품은 시대가 바뀌면 그 가치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오백 년 전 걸작이 오늘날에는 졸작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놀랍게도 어떤 작품의 생명력은 영원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 나를 흥분시키는 건 바로 그런 작품이야. 내가 느끼는 흥분을 이해할 수 있겠지?”
--- p.154
폴은 호박방을 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오른쪽의 이중문으로 들어선 두 사람 때문에 그들은 그 놀랄만한 장관을 조용히 감상할 수 없게 되었다. 로링과 여자가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