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책을 부여잡고 한 시절을 버텼다. 이후로도 계속 글을 썼다. 내가 쓴 책이 네 권이 되는 사이 아이는 쑥쑥 자랐다.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졌다. 하루가 다르게 내 손을 떠나가는 아이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이건만 무언가 쓸쓸하고 뭉글했다. 자주 울컥하며 되뇌었다. ‘한 시절이 끝나고 있는 거야. 이렇게 한 시절이 지나가는 거야.’
--- p.7
2.
떠남보다는 머무르기를,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여행보다는 일상을 사랑하는 내가 선택한 것은 ‘결별’이었다. 엄마로, 아내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느라 나 자신에게는 소홀했던 나와의 결별. 면허는 있지만 운전할 줄 모르고 지하철만 타도 멀미를 하는 몸으로 내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 나와의 결별.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나 혼자 책방 여행을 떠났다. 1년 열두 달 내가 보낸 열두 밤의 이야기를 여기에 담았다.
--- p.8
3.
이보다 토속적일 수 없는 곤드레밥이 발사믹 소스와 치즈가 뿌려진 샐러드와 함께 폴란드 그릇에 담겨 나왔다. 그릇과 음식의 낯선 조합이 낯설고 새로웠다. 식기를 들고 습관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바로 포크 질을 멈췄다. ‘아, 나 지금 이렇게 급하게 밥을 먹을 필요가 없는데? 느긋하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먹어도 되잖아!’ 지금 시각, 오후 1시 30분. 오늘의 할 일이라고는 천천히 밥을 먹고 북 스테이 입실 시간에 맞춰 걸어가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빠르게’ 모드를 급히 종료했다.
--- p.13
4.
태양은 149,597,870km, 그러니까 지구 한 바퀴를 3,561번 돌아야 하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우리 사이의 아득한 거리가 무색하게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걸어가는 내 머리 왼편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 빛이 얼마나 찬란하고 든든한 존재가 되었는지 길을 걸어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더없이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길에서 처음 배웠다.
--- p.15
5.
혼자만의 첫날밤 가득했던 것은 남편과 아이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었다. 그 절절한 마음에 내가 계속 혼자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마구 걱정을 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것만으로 그 걱정을 말끔히 해결했다. 다시 돌아왔다. 한없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곁으로, 다음 여행을 기다리게 만드는 나의 일상으로.
--- p.23
6.
역방향으로 시작한 1월 여행은 어릴 적 소망을 찾아오는 여정이었던 걸까? 피아노는 형편이 어려운 걸 뻔히 알면서도 엄마한테 처음으로 사달라고 했던 물건이었다. 미술 수업은 내가 부탁해서 받은 첫 사교육이었다. 작년에 시작한 피아노를 떠올리며 다시 그림 수업을 받아보겠다는 계획을 안고 돌아올 거라고, 어제 여행을 나설 때의 나는 조금도 상상할 수 없었다. 역방향으로 예매를 해놓고도 기차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나처럼 그 시간이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무수할까?
--- p.43
7.
나는 나를 미워했다. 몸이 약한 나를 미워했다. 창의력이 없는 나를 미워했다. 여덟 살 때부터 매일 서점에 틀어박혀 책방에 있는 소설이란 소설은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어대면서도 소설가는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또 잘했던 나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께 미술을 전공해보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고민의 여지조차 없었다. 꼼꼼한 성격 탓에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을 흉내 낼 수 있을 뿐, 나는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창의력은 내 능력 밖에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 p.60
8.
발가락 하나도 꺼내고 싶지 않은 호텔 이불 안에서 8시까지 꼼지락꼼지락 게으름을 부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차려주고 간 아침을 먹고 돌봄센터에 갈 준비까지 마쳤단다. 엄마는 집에 없고 아빠는 출근했는데도 빈 집에서 등원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여유가 넘쳤다. 10년 전의 나에게 아무리 말해주었다 한들 믿을 리 없었을 날을 지금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딱 하루만, 더도 덜도 말고 단 한 번만이라도 밤새 깨지 않고 푹 자봤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울부짖던 날들이 흘러 오늘이 왔다.
--- p.64
9.
한 달에 한 번 나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안 하던 짓--- p.!)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여행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이상하게 허술했다. 평소의 나는 1년 열두 달을 줄 세워 적어 놓고 달마다 좋을 장소를 모색해 1순위는 물론 2순위까지 정리해 두었을 텐데. 철저하리만큼 계획적이었던 나는 사라졌다. 나태하고 게으르고 느슨했다. 이 여정의 목적이 무언가를 완벽하게 달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동안 애쓴 나를 돌아보며 쉬어 가는 것이었으므로. 그저 느낌이 가는 대로, 즉흥적인 떠남과 멈춤을 즐겨 보자 싶었다.
--- p.72
10.
그녀에게 여행은 언제나 조금 멀리 있었다. 일상성에서 벗어난 하루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항상성을 좋아했다. 그리고 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보다 더한 것들을 선사했다. 상상하지 못한 화성으로 변주를, 그를 위한 여행을, 아니 그의 어머니를 향한 선물을,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하룻밤의 빛나는 추억을.
그녀는 이번에도 새롭게 배웠다. ‘떠나지 않음’에서 여행이 시작될 수도 있음을. 일부러 쓰라고 해도 이보다 극적일 수는 없을 듯한 변주 앞에서 그녀는 찬양했다. “오오, 여행이시여! 그대가 선사하는 일상의 균열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뜨겁게 누려보겠습니다!”
--- p.103
11.
둘이 가는 여행은 다른 자리에 앉는 것으로 시작했다. 카시트에 앉은 아이 옆이 아닌 운전석 옆자리는 대체 얼마 만인지. 탁 트인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시원했다. 오랜 시간 엉덩이를 깔고 앉아 줄 사람이 없었던 자리의 시트가 푹신했다. 나는 그 편안함에 몸을 더 깊이 묻었다. 빈자리일 수밖에 없었던 이 자리의 10년을 생각했다. 아이 옆일 수밖에 없었던 10년, 우리가 지나온 10년. 그렇게 꼬박 10년을 지나 오늘 다시 앉은 이 자리는 이제 다시 채워질 수 있을까? 앞으로의 10년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 p.112
12.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동네에 은행의 힘까지 넘치게 빌려 터를 잡은 이유는 우연과 운명의 환상적인 콜라보 덕분이라 했다. 육아로 한껏 지친 그녀가 가족 여행으로 강원도 평창에 도착했을 때, 바로 번쩍! 오래도록 꿈꿔왔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터전이 ‘바로 여기’라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책을 읽던 어느 날 번쩍 ‘이 글을 읽고 있는 네가 바로 너만의 글을 써야 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책 쓰기를 시작한 나처럼 그녀 역시 그 소리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책방지기가 되었다.
--- p.144
13.
부모님은 내 몸의 한계와 예민함을 언제나 따뜻하게 보듬어 주셨고, 나는 그들의 그늘에서 생존했다. 그 그늘이 얼마나 넓고 편안한 것이었는지는 내 자식을 낳아 키워 보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빠를 향한 미움과 원망도 자연스레 흩어졌다. 한때 강렬하게 사로잡혀 있었던 가해자로서의 아버지상, 그러니까 엄마를 힘들게 하는 시집살이의 부당함이나 말도 안 되는 가부장제의 불평등한 문제들이 다 아빠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도 벗어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불평등을 향한 분노로 공부하기 시작한 페미니즘이 알려주었다. 그건 내 아빠라는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의 문제라고.
--- p.164
14.
서해랑길을 걷는 아침, 더 많이 걸어보고 싶어졌다. 지금 하는 잠깐의 산책을 지나서, 여기와 저기 사이의 이동을 위한 걷기를 넘어서 더 오랜 걷기. 걷기를 위한 걷기. 애초부터 걷기를 작당하고 가는 여행은 어떤 맛일까? 나도 이런 16.2km의 코스를 다 걸어볼 수 있을까? 그런 걷기는 일상의 걷기와 무엇이 다를까? 강렬하게 쏟아지는 아침 7시의 햇빛을 모자 하나 없는 맨얼굴로 맞으며 또 다른 걷기를 생각했다. 오늘의 걸음이 데려갈 내일의 걸음을 상상했다. 아무도 없는 저 앞의 밭에서 불쑥 뛰어나온 고라니를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발걸음을 돌려 걷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길, 밑도 끝도 없이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날아왔다. ‘다음에는 올레길의 한 코스를 걸어보자!’
--- p.172
15.
늦여름의 녹음이 우거진 산세를 배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신 공간. 〈굼벵책방〉은 광합성이 허락되는 곳이자 비타민 충전소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40여 분을 걸어오느라 땀이 난 나는 보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통창 앞에 앉아 숨을 골랐다. 연천역에서부터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왔냐 놀라워하는 책방지기님께 노트북을 두고 와서 괜찮았다고 말하며 하룻밤 옷가지만 최소한으로 챙긴 여행 가방의 가벼움을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굼벵님은 깜짝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었다. “슬기쌤이 노트북을 두고 왔다고요? 내가 아는 슬기쌤 맞아요? 슬기쌤이 노트북을 두고 다닐 수도 있어요?!”
--- p.190
16.
우리 사이는 2018년 10월 4일 시작됐다. 2017년 10월 시작한 그림책 모임이 만 1년 지났을 때, 나는 세 명의 새 멤버를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 미래의 책방지기 굼벵님은 그 글에 두 번째로 댓글을 남겼다. 10월 15일 처음 만난 우리는 매주 월요일 오전을 그림책으로 채웠다. 2019년 12월,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끝나면 다시 모이자 인사하며 우리 모임도 방학을 시작할 때는 누구도 몰랐다. 그 방학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나 1년, 2년 넘게 이어질 거라고, 그 멤버 중 한 사람이 그림책방을 차리게 될 거라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모임이 멈춰버린 사이 굼벵님은 꿈틀꿈틀 움직여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 ‘그게 되겠어? 그림책이 팔리겠어? 거기까지 가는 사람이 있겠어?’ 묻고 또 묻는 모든 말들을 뚫고서.
--- p.191
17.
국어사전이 정의하는 ‘편안하다’와 ‘여유롭다’는 오랜 시간 나에게 허락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산더미 같은 걱정을 생산하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조급한 마음으로 언제나 서둘렀다. 누구보다 빠르게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결과는 늘 완벽해야만 했다. 용납할 수 없는 실수가 벌어지지 않도록 긴장하며 나를 채찍질했다. 출산 후 만 9년이 지났던 작년 11월, 내 손가락은 성한 곳이 없었다. 피가 나도록 물어뜯은 손톱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코로나 기간, 건물 입구에서 손소독을 할 때마다 손끝 상처에 닿은 알코올의 쓰라림에 몸서리를 쳤다. 그 아픔의 강도가 유난히 심했던 어느 날, 등줄기를 타고 머리끝까지 쩌릿해지는 통증 속에 생각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 p.192
18.
내 몸이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나도 혼자 이 먼 섬에 와있기 때문일까. 평소라면 정반대였을 말을 내뱉고 있는 우리 부부의 대화가 너무 낯설어 신기했다. 이토록 안정적인 마음과 대범한 믿음이 나에게 있었던가? 전에도 그랬던가? 최선을 다해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떠오르는 것은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불안에 떨며 눈물을 훔치던 내 모습뿐.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바들바들 떨며 긴장하던 사람은 나였다. 아이가 아파도, 아이가 다쳐도, 아이에게 생기는 모든 일의 책임을 너무도 쉽게 ‘엄마’에게로 돌리는 세상에서 불안은 떼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가 잠을 못 자는 것도, 예민한 것도, 낯을 가리는 것도, 내향적인 것도 모두 나의 ‘탓’인 것만 같아 가슴 졸이며 보내온 10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자란 걸까?
--- p.227
19.
그런데 이 무슨 반전의 연속인지, 9월의 제주에서 여자 셋이 함께하는 식탁의 즐거움을 만났다. 〈제주살롱〉에서 근사한 아침을 내어 주신 빵마담님과 핑크방 손님, 그리고 민트방에 머문 나까지 둘러앉아 나누었던 세 여자의 시간은 편안했다. 그 시간이 ‘다시, 속초’를 불러왔다. 5년 만의 재방문이자 새롭게 단장한 스테이 공간으로는 첫 방문을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여행으로 작당했다.
--- p.241
20.
평소의 나라면 조용히 82-1번을 기다렸을 것이다. 저건 82-1번이 아니고 82-2번이니까,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아니니까. 하지만 여긴 어디? 서울 아닌 전주. 6월의 평창에서 배운 건 뭐다? 서울 아닌 곳에서 버스는 귀하고 귀하도다! 지난 여행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한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여 일단 버스에 올라타며 물었다. “송광사에 가나요?”
--- p.269
21.
열두 번의 모든 밤은 나의 한계를 넘는 밤이자 부수는 밤이었다. 내가 넘고 부순 한계는 멀미나 체력이 아니었다. 그게 내 한계라고 생각해 왔던 나의 오랜 생각이자 그 안에서 걸어왔던 나의 같은 경로였다. ‘친절하게 행동하려면 당신이 종종 자신이 걷던 길에서 이탈해야만 한다’는 타라 브랙의 말은 진실이었다. 1년의 여정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친절함’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친절. 오랜 시간 나에게 간절하고도 아득했던 태도가 나에게 왔다.
---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