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가 이슬이 되리라는 결단은 시적인 결단이다.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임으로써 이 시적인 결단을 현실에서 실행했다. 앞에서 말한 문학적 죽음은 시적인 죽음이었던 것, 이때 ‘시적인’을 통상 생각하듯이 ‘화려하게 꾸민’, ‘멋있는’ 등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시적인’은 극한에까지 다다른 진실을 의미한다. 그 진실은 실존적인 것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고향으로의 귀향은, 자신의 실존이 형제가 있는 고향에서 온전히 진실될 수 있으며 그 진실 속에서만 이 소외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존재 전체를 회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결단이다. 전태일의 시는 자신의 실존과 고향(사회)의 분리불가능성을 지렛대로 삼아, 현실의 완강한 벽을 깨뜨리며 솟아난다.
---「이성혁, '전태일이라는 시’와 전태일-되기」중에서
가난한 우리가 가난한 집을 나와
가난한 생을 산다
해가 떠도 어두운 도시
내일을 봉한 숲에서
고만고만한 꿈을 쥔 우리가 모여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병들어 죽어간다, 풋복숭아 같은 몸들
희망을 담보한 자본의 착취
부유한 환경이 외면하는 우리가
숨 가쁜 서로를 부축하며 버티는
이 꽃밭은 삶인가, 이미 너머인가
기울어진 세상을 읽기 시작했다
노동을 밟고 일어서는 부와 권력의 속도
그들이 거름이라 치부하는 고귀한 바닥의 권리
하루하루를 살아 이루고 누릴 당연한 자유
일한 만큼 공정한 대가를 위해
온몸으로 뜨거운 밑줄을 그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스물두 살이었다
모두가 귀 기울이기 시작한 스물두 살, 전태일이었다
---「권선희, 밑줄」중에서
눈 내리는 저물녘
건너편 설화산은 흰 저고리
눈 쌓이는 오솔길마다 치마 사각거리는 소리
밤나무는 가만히 내놓지 않았다
뿌리가 품고 있던 옥비녀와 은반지
꽃무늬 새겨진 쌍가락지
M1과 카빈 소총 탄두
탄피 박힌 두개골
불에 탄 뼈
도끼질 당하고 톱으로 잘리고 나서야 내놓았다
폐금광 구덩이에 뿌리내린 밤나무는
구슬과 청동 종
마사토와 진흙 잡석 사이 켜켜이
묻어놓은 꽃단추
끈 달린 고무신과 가죽신
흰 포대기 속에 싸여 있는
아기들 갈비뼈
눈보라 치는 밤이면 들린다
나무 부러지는 소리
아이들 구슬치기하는 소리
엄마 치마폭 속에서 엄마와 함께
구슬 꽉 쥔 채
할머니 품속에서 할머니와 함께
뱃속에 든 아이와 함께
섣달 저문 날
젖먹이는 업고 큰것은 걸리고
새끼줄에 묶여
설화산 뒷터골로 끌려가는
흰 저고리 흰 치마
1951년 1월 6일
---「김해자, 수철리 산174-1번지」중에서
눈은 高空의 공포로 휘청거렸다.
말문이 막힌 채
상경하는 기차에서 몸을 던지듯
무작정 공단 앞에 뛰어내렸다.
태어나는 것과 버려지는 것의
배합 비율은 대체 얼마일까.
생각할 틈도 없이
뒤에서 떠미는 물량에 치여
상자에 내던져진다.
아, 그런데 이 벼랑은
어느 날엔가 와본 듯해.
살아본 듯해.
몸이 더 잘 얼 수 있도록
포장 상자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재고가 쌓이는 겨울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닫힌 공장을 나서는 언니도
겨울옷을 입고 봄 속에서 녹아가겠지.
---「박승민, 상자에 던져진 눈」중에서
자유의 새가 되고
광야를 달리는 세찬 바람이 되고
대지로 스며 역사의 꽃이 되고
푸르른 신념의 나무가 되고
어둔 세상의 별이 되고
해방의 불꽃이 되고 장작이 되고 들불이 되고
흘러 흘러 바다가 된 이들을
오랫동안 노래했네
늦게야 정신 차리고 보니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로운 세대들이 자신들 소리를 한껏 낼 수 있게
조용히 빈 여백으로 스며드는 일
추악한 말들 모두 지우고
조금은 더 곱고 깨끗한
백지로 남는, 혁명
---「송경동, 노래, 할 수 있을까」중에서
처음에는 도끼 하나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나무토막처럼 찍었고
나중에는 망치 하나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못처럼 박았고
지금은 렌치 하나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나사처럼 조이고 풀었다.
물론 그동안 은밀히 도끼가 망치를 쪼개고
망치가 렌치를 내리치고
렌치가 도끼를 조이기도 했다.
모두 자신의 도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몰랐지만 또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과연 그들에게는 저 도구 하나밖에 없었을까.
낡은 게 가고 새로운 게 오지 않았을 때가 위기라면
진짜 위기는 낡은 것도 가지 않고
새로운 것도 오지 않았을 때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도구가 인간을 사용하는 지금이다.
---「이산하, 후기 빠시즘」중에서
나는 섬의 심장
너는 뭍의 심장
나는 파도보다 높은
너는 바람보다 강한
나는 울음이 바다를 건너도록
너는 외침이 산을 넘도록
나는 바른 주먹을 위해
너는 바른 행보를 위해
나는 들판을 달리며
너는 거리를 달리며
아침은 눈물을 저녁은 주검을
정오의 붉은 해는 깃발을 힘껏 잡아당기고
---「허유미, 4월과 11월」중에서
전태일이 고통받는 친구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화염 속으로 집어넣었을 때, 불속에서 타올라 불꽃의 정상으로 올라간 것은 전태일만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사람들 전부였다. 세계의 모든 것이 일어나 그 불속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불꽃의 정상에서 그제야 비로소 노동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베냐민이라면 땅에서 일어나 전태일과 함께 날아올라가는 것은 파국의 잔해 더미들이고, 내려오는 것은 혁명의 언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전태일의 몸이 세상의 잔해 더미들을 이끌고 불속에서 일어나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신음이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신음이 곧 벌거벗어서 공유해야 할 감정의 공동체가 되는 노래였다. 1970년 이후 한국의 어떤 현대사는 이 노래를 시로 쓰는 행위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역사였다.
---「박수연, 법을 넘는 시―전태일이라는 기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