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권 선진국’을 위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딱딱한 책을 그간 많은 시민이 읽어주셨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올린다. 출판사에서 ‘10만 부 발간’ 기념으로 표지 디자인을 바꾼 양장본을 출간하기로 했다. 이 기회에 책 내용을 수정·보완했다. 교수도 장관도 아닌 시민이 된 나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또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두 인내하면서 이겨낼 것이다. 힘들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La vita e bella!)”
--- 「10만 부 출간을 기념하며」 중에서
사회권은 우리나라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헌법학에서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 근로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주거권, 보건권 또는 건강권 등을 사회권으로 분류한다. 국제적으로 유엔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에 규정되어 있는 권리다. 풀어 말하면 노동, 주거, 복지, 생계, 의료 등의 분야에서 사회·경제적 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회권은 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국가의 ‘시혜’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 「머리말」 중에서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에 기초하여 국정을 운영했고 대한민국을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킨 정부다. 문재인 정부의 최고 성과는 외교, 안보, 방역에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 정부의 발언권도 강해졌다는 것,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최소화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사라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1장 〈문재인 정부의 성과〉」 중에서
윤석열 정권은 ‘법률’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경찰의 수사 종결권 축소 등 검찰의 경찰 수사 개입을 강화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이루어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뒤집고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이룬 것이다. 국회가 법률에 따라 검찰 수사권을 축소했는데, 시행령을 통하여 다시 확대한 것이다.
--- 「1장 〈문재인 정부의 성과〉」 중에서
양극화 자체도 문제지만, 계층 상승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2018년 OECD는 한국의 저소득 계층이 중산층으로 이동을 하려면 다섯 세대, 약 15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노력에 의한 계층 상승이 불가능해지면,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처럼 폭력 혁명이나 〈기생충〉의 기택 가족처럼 범죄로 계층 상승을 도모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2장 〈미완의 재조산하〉」 중에서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것이 부동산 정책이다. ‘자기 소유의 집(주택의 부속 토지 포함)’을 가지려는 시민의 꿈은 소중하며 존중되어야 한다. 주택 건설업이 주요 산업으로 발전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집값을 단지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지대 개혁을 통하여 집이 투기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동시에 국가는 자기 소유의 집 외에도 다양한 주거 형태를 공급하여 시민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이럴 때 시민은 자신의 재정 상황과 설계에 따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주택정책의 초점은 중산층과 서민에게 안정적 주거를 제공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
--- 「3장 〈주택 및 지대 개혁〉」 중에서
메가시티가 추진되어 지방 인구가 유지되고 지방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지방대학도 생존할 수 있다.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고 수도권 경제가 지방 경제를 압도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지방대학의 육성 방안이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메가시티를 추진하면서 메가시티 안에 있는 거점 국립대학, 국공립대학 등도 재구성해야 한다.
--- 「4장 〈지방 분권과 지역 균형〉」 중에서
많은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 40시간·주 5일 노동제’는 안착되었다. ‘놀토’는 사회 전체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위에서 소개한 주 35시간 노동제, 주 4.5일 노동제, 하루 6시간 노동제 등 새로운 구상이 실현되면 일자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감축시켜 고용 증대를 일으키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 「5장 〈노동 인권과 민생 복지 강화〉」 중에서
헌법 제119조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헌법은 자유경쟁의 이름 아래 시장 약자를 몰락시키는 경제 질서를 상정하지 않는다. 일찍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라고 갈파했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고 자유롭게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사자에게 소를 마음껏 잡아먹으라는 얘기와 같다. 여기서 칸막이를 만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 「6장 〈경제민주화〉」 중에서
보수적 유교 전통이 자리 잡고 있고 보수적 기독교의 발언권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동성혼 합법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는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2001년)를 위시한 서구의 여러 나라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대만 등의 예가 있다. 하지만 동성혼을 당장 인정하는 것이 부담된다면, 미국 버몬트주, 뉴욕주 등 6개 주와 워싱턴D.C. 및 다수의 유럽 국가처럼 ‘시민 결합’이라는 별도의 제도를 도입하여 동성애 커플의 삶을 보호해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법률은 아니지만 이바라키현 등 다섯 군데 광역자치단체에서 조례로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있다.
--- 「7장 〈차별을 넘어 공존으로〉」 중에서
사회권은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다. 권리는 그 주체가 요구하고 주장해야 권리가 된다. 헤겔은 말했다. “의무만 있고 권리 주장이 없는 사람은 노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나치즘, 파시즘, 개발독재 등에서 발생한 자유권의 부재를 비판하고 넘어서면서도,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유권이 유명무실해짐을 직시해야 한다. 법철학자 존 롤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등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새로운 ‘반성적 평형’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의와 형평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새로운 규칙과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 「맺음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