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신용일은 1942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난 수필가이다. 1992년 한국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한국수필문학 진흥회 이사를 역임했고, 청파문학 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눈이 아프면 하늘을 보고』,『진실과 허위가 미역감은 이야기』가 있다.
구례에서 하동에 이르는 길, 아랫물이 더 맑다는 섬진강이 비단폭이다. 매화우(梅花雨) 흩날리는 언덕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본다. 봄인가 하면 여름이요, 핀 듯싶은데 지는 게 꽃이다. 사람살이와 무엇이 다르랴. 좋다! 탄식처럼 토해 내는 아내의 감탄사다. 사는 게 별건가, 만금을 가지고도 만족을 모르고 가진 게 없어도 여유가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한 삶인지 모를 일이다. ---「산 따라 물 따라 2」 중에서
장엄한 폐허다. 아름다운 폐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 조각도 있는 그대로가 예술이요 진리다. 거목이 뿌리를 내려 용틀임하는 장관까지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폐허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인가. ‘프놈바켕’ 사원에 앉아 폐허에 물드는 노을을 우러러보며 아내의 거친 손을 꼬옥 잡는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아름다운 폐허」중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이런 삶도 있구나. 없는 듯이 있고, 노는 듯이 일하며, 죽은 듯이 살고 있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스럽다. 이방의 나그네 눈이 열린다. 신비한 나라 노르웨이, 가슴이 설레어 발걸음이 가볍다. 내 늘그막에 아내의 손을 꼬옥 잡고 꿈같은 이 길을 걷고 있으니, 이 아니 좋은가. --- 「북유럽기행 1」중에서
사람만 이웃이 아니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작은 생명 하나도 다 소중한 내 이웃들이다. 골목길 휴지 하나 먼저 줍고, 한 걸음 물러서서 뒤돌아보련다. 산길, 들길, 풀잎 하나 다칠세라 조신操身히 걷다가 이끼 낀 바위에 귀를 열고 영마루 흰 구름에 가슴을 열련다. 편하고 쉬운 다정한 내 이웃들, 맘 없는 말이 메마른 가슴에 단비로 젖는다. 살기보다 쉬운 게 없다는 삶, 그저 그렇게 그냥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