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살아서 감동을 주는 작품 그 자체다. 작품은 화가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의 품을 떠나면 화가의 개인적인 전기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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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어느 책표지에서 본 그림이다. 여자 두 명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남자의 목을 베고 있다.한눈에 유디트임을 알수 있다. 그런데 예사롭지가 않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잔임함이다.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은 홀로페르네스가 손을 뻗쳐서 제 몸을 누르는 유디트의 몸종 아브라에게 저항하고 있다.
그의 목은 이미 유디트의 손에 들린 칼에 반쯤 썰린 상태다. 목에서 뿜어나온 피가 침대의 하얀 시트를 붉게 물들인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따고 있는 두 여인을 보라. 얼마나 강인해 보이는가! 칼을 든 유디트의 팔은 마치 남자의 팔처럼 근육이 불거져 있다. 이 잔인함이 강렬한 색채로, 그리고 극한 명암의 대조를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된다. 강렬한 인상, 아니 충격을 주는 그림이다.
--- p.170
예술은 작품을 보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완성된다. 나는 단지 작가의 의도를 가만히 서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관람자가 더 이상 아니다. 나의 해석은 작가의 그것보다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 나는 작품을 창조적으로 읽는다. 창조적 해석을 통하여 나 또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근사하지 않은가?
--- p.274
말로 표현하면 생생함을 잃게되는 인간의 꿈과 상상력, 말로 전달할 수 없는 정서와 느낌, 혹은 말이 없어도 서로 공감하는 진실등...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 개념화할 수 없는 것을, 예술은 말이 아닌 형상의 이미지로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논리철학 논고>를 이런 구절로 끝맺는다.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이렇게 언어가 침묵하는 곳, 그곳에서 예술은 시작한다. 언어는 세계에 대해 말을 하지만, 그림은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세계를 '보여 준다'.
---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