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에는 단지 지식이 아니라 참된 지혜가 필요하다. (…) 우리의 자매이자 조상인 줄리안은 오늘날 우리에게 간곡히 말할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목소리이지만 크게 외친다. 깨어나서 깊이 들어가고 어둠을 직면하고 선함과 기쁨과 경외를 파헤쳐 발견하라고 외친다. 그리고 어머니 지구와 지구의 피조물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며, 우리들 안에서 인종주의, 성차별, 국수주의, 인간중심주의, 분파주의 등 인간의 위대함을 방해하는 것들을 모두 없애라고 촉구한다. 또 생명의 거룩함과 새롭게 연결하라고 외친다.
---「머리말」중에서
그녀는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변화를 직면할 때 겪는 괴로움을 감상적으로 대하거나 은폐하거나 (많은 정치인들처럼) 부정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슬픔, 두려움, 애도에서 도망가지 말고 자기감정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므로 그 진실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 그녀는 팬데믹과 함께 일어나는 그림자와 어둠에 머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삶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1장 ‘어둠을 직면한다’」중에서
절망에 빠지면 행동할 수 없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못한다. 절망은 영혼을 죽이고 연민도 죽인다. 따라서 ‘긍정의 길’을 따르고 선함, 기쁨, 경외의 힘에 따라 일해야 한다. 긍정의 길을 따르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든 상관없이 공경과 존재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게 된다. 투쟁과 알지 못함은 우리 영혼을 정화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당연히 여기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2장 ‘선함, 기쁨, 경외’」중에서
‘범재신론’이란 하느님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다르게 말하는 법이다. 그 문자적 의미는 ‘만물이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만물 안에 있다’는 것이다. 줄리안보다 60년 전 막데부르크의 메히틸드는 “만물이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만물 안에 계신 것을 본 날, 나는 영적으로 깨어났다”고 외쳤다. 즉 그녀는 범재신론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영적으로 도약하고 성숙했다. 줄리안도 이와 유사한 깨우침을 말하고, 그것이 그녀 안에서 환희와 기쁨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한다.
---「3장 ‘자연과 하느님은 하나다’」중에서
줄리안은 팬데믹 시대와 그 이후에 우리가 생존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젠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 줄리안은 여성적 신을 삼위일체의 전통과 그리스도 안에 가져오려 노력한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교 페미니스트들처럼 주저 없이 그리스도를 ‘그녀’라고 부른다. 예수와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어머니’라고 말하는 그런 이야기에서 줄리안의 여성성과 잠재적 모성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보인다. 줄리안은 “자비로운 어머니”인 그리스도가 “우리를 화해시키고 변형시켜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십니다”라고 말한다.
---「4장 ‘여성적 신과 하느님의 모성’」중에서
줄리안은 이원론에 저항한다. 결국 그녀는 우리를 우리 자신의 신비주의와 우리 자신의 하나됨으로 부르는 신비가이다. 그녀는 비이원론자이지만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렇다고 차이를 부정하거나 아첨이나 달콤한 말이나 사탕발림으로 차이를 덮으려 하지 말고, 반대되는 것들을 혼합하라고 권한다. 삶은 우리에게 반드시 행복과 슬픔의 놀라운 뒤섞임, 빛과 어둠의 뒤섞임, 긍정의 길과 부정의 길의 뒤섞임을 겪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녀는 하느님이 이런 뒤섞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고 힘주어 말한다.
---「5장 ‘비이원론을 맛본다’」중에서
줄리안은 상세히 설명한다. “우리의 본질과 감각성을 합하여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본질과 감각성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몸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명예나 수치심을 일으키지 않고, 우리의 본질, 감각성, 영혼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주목하라. 비이원론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 마음이나 의식에 있는 것만큼 우리 몸에도 있다.
---「6장 ‘우리의 감각성을 신뢰한다’」중에서
악을 이기는 것은 하느님 어머니가 하는 일의 일부이다. “악을 이기고 선을 행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어머니이십니다…… 사악함이 일어나 선에 맞서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이 “사악함을 선으로 변형시켰”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의 길’의 힘에 참여하고 그것을 확장하여 악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악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로 순수하게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은총은 우리에게 사악함에서 벗어날 힘을 줍니다. 은총은 악을 멸절하고, 인간의 본성을 본래의 축복받고 아름다운 원천 즉 하느님에게로 회복시켜줍니다.”
---「7장 ‘악을 이기는 사랑의 힘은 안녕으로 이끈다’」중에서
팬데믹은 우리를 일깨우기 위해 일어났다. 무엇을 일깨우는가? ‘새로운 정상’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의 거룩함과 지구의 온갖 생명들의 거룩함을 공경하는 정상이다. 거룩한 남성성과 더불어 여성적 신을 공경하는 정상이다. 인간의 몸과 몸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과 함께 지구의 몸에 필요한 것을 공경하고, 그런 기반 위에서 새로운 몸의 정치를 일으키는 정상이다. 억만장자들과 그들을 만들어낸 구조를 떠받들지 않는 정상이다. 그리고 ‘뭐, 어쩔 수 없지’라는 태도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바라보면서 숙명론적 자기혐오를 실현하는 자기도취 정치인을 선출하지 않는 정상이다.
---「후기 ‘21세기를 위한 예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