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내 이름을 한 번 더 떠올려 보자. 내 이름은 담덕, 풀이하자면 ‘덕을 말하는 자'다. 그런데 아는가. 왜 내가 담덕인지? 그건 내가 전혀 담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잖은가? 나, 지금껏 덕을 말한 적이 없다. 나, 평소 무武를 즐기고 무를 말했던 자였다. 나의 백부 소수림왕께서 그 이름을 주셨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담덕과는 거리가 먼 ‘담무', ‘담부덕’인 것 같아 부디 ‘담덕'하라고 그 이름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듣자 하니, 저 한족 진과 모용의 연은 나를 ‘안安’이라고 부른다 한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라. 왜 그들이 나를 ‘안’이라고 부르겠는가? 내가 전혀 '안'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전혀 편안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디 ‘안'해지고 순해지라고 자기들 멋대로 자기들의 소망을 담아 그리 부르는 것이다." --- p.60
호화로운 궁궐보다 거친 들판을 좋아했던 왕
흔들리는 여인의 가슴보다 흔들리는 말 잔등을 더 좋아했던 왕
적들에겐 공포를, 백성들에겐 평안을 주었던 왕
전쟁이 나면 친히 말고삐를 쥐고 전쟁터에 나갔던 왕
싸우면 반드시 이겼고, 서른다섯 번 싸워 서른다섯 번 모두 이겼던 왕
그래서 타국의 왕을 종처럼 부렸던 왕
타국의 왕에게 절대 머리 숙이지 않았던 왕
진실로 강한 자에게 취하여 약한 자에게 분배했던 왕
진실로 나라 밖에서 취하여 나라 안에서 분배했던 왕
그러면서 오직 한 여자만 사랑했던 왕
사랑해선 안 될 비천한 여자를 사랑했던 왕
끔찍이 그 여자를 사랑했으므로 차갑게 그 여자를 버렸던 왕
하지만 끝까지 버릴 수 없어 대신 왕위를 버리고 나라를 버렸던 왕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왕, 왕답지 않은 왕, 차라리 인간답지 않은 왕
우리가 생각하고 추측할 수 있는 것, 그 위에 존재하는 왕
진실로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도 있어본 적 없는 왕
그 거룩한 이름, 왕위에 계실 땐 영락태왕
왕위를 버리셨을 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자, 내 무덤을 파헤쳐 내 얘기를 들었던 자, 그대가 누구이든 상관없다.
밭 가는 농부, 나물 캐는 처녀, 땅속의 진귀한 보물을 찾아 헤매는 도굴꾼이라도 상관없다.
그대가 옛 조선의 후예, 부여족의 후예, 하늘 아래 가장 강력한 나라를 건설하신 광개토태왕의 후예이기만 하다면 지금까지 들려준 얘기, 그대의 왕에게 전하라.
부디 그대의 왕이 나의 왕을 따라 배울 수 있도록.
부디 그대의 왕이 약한 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강한 자에겐 한없이 강해질 수 있도록.
부디 그대의 왕이 강한 나라에 빌붙지 않고, 강한 나라와 당당히 맞서 싸우며 세계 최강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 pp.27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