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는 많은 우수한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를 생각하면 금방 그 수가 줄어든다. 왜냐하면 지도자에는 리더형과 보스형이 있으며, 이 둘은 엄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리더란 스스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고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를 계속해서 이루어 나갈 만한 의지가 있는 지도자를 말한다. 세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과 과감한 결단력을 지니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을 말한다. 반면에 보스는 사람을 잘 다루며, 조정력이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동시에 동료들에게 추대되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인물이다. 모두가 싫어하는 급격한 변혁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보스는 쓰러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 보스에게는 이념은 없으며, 기능을 중시하고, 철저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대담성도 결여되어 있다. 보스는 쓰러지는 순간 그 카리스마도 사라진다. 그러나 리더는 설령 도중에 쓰러지더라도 시대를 움직이는 영향력과 명예가 남는다.
노부나가는 80%정도 천하를 잡은 시점에서 쓰러졌지만, 그의 명성은 영원히 남아 있다. 마치 로마의 공화제를 폐지하고 세계 국가를 지향하다가 암살당한 카이사르(시저)의 영광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처럼, 노부나가는 세계를 목표로 한 스케일이 큰 리더였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저패니즈 드림을 실현한 히데요시 유형, 또는 가문의 안녕과 존속에 온 힘을 기울인 이에야스 같은 타입은 스케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노부나가와 같은 유형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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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에게도 꿈을
지금도 그렇지만 출세를 향해 뛰어가는 사람, 그것도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도중에서 꺾이고 마는 것은 중간에 줄을 잘못 섰거나 주위의 시샘을 피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는 센고쿠 시대에는 그와 같은 경우가 더욱 많았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그런 요인을 능숙하게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노부나가에게 질책을 받아도 위축되기는 커녕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히데요시는 노부가나를 존경하고 두려워하기는 했지만 결코 공포심을 느끼지는 않았다. 또 이름만 하더라도 하시바 히데요시라고 시바타 카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 에서 한 자씩 뽑아 개명하기도 했다. 미츠히데 같이 자존심이 강한 인텔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히데요시만의 천연덕스러움이었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한 순진함과 책략이 결사적이었던 것처럼 일에 대한 그의 열정 또한 대단했다. 당시의 책략은 오늘날의 정치가 도쿄의 요정가에서 이루어지는 담합처럼 목숨과는 관계 없는 여유로운 교섭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즉, 능력과 인격을 건 엄청난 도박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무장은 하나같이 강하고 신중하며, 또한 의심이 많았다. 그것을 푸는 데는 전투에 비길만한 능력이 필요했다. 일본 기업을 '동아리 자본주의'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히데요시 역시 약자와 능력이 떨어지는 자에게도 희망을 준 사람이다. 어떤 조직이든 2.6.2의 원칙이 있다. 즉, 20%는 우수, 60%는 보통, 나머지 20%는 좀 모자라는 사람들로서 조직에 얹혀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노부나가는 상위 20%를 얼마나 우수하게 만드느냐에 열정을 쏟았으나 히데요시는 60%를 차지하는 평범한 부하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었다. 또 약자들에게도 항상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또한 회사에 비유하면 모든 사원이 참가하는 운동회를 열기도 하고, 사원 여행이나 망년회, 불꽃놀이 같은 이벤트와 오락 등으로 아랫사람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조정 벼슬아치들 중심의 축제를 열 때도 길에 서 있는 붉은 앞치마 차림의 찻집 여종업원들을 보면 "너희들도 구경하러 오너라"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그런면에서 은근히 인심을 끌어당기는 힘을 엿볼 수 있다.
--- pp.137-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