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언제나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어쨌건 걸어가야 하는 길인데, 그 길이 두려워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한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용기 있게 발을 내딛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용기는 근육과도 같아서, 많이 써본 사람이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장강명이 신문사를 그만둔 것은 기자로서의 랠리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완주 지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 생활 동안 소재를 찾아내는 감각, 취재력, 월급쟁이의 성실함을 배웠고, 그 모든 것들이 지금 큰 힘이 되고 있다. ---「장강명, 뻔한 인생, 한 번쯤 옆길로 새보는 용기가 필요해」중에서
그는 질문과 만날 때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기회로 삼는다. 자신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도발하고 절망의 구렁으로 몰아넣는 수많은 물음들이 그는 정말 고맙다. 교수 사회의 기득권을 버리고 야생의 전업 작가를 선택할 때에도, 작가로 성공했다는 안도감 틈새로 자라난 절망과 무력감과 싸울 때에도, 힘들어도 계속 써야 하는 이유를 찾을 때에도, 그는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을 거듭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김탁환, 때론 섣부른 희망보다 절망을 탐구하는 것이 삶을 잘 견디는 방법이다」중에서
우리 삶에서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을 가르는 데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자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프레임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습관적인 질주에 익숙해지면 속도에 매몰되기 쉽다. 40대 중반에 그것을 깨달은 나종민은 인생 2막의 프레임을 ‘나눔’과 ‘공유’로 설정했다. 거울을 보고 웃어야 거울 속의 내가 웃을 수 있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또 같은 마음으로 한곳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음을 발견해 낸 것이다. ---「나종민, 행복을 찍고 희망의 셔터를 누르는 남자」중에서
“처음 세계 여행을 다닐 땐 여권에 ‘몇 개의 도장이 찍혔나’, ‘몇 나라를 다녀왔나’가 중요했어요. 하지만 뉴욕에서 머무는 여행을 즐기고 온 후로는 그런 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여행이 정말 고맙고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거지요. 떠나기 전에는 피로 누적에 원망과 불만이 가득했는데, 내가 원하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다시 돌아와 보니 세상이 온통 고마움으로 가득 차 있더군요.” ---「조은정, 일생의 결정적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중에서
“그때 어느 출판사에서라도 그 원고를 받아 줬더라면 내 글쓰기는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거듭 거절을 당하면서 내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스스로 깨닫게 됐지요.”
섣부르게 부풀었던 자신감이 꺼지고, 되살아난 열등감이 그를 매섭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견고해진 그 벽을 부숴야 했다. 그는 출판사마다 찾아가서 원고의 문제점을 알려 달라고 졸랐다. (중략) 무려 3년이 걸린 일이었다. 그렇게 만든 원고로 여섯 번째 출판사를 찾아갔을 때, 그곳에서는 만장일치로 출간을 결정했다. ---「이철환, 열등감을 삶의 동력으로 삼다」중에서
슬픔으로 슬픔을 위로받는다는 건 아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땐 그녀의 가슴에 헛된 물음만 밀물처럼 차올랐지만, 이제는 그 질문조차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정자 삼촌이 다독이며 채워준 힘으로 다시 일어섰고, 수없이 우도를 드나들며 해녀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다큐멘터리 [물숨]을 완성했다. (중략) 인생은 곳곳에 장애물을 숨겨 두고 우리를 넘어뜨린다. 간혹 깨지고 부러진다 해도 그 상처가 아문 자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어린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때에도 중심 잡는 법보다 ‘잘 넘어지는 법’을 먼저 가르치지 않던가. 우리 삶의 과정도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잘 넘어질 줄 알아야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내달릴 수 있다. 넘어진 자리는 다시 일어서는 순간,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고희영, 삶은 물숨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중에서
우리 삶에서 실패의 기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음 무대를 만드는 데 튼튼한 발판이 된다. 사랑의 아픔을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꿈의 상처는 다른 꿈을 향하는 열정으로 깨끗이 씻어낼 수 있다. ---「이선우, 내 일(Job)을 즐기며 내일(Future)을 꿈꾸는 사람입니다」중에서
“오늘이라도 내 삶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끝날 수 있고, 내가 누리는 어떤 것을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은 벌어질 수도,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벌어진다면 피할 방법은 없겠지요. 그런데 제가 새롭게 깨달은 게 있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되더라도 그때 새롭게 마주하는 상황이 있고,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이지요. 부정에서 무리하게 긍정을 이끌어 내는 건 거짓일 수 있지만, 일단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시작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박태근, 아버지로부터 삶의 문법을 배운 책쟁이」중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위안부 할머니 쉼터, 해고 노동자 농성장에도 따뜻한 밥심을 보탰고,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가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그녀가 건네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의미는 그렇게 나날이 더욱 커지고 한층 깊어지고 있으니, 밥 짓는 이는 오늘도 밥 짓는 일로 세상에 (행)복을 짓는다. 밥은 사람이 짓지만 사람은 밥보다 더 따뜻하다! 누구나 가끔은 자신의 존재가 너무 하찮게 느껴지면서 절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내가 나를 열고 나와야 한다. 나를 벗어나, 나를 내려놓고,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쓸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제2막을 시작하게 된다. ---「이보은, 밥심으로 자신과 세상을 치유하다」중에서
삶의 매 순간은 갈등의 연속이다. 그럴 때마다 방향을 잡아 주는 표지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긴다. 이롭든 이롭지 않았든, 지나온 길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가리킨 무수히 많은 화살표를 만났다. 또 나의 무심한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누군가에게 그런 화살표로 작용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작은 배려심 하나로 누구나 서로에게 구조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믿는다면, 아니 적어도 내가 누군가를 벼랑이나 늪으로 인도하는 화살표가 되지는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세상이 조금은 더 온기를 품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정세랑, 아픔을 이해하는 것으로 아픔을 이겨 내다」중에서
만약 당신에게 견디기 힘든 위기감이 목을 조여 온다면, 미련하게 버티지 말고 일단 “Stop!”을 외치자. 그때가 바로 하프타임이 필요한 시간이다. 쫓기며 보는 세상과 멈춰 서서 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삶의 질이 달라진다. ---「김호,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하다」중에서
운전을 할 때 가끔 교차로마다 연속으로 녹색 불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인생이란 길도 이런 직진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행운을 믿고 내달리다가는 필시 과속으로 탈이 나는 것처럼, 인생길에서도 속도에 급급하다 보면 결국 ‘나’란 존재는 미래와 현재 사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인생은 목적지에 도달하면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다. 매 순간으로 이루어지는 기나긴 과정이다. 잘못 든 길이 유턴을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잠시 멈추고 삶의 지도를 펼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오른쪽, 왼쪽으로 꼬불꼬불 돌아가는 길이 보인다. 그 지도가 책이라면 더없이 훌륭할 것이다. ---「최영아, 좁아진 세상을 ‘멈춤’으로 넓히다」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여러 번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그 포인트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 되려면 반드시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어야 한다.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 인생의 의미는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생산해 내는 것이다.
---「김홍민, 불행 속에는 행운의 지도가 숨어 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