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노동 과정은 잘게 쪼개져서 완성된 결과에서 거의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로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약 1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피로’가 현대의 정신적 질환임을 확인했다. (…) 결단력과 진취성을 보여야 하는 우리 사회의 제도적 논리는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계획하고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직장 어디에서나 우리는 행동편향을 볼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근무시간의 대부분이 근거 없는 활동, 기회주의적 행동, 자극에 대한 반응들로 채워진다. 이는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개인, 조직, 사회가 협동하여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고 심리적 압박에 밀려 비용을 초과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개인과 국민경제에 큰 손실을 안겨 주는데, 이런 행동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거나 이를 위해 의미 있는 다른 정책이 버려지기 때문이다.
--- p.37~38 「제1장 나는 지금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 중에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하지만 두 번째 나온 벌레는 목숨을 보전한다. 선구자로 칭송받는 창시자에게는 이미 실패의 씨앗이 들어 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선발 주자의 이익’ 맞은편에는 ‘선발 주자의 불이익’도 많다. 맨 처음에는 당연히 전문가가 없다. 선발 주자는 새로운 시장의 모든 디자인, 마케팅, 서비스 기술의 함정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며 믿을 만한 지원이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뒤따른 2등과 3등은 선발 주자의 곤경을 관찰하고 그의 실수에서 올바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성공이 이르면 기존의 사업 모델과 이 모델에서 구축한 고객 기반에 머무르게 되어, 단골 고객 너머에 있는 새로운 표적 집단으로 시선을 넓히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 p.91~92 「제2장 ‘혁신’이라는 이름의 환상」 중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연구가 마이클 바엘리가 발견한 행동편향이 등장한다. 그는 월드컵, 유럽컵, 챔피언스리그 경기의 286개 페널티킥을 선수가 선택한 방향, 골키퍼의 대응, 골 여부로 분석했다. 선수는 거의 비슷한 비율로 오른쪽, 왼쪽, 가운데로 찼다. 그러나 골키퍼가 가운데에 서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은 선수가 공을 차기 전에 이미 어느 쪽으로 몸을 날릴지 결정했다. 설령 그들이 방향을 맞혔더라도 25퍼센트밖에 막지 못했다. 반면 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을 경우 공이 가운데로 오면 60퍼센트를 막았다. 확률로 보면 골키퍼가 가운데에 그냥 서 있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골키퍼는 가만히 서 있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무능력하고 멍청이처럼 보이는 이런 태도는 몸값이 비싼 프로 선수들의 자아상과 직업윤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골키퍼가 열심히 움직였는데 방향을 못 맞혔다면 운이 나쁜 것이다. 그러나 골키퍼가 말뚝처럼 가만히 있는데 공이 한쪽 구석으로 들어갔다면 욕을 먹는다. 팬, 동료 선수, 감독은 골키퍼가 몸값을 하길, 즉‘움직이길’ 바란다. 주주들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CEO가 죽을힘을 다해 뭐라도 하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 바엘리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결론짓는다. “여기서처럼 보편 규범이 합리적 태도와 반대될 때는 보편 규범이 이긴다.”
--- p.117~118 「제3장 완벽한 기회를 잡기 위한 ‘바위 전략’」 중에서
개인 생활에서든, 직장 생활에서든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실수라도 일단 사과하기 전에 기다리라고 충고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사자가 아직 사건(모욕, 외도 등)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분노의 폭격을 당할 수 있다. 피해자나 대중들은 발생한 사건을 이해하고 피해 정도를 가늠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사과를 해야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사과를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면(몇 시간 혹은 며칠을 미룰 수 있으면) 상대방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일이 터지자마자 사과를 하면 그런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너무 오래 기다려서도 안 된다. 그러면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 사과처럼 보인다. 적당한 반응 시간은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 “타이밍은 학문이 아니라 예술이다.”
--- p.155 「제4장 세상은 결국 조용한 사람들이 바꾼다」 중에서
지난 몇십 년간 우리 사회는 어지러운 과속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르트무트 로자는 그 이유로 “시간당 처리해야 할 일의 증가”를 들었다. 현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신경쇠약증을 동반한 일반적인 권태, 과민, 긴장 같은 증상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프랭크 파트노이는 《속도의 배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현대 생활의 빠른 박자 탓에 우리는 너무 빨리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한 시간을 누리려 하지 않고 점점 복합성을 띠는 타이밍에 대해 숙고할 줄 모른다. 테크놀로지는 우리를 포위하고 속도를 높이라고 부추긴다. 우리는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매일매일 압박을 느낀다.”
--- p.220 「제5장 동요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