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볼 때 좋은 땅은 무조건 남향 땅입니다. 지적도에 땅까지 가는 길이 있어야 하고, 땅 모양이 정방형에 가까운 예쁜 모습이면 좋습니다. 남향, 길, 정방형. 이렇게 세 가지를 갖추면 좋은 땅이라고 봅니다. 땅의 방향은, 인접해 있는 산을 등지고 섰을 때 보이는 방향입니다. 내 맘대로 서서 남향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시골에 몇 년 살아봐야, 우리가 흔히 ‘개응달’이라고 부르는 그늘진 땅이 얼마나 살기 힘든 곳인지를 안 후에야 왜 그렇게 남향, 남향 하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천지는 불인(不仁)해서 사람 알기를 짚으로 만든 개로 안다는 노선생 말씀, 아직 기억하시죠?
현장에 가보니 길이 있다고 길 있는 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지적도를 꼭 떼어 봐야 합니다. 누구 말도 믿지 말고 무조건 내가 직접 지적도를 떼어 봐야 합니다. 지적도는 군청이나 시청에서 뗍니다. 지적도 뗄 때 토지대장하고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함께 떼어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군청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등기소가 있습니다. 시청일 경우는 등기소가 멀어서 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등기소에 가서 등기부등본을 떼어서 확인합니다. 지적도, 토지대장, 토지이용계획확인원, 등기부등본. 이 네 가지 서류는 웬만하면 직접 떼어서 그 내용을 다 이해할 때까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걸어 다니고 차 타고 다니는 게 좋지 않습니까? 왠지 더 시골에 가까워지는 것 같고 기분이 삼삼합니다.
땅 모양은 다들 아시겠지만 정방형 땅이 가장 쓸모가 있습니다. 삐죽한 땅이나 길쭉한 땅 등등은 참 써먹을 게 없습니다. 눈짐작으로 평수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류에는 천 평이라고 돼 있는데 실제 가서 보면 산이 잡아먹고, 내가 잡아먹고, 비탈이 잡아먹어서 500~600평이나 겨우 될까 말까 한 땅이 많습니다. 그러면 평당 10만 원이라고 값을 치러도 실제로는 20만 원을 낸 셈입니다. 쓸 수 있는 땅이 그만큼뿐이니까요.---「17만5천 원짜리 밭은 비싼가? 싼가?」중에서
“아, 아, 용호리 이장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은 마을 대청소가 있는 날이니까 아침밥들 잡수시는 대로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일하는 날이 있습니다. 빠지면 안 됩니다. 빠진다고 해서 법적인 제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두고두고 “부역도 안 나온 놈”이라는 욕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부역 나가서 일을 쎄빠지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역 나가서 땀을 흘리면 삼대가 망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서로 해가면서 낄낄대고 그럭저럭 대충 일 해치우고 부녀회에서 준비한 음식 먹으면서 막걸리도 한잔 걸치는 재미난 자리입니다.
시골생활과 도시생활이 가장 다른 점은 아마도 이런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보통 70호에서 100호 안팎으로 이루어진 행정구역 최소 단위인 리(里)는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생활 공동체입니다. 리의 우두머리는 누구나 잘 아는 이장입니다. 연말에 모든 주민으로부터 징수하는 동곡은 이장곡과 반장곡으로 나누는데, 이장이 한 말 반, 반장이 반말을 갖도록 합니다. 이장과 반장은 마을 주민을 위한 일종의 봉사직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이 모두 이장과 반장의 노고를 인정하고 고생했다는 보답으로 동곡을 내는 것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동곡을 내지 않으면 마을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니 시골로 내려가서 누군가 집으로 찾아와 동곡 걷으러 왔다고 하면 반갑게 맞아들이시고, 뭐라도 먹을 것도 대접해드리고, 동곡도 기꺼이 납부하셔야 합니다.
간단한 행정 서류를 떼거나 하는 일은 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뭔가 민원의 성격이 있는 일을 처리할 때는 보통 반장, 이장을 거쳐서 면사무소 공무원과 협의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면에서 해결이 안 되면 군으로 올라갑니다. 이러한 절차를 잘 모르고 도시에서처럼 면사무소나 군청을 찾아가서 직접 일을 처리하려 들면 설령 일이 성사가 된다 하더라도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마을을 대표하는 이장을 무시한 처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귀농하시는 분들이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여러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고, 간혹 마을 주민과 마찰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럴 때 마을 이장님께 도움을 청하거나 중재를 요청하면 한결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장은 신(神)이 아니어서 마을 사람 모두와 친하지는 않으니까 이장이 그 사람과 가까운지 먼지를 먼저 살피고 부탁을 해도 해야 합니다.
---「이장이랑 정분나야 온 마을에 정분 든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