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넌 내게 이렇게 그냥 전화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냐?”
그는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화난 듯한 낮은 어조로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그런 짓을 하고도? 인류 전체에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레베카는 움찔 놀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바이러스에 처음 걸린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엄마가 편지에 그렇게 썼다고요.”
사촌은 숨이 넘어갈 듯이 웃었다.
“네 아버지는 바이러스에 처음 걸린 사람들 중 한 명이 아니라고. 그가 첫 번째였어. 네 엄마가 그 부분을 빼놓은 거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너네 아버지 때문에 지금 지하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레베카는 다시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쓰며 흡입기를 잡았다.
“더러운 코비드.”
사촌은 침을 뱉었다.
--- p.22
“어떤 바이러스가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너를 통해 바이러스가 있는 세계적인 상황을 만들고 싶어해.”
“세계적인 상황?”
나는 혼란스럽다는 듯 되풀이했다.
“난 이해가 안돼.”
“바이러스가 이동해야 돼. 피해자들을 데리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바이러스는 단지 노인들이나 이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만 죽일 거야.”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뭐, 인류의 문제에 대한 일종의 다윈식 해답 같은 건가?”
그는 점점 짜증이 나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적게 알수록 좋아.”
“내게 원하는 게 뭔데?”
내가 물었다.
“0번 환자가 필요해.”
“0번 환자?”
“처음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확산을 시작할 사람. 너는 여행을 하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방문해야 돼. 어디로 갈지는 알려줄 거야. 모든 비용은 분명히 지불될 거고.”
--- p.29
바이러스는 날 감염시켰다. 난 죽을 것 같았고,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내 생명은 고갈되고 있었고, 숨결은 짧아졌다. 몸은 더욱 뻣뻣해졌다. 삶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정신차려, 레오.”
프랜신은 정맥주사를 놓으며 말했다.
“가벼운 상태야. 곧 두 발로 다시 일어설 테니까. 제발, 살아야 돼.”
밀로는 틈만 나면 나를 보러 왔다. 마스크 위 그의 눈은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내가 만화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는 만화책을 가져다주었다. 어느 날 웃음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정말이지 너무 심하게 웃어서 폐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웃다가 내가 말했다.
“귀염둥이, 나 키스하고 싶어.”
--- p.47
팬데믹 기간 동안 옳게 행동하지 않고 바이러스의 확산에 기여한 모든 사람을 심판해 유죄를 선고하기 위한 획기적인 재판,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처럼 말이다!…
그들 앞에는 그날의 피고인들이 착석해 있었다. 125명의 피고인 속에는 유럽 여러 나라 출신이 망라되어 있었다. 이들 외에도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같은 죄목으로 자국의 사법체계 내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다.
‘존속살인.’
고대 로마에서 존속살인은 포에나 쿨레이로 처벌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살아 있는 동물이 들어 있는 가죽 자루 속에 담겨 시내를 질질 끌려 다녔다. 보통 수탉이나 개 같은 주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닌 동물을 함께 넣은 다음 자루를 꿰맸다.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의 시체는 티베르 강에 던져졌다. 그 당시 존속살인범은 중죄인으로 여겨졌다.
--- p.51
“만약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은 시체와 함께 차 안에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잡혀가 유치장에 갇히게 될 거예요. 그들이 추궁할 끔찍한 질문을 생각해봐요.”
“지하실에 있는 냉동고는 어떨까?”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리나의 등줄기가 후들후들 떨렸다. 냉동고 안에 넣으려면 시체를 토막 내야 할 것이다.
--- p.100
갑자기 밤낮없이 쏟아지는, 자리가 없어 밖에 둘 수밖에 없는 관들 때문에 그의 일상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시청에 요청해 대여한 냉동 컨테이너 트럭이 화장터 뒤 공지에 줄을 서 있었다. 관이 옮겨질 때까지 컨테이너 안에 보관했다. 마티아의 오랜 친구와 동창들 중에도 그 곳에 들어간 사람이 몇 있었다. 그는 혼자 조용히 기도하며 작별을 고했다. 마티아는 동료와 함께 그렇게 관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여기서 바이러스가 빠져 나오지나 않으면 좋겠네.”
동료는 10분마다 장갑을 바꿔 끼는 사이사이에 계속 투덜거렸다.
“나오면 나오는 거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운명론자가 된 마티아의 대답이었다. 묘지에서 하루종일 지내다 보면 죽음이라는 게 낯설지 않고 친근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건, 유족들의 고통을 보는 일이었다. 지금은 이동제한령이 내려 다행히 아무도 이곳에 올 수 없었다. 마티아는 그들이 망자를 위해 흘리는 서글픈 눈물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장례식은 취소되었다. 화장한 다음 유골 항아리는 가장 가까운 유족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 p.224
“그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은 서로에게 ‘모든 게 괜찮아질 거예요’ 하고 말했어. 그땐 그게 행운을 뜻하는 말이었지.”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소리 사이로 선생님이 설명을 이어갔다.
“건물에 배너를 만들어 그런 문구를 쓰기도 했고, 책 제목으로도 썼고, 티셔츠에 써서 입고 다니기도 했어. 무지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였지.”
“설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미리엄은 믿을 수가 없는 눈치였다.
“당시에는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이 바이러스가 곧 사라지고,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단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죠. 다 죽었죠, 그렇죠?”
미리엄이 말을 잘랐다.
“전부 다는 아니야. 다 죽었으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지 않겠지.”
선생님이 설명했다.
“모든 게 괜찮지 않았어.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됐지. 그래서 이 표현이 비꼬듯이 반대의 의미로 쓰이게 됐고, 몇 백 년이 지나고 나니 매우 모욕적인 말로 자리 잡은
거란다.”
---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