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메아리가 묻혀오는 것
치목이 긍복을 강에 빠뜨려 살해하고, 비화는 억호를 향하는 해랑의 불가해한 심경 변화에 괴로워하는데, 얼이가 새끼 기생 효원과 가까이하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대원군의 아들 명복(고종)이 즉위하고, 천주학에 새로운 변화가 생길 무렵 우 씨는 늦둥이를 낳지만, 창무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비화와 해랑 집안 사이에 불길한 기류가 흐르고, 살인마가 돼버린 치목은 비화 목숨도 노린다. 천주학 대박해가 시작되어 감영에 잡혀가 배교背敎를 거부하며 고문에 시달리던 창무가, 남강변 백사장에서 효수형을 당해 목 없는 시신만 나뒹구는, 이른바 ‘무두묘’ 이야기가 생겨나고, 우 씨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치목이 비화를 해치려고 할 때 재영과 얼이가 비화를 구하고 재회한다. 재영은 아내 집안과 원수 사이인 억호에게 업둥이로 준 아들을 잊지 못하고, 비화는 그런 남편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억호는 다시 해랑에게 손을 뻗치고, 해랑은 근동에서 알아주는 땅 부자로 위치를 굳혀가는 비화에게 거리감을 품는다. 언네가 당돌하게 나오자 운산녀는 당혹감에 젖고, 언네와 설단이 종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등, 동업을 두고 배봉 집안 여자들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감돈다. 동업은 배봉 집안의 가운家運을 손에 틀어쥘 중요한 존재로 부상한 것이다. 재영은 나루터집 계산대에서 일하고, 얼이도 정상적인 사내아이로 성장하며, 비화는 부자 되는 비법에 통달한 여자로 알려지고, 우정 댁과 상의하여 원아 혼처를 알아보려고 한다.
억호가 해랑을 소실小室로 삼겠다고 떠벌리고 다닌다는 풍문을 듣고 객줏집을 찾아간 비화는, 객줏집 여주인 기생 어미를 만난다. 얼이가 치목에게 살해당하려는 순간 재영이 구해 주고, 누군가에 의해 강에 빠졌을 때는 손 서방이 알려주어 달보 영감이 건져준다. 하판도 목사가 부임하자 배봉이 그에게 접근하고, 술 시중을 드는 자리에서 해랑은 배봉과 마주친다.
비화가 임신하지만, 재영은 억호와 분녀에게 업둥이로 준 동업을 생각하면 너무 괴롭다. 나연은 뜻하지 않게 치목의 도움을 받고 운산녀를 만나 한통속이 되어 음모를 꾸민다. 억호 씨를 잉태했다는 것을 깨달은 설단이 억호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당황한 억호는 설단을 집에서 부리는 하인 꺽돌에게 시집보낼 궁리를 한다.
서당 훈장 권학은 제자 얼이를 비롯한 문대, 남열, 철국 등의 정신적 지주로서, 얼이가 농민군이 되리란 것을 예감한다. 얼이는 치목과 맹쭐이 부자지간이며, 자기를 강에 처넣어 죽이려고 했던 놈이 맹쭐이란 것을 알고 한층 복수심을 불태운다.
비화가 아들 준서를 낳자, 재영은 장차 자기 두 아들이 원수가 될 것이란 생각에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비화는 그런 남편에게서 서운함을 느낀다. 억호의 접근과 자기연민에 빠진 해랑은 한층 비화를 멀리하고, 억호 얼굴에서 진실과 사랑을 발견하고는 위험한 감정 변화를 일으킨다. 촉석문 앞의 사주 관상쟁이 노인한테서 효원에게 천 씨 성을 가진 남자가 생길 것이란 말을 들은 그날, 해랑은 상촌나루터 흰 바위 위에 효원이 얼이와 나란히 앉아 있는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배봉에게 시달리다가 견디지 못한 염 부인이, 진무 스님이 주지로 있는 비어사 대웅전 뒤쪽 고목에 명주 끈으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만다. 비화는 염 부인과 배봉 사이의 천인공노할 비밀을 끝까지 숨긴다. 일자리를 찾아 부산포에 내려간 왕눈 재팔은, 밀항密航을 하려다가 들켜 위기에 빠진 젊은 일본 여자를 구해 주고, 그녀와 함께 일본으로 가는 밀선密船을 탄다.
억호와 분녀는 남들이 눈치채기 전에 임신한 설단과 꺽돌을 혼례 시킨다. 나루터집에 침입하여 준서를 안고 도망치던 나연은, 밤골 댁에게 들키는 바람에 실패하고, 유괴범이 누구인지 모르는 비화는 배봉 집안 소행이라고 추측한다. 설단이 낳은 아이가 억호 판박이로 알려지자, 억호는 배봉의 권고대로 그 아이를 제 양자로 삼고자 분녀를 설득시키고 설단과 꺽돌에게도 그 사실을 말한다. 진무 스님에게 고목에 매달린 염 부인의 목이 비화 자신을 불러 달라고 하는 무서운 악몽을 꾼다는 말을 듣고 고뇌하는 비화는, 설단 부부에게 무상으로 소작 부쳐 먹을 땅을 주고, 배봉은 동업직물 비단을 일본에 수출할 계획을 세운다. 억호가 심복 양득을 시켜 효원을 통해 해랑에게 패물을 전하지만, 해랑은 당장 버리라고 화를 내고, 효원은 그것을 은밀한 장소에 숨겨 놓는다.
일본으로 간 왕눈은 자기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는 쓰나코와 그녀 부모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일본 여행을 한다. 왕눈이 짝사랑하던 해랑은 어머니 동실 댁이 폐병에 걸리고 친정집마저 불타버리는 이중적인 환란에 시달린다. 비화는 도움을 주려고 해랑을 만나지만 더 큰 거리감을 확인할 뿐이다.
준서 피부병을 고치려고 간 약수터에서 비화와 재영은 운산녀와 치목, 나연과 맞닥뜨린다. 비화는 나연이 남편과 애정 도피 행각을 벌인 여자임을 알게 되고, 재영은 나연이 준서 유괴 미수 사건 범인임을 눈치챈다. 달보 영감의 큰아들 원채를 따라 백마산성에 간 얼이는, 관기 효원과의 순조롭지 못할 사랑에 괴로워하면서, 언젠가는 농민군이 되어 죽어갈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해랑과 억호의 위험한 만남이 이어지면서, 해랑은 패물에 감사하고 억호는 대사지 잘못을 빈다.
비화는 패물 주인이 억호라는 사실을 알고 치를 떨지만, 해랑은 죄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비화가 부담스럽고 억호가 더 좋다는 폭탄선언까지 한다. 호한의 벗인 언직이 화공 안석록과 노처녀인 원아를 맺어주려 하자, 비화는 원아에게 사귀기를 권한다. 그렇지만 원아는 화주 생각이 나서 싫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반대하던 우정 댁도 그들이 맺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둘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왕눈과 쓰나코 사이에는 어정쩡한 감정의 물살이 가로놓인다. 혹시 쓰나코 집안은 밀수업을 하며 왕눈 자신을 이용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는다. 가가와현에서 우동을 먹어본 왕눈은, 고향에 돌아가게 되면 임배봉의 동업직물이나 비화의 나루터집 옆에 우동가게를 열어 거상巨商이 될 꿈을 꾼다. 새벼리에서 억호와 해랑이 만나는 장면을 훔쳐본 만호는, 형을 제치고 동업직물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맛본다. 마침내 동업이 제 아들임을 알게 된 나연은, 나약한 재영의 약점을 잡고 돈을 우려내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