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일어나면 뒤집힌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마디로 급류 한가운데 고무보트를 타고 있는 상황이다. 한눈팔 사이 없을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보이는 것은 휘몰아치는 물살과 보트를 파괴할 듯 부딪치는 물보라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거침없이 흐르는 물살에 떠밀려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한시름 놓고 자신을 정리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희망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상태로 말이다. 그런데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거침없이 흐르는 급류뿐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그냥 꿈에 불과했다.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만난 수많은 청년의 상태가 이랬다. 지금의 대학생은 더욱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다.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주는 수많은 책이 발간되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주지 못한 채 감성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무한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치·경제·사회·교육정책이 문제다. 게다가 가정교육의 문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만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며, 책임 전가에 불과하다. 그렇게 치부하면 마음은 쉽고 편해진다. 나의 책임이 아니게 되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절반이 지났다. 남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할 수 있지만, 미래가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기에 이제 ‘시간’에 대해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대가 없이 받는 것 중의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시간의 힘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리더십 분야의 저명한 인사는 시간을 ‘관리’의 차원으로 접근한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지혜롭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성공의 길을 제시했다. 수많은 독자는 환호하며 시간 관리에 뛰어들고 결국 그 시간 관리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몰라, 원래 다 그런거야’라고 체념에 빠졌다.
대학생은 어떤가? 지금까지는 학교와 가정에서 짜 놓은 시간표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살았다. 시간 관리가 특별할 필요가 없다. 정해진 시간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약 20년 가까이 살았다. 이 습관이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완전하게 지배하고 있다.
“다섯 마리 원숭이를 한 실험실에 모아 놓았다. 중앙에는 사다리가 펼쳐있고 그 꼭대기에는 잘 익은 바나나 한 손이 올려있다. 천정에는 사다리에 올라타는 순간 스프링클러가 자동으로 작동되게 설치되었다. 원숭이는 망설인다. 한 마리가 참지 못하고 사다리에 올라갔다. 차가운 물이 뿌려진다. 혼비백산하는 원숭이들.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원숭이가 사다리에 올라가려고 하자 모든 원숭이가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어떤 원숭이도 바나나를 눈앞에 두고도 가지러 가지 않았다.
한 마리의 원숭이를 교체했다. 새로 들어온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기 위해 사다리에 접근하는 순간, 차가운 물을 경험한 네 마리의 원숭이가 공격한다. 새로 온 원숭이는 이유도 모른 채 공격을 당했고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한다.
또 다른 개체를 기존 원숭이와 교체해 넣었다.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차가운 물을 경험하지 못한 원숭이만 남았는데도 동일한 상황이 계속된다. 어떤 원숭이도 바나나를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른다.”
게리 하멜과 C.K. 프라할라드의 ‘시대를 앞서는 미래 경쟁 전략’에 소개된 한 실험 결과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동일하게 반복된 습관을 지닌 채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말한다. ‘몰라, 원래 그런 거야’, ‘특별한 게 뭐 있나?’ 이런 패러다임에 매몰된 대학생을 위해 나는 코칭을 배우게 되었고 적용했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보았고, 대학생을 위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 관리가 아니라 시간 조율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이다.
이제 시간 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시간 조율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관리’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쉽게 다가온다.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이런 결과를 볼 수 있다는 논리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인생이 획일적으로 살아지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은 매우 유기적인 삶을 사는 존재이기에 모두가 똑같을 수 없다. 시대, 문화, 환경 그리고 상황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단순히 관리라는 말로 시간을 논할 수 없다. 관리를 ‘조율’이라는 말로 대치해야 한다.
‘조율’, 이 말은 단순하지 않다. 인생을 조율한다는 것은 시간 플레이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악기를 조율함으로써 아름다운 연주가 시작되듯, 시간을 조율함으로써 비로소 삶이 아름답게 살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 조율사가 되는 것은 관리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 악기를 조율하는 것이 본격적인 연주를 목표로 하듯, 시간 조율사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구
분한다. 시간 조율사가 되는 것은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을 말한다. 청년은 바람의 세대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좌충우돌한다. 자칫 에너지가 넘치는 듯 보이지만, 종잡을 수 없는 삶의 패턴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더욱 조율이 필요하다.
시간 조율사가 되는 것은 10년, 20년이라는 장기적 안목도 매우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일주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일주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10년도 20년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후회 없는 삶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보람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대학생이 시간 조율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제 ‘시간을 조율하는 법’을 배우고 행동한다면,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견고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을 믿는다.
--- 본문 중에서